
[더팩트|윤정원 기자] 사모펀드(PEF)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 진입했다. 김남규 대표 선임을 계기로 경영권 분쟁에서 '백기사'로 불렸던 라데팡스가 단순 재무적투자자(FI)를 넘어 한미그룹 지배구조를 조율하는 전략 파트너로 보폭을 넓힐지 관심이 쏠린다.
◆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총서 김남규 선임…라데팡스, 이사회 안으로
한미사이언스는 전날인 3월 31일 서울 송파구 한미타워에서 제53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김남규 라데팡스파트너스 대표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안을 원안대로 가결했다. 기존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 사외이사 3명, 기타비상무이사 2명 체제였으나, 김성훈 사내이사가 물러나고 김 대표가 합류하면서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호주주에 머물렀던 라데팡스가 공식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김재교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주총에서 김남규 대표 선임과 관련해 "투자·법률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통해 이사회의 전략적 의사결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선"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자리 배분을 넘어 지배구조와 자본정책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물을 이사회에 앉혔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이사회 진입의 무게감은 지분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라데팡스는 특수목적법인(SPC) 킬링턴 유한회사를 통해 한미사이언스 지분 9.81%를 보유하고 있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함께 구성한 4자연합의 한 축이기도 하다. 이들이 맺은 주주 간 계약에는 이사회 구성, 의결권 공동행사, 우선매수권, 동반매각참여권 등이 포함돼 있다. 자금 지원을 넘어 지배구조 설계와 주주권 행사에 깊이 관여하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이번 이사회 입성은 그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진다.
라데팡스는 시장에서 전형적인 FI와는 결이 다른 플레이어로 분류돼 왔다. 2019년 설립 이후 오너 일가의 경영권 자문과 지배구조 재편을 지원하는 역할을 전면에 내세운 영향이다.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경영권 방어와 지배구조 안정 기능을 결합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존재감이 부각돼 왔다.

◆ 한미 승계부터 분쟁 한복판까지…김남규 누구?
라데팡스를 이끄는 김남규 대표는 법률과 자본시장을 함께 경험한 인물이다. 에스원 준법경영팀장, 삼성전자 법무실 수석변호사, KCGI 최고전략책임자(CSO)와 최고리스크책임자(CRO) 등을 지냈다. 김 대표가 경영권 분쟁과 주주 간 이해관계 조정, 법률 리스크 관리 경험을 두루 갖췄다는 점에서 이번 선임은 예견된 수순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미그룹과의 인연도 길다. 라데팡스는 2022년 전후로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측의 상속세, 지분 유동화, 경영권 방어 전략을 자문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사이언스 주총 공고에도 최근 3년간 자문업무 계약과 용역자문 계약이 기재돼 있다. 단순 투자자라기보다 지배구조 해법을 설계하는 역할에 가까웠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라데팡스는 실제 분쟁 과정에서도 주요 국면마다 이름을 올렸다. 2024년 초 한미-OCI 통합 구상에 관여했고, 이후 해당 카드가 무산되자 모녀 측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4자연합으로 재편됐다. 지난해 12월 주주 간 계약 체결을 통해 최대주주단의 일원으로 올라선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김 대표가 우군에 머무르지 않고 판을 짜고 지분을 묶는 역할까지 수행해 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FI 틀 안에 있지만 SI급 행보…관건은 역할의 범위
라데팡스를 전통적 의미의 전략적투자자(SI)로 보기는 어렵다. 직접적인 사업 시너지를 제공하는 산업자본은 아니고, 본업 역시 PEF 운용과 자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행보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FI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라데팡스는 지난해 4월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9.53%에서 9.81%로 확대하며 "전문경영인 체제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주요주주로서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향후 행보는 한미그룹의 최근 기조와 맞물릴 전망이다. 한미그룹은 이달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JVM 등 상장 3사의 자사주 70%를 소각하고, 나머지 30%는 임직원 보상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주주환원 확대와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흐름 속에서, 이사회에 합류한 라데팡스가 어떤 의제에 먼저 힘을 실을지 주목된다. 시장에서는 배당, 자사주, 거버넌스 감시, 전문경영인 체제 지원 등이 우선순위로 거론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라데팡스가 4자연합의 한 축이기도 한 만큼, 이사회 내 영향력이 확대될 경우 전문경영인 체제의 후견인을 넘어 후속 전략 투자자 유치, 대주주 간 이해관계 조정, 지배구조 재설계까지 관여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