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거래소) 노조가 왜 반대를 해요?"(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취지는 이해합니다. 다만 업계와의 소통이 부족합니다. 강압적으로 찍어누르지 말고 거래세 폐지나 인하 같은 당근도 함께 제시했으면 합니다."(금융투자업계 관계자)
한국거래소 앞이 요즘 시끌시끌하다. 코스피 5000포인트 돌파, 코스닥 1000선 안착이라는 축포가 터졌지만 거래 시간 연장을 둘러싸고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노조 간 갈등의 골이 벌어지면서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사무금융노조)는 연일 출근길 선전전에 나서며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발단은 거래 시간 연장이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6월 29일부터 오전 7~8시 프리마켓과 오후 4~8시 애프터마켓을 도입해 하루 12시간 거래 체제를 가동할 계획이다. 시스템 준비가 완료된 증권사부터 순차 참여시키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27년 12월까지 24시간 거래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정은보 이사장은 지난 5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도 거래 시간 연장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는 "거래소 간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나스닥도 올해 10월부터 24시간 거래를 도입할 예정"이라며 "국내 대체거래소 간 동등한 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해 거래 시간 연장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취지는 분명하다. 미국과 영국, 홍콩 등 주요 국가들이 24시간 거래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추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과정이다.
증권업계와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는 지난달 29일 성명서를 내고 거래 시간 연장을 "노동을 외면한 일방적 조치"로 규정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노조는 거래소가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일정을 확정했다며, 정은보 이사장 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증권사 입장에서 거래 시간 연장은 단순한 근무시간 확대 문제가 아니다. 프리마켓·애프터마켓 도입을 위해서는 미체결 주문(호가) 이전 등 시스템 전반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개발과 테스트에 시간이 필요한데 일정이 촉박해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정식 개장에 앞선 모의시장은 다음 달 16일부터 시작된다. 사실상 한 달 남짓한 준비 기간에 불과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거래 시간만 늘린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정산 인력, 결제 인력, 거래 인력 등 인력 추가 배치를 해야 한다"며 "24시간 거래에 투입되는 자원 대비 시장 수요가 충분할지도 불확실하다"고 꼬집었다.
'거래 시간 연장'보다 더 큰 문제는 '일방 추진'이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는 사전 공청회에서 "그대로 추진할 거니 여력이 되는 곳은 따라와 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증권사가 거래소 회원사인 구조에서 일부만 참여해도 나머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래소는 "업계 의견을 반영해 조정해 온 결과"라고 했으나 현장 목소리는 다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 이사장의 인식은 온도차를 더 키웠다. 지난 3일 '코스피 5000 앤드 비욘드' 세미나 직후, 기자가 '거래 시간 연장에 대한 노조 반발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고 묻자 "우리 노조(거래소 노조)가 왜 반대를 해요?"라고 반문하며 "우리 노조는 반대 안한다"고 답했다. 여유로움이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그러나 그날 오전에도 거래소 앞에서는 사무금융노조의 피켓 시위가 이어졌다. 거래소 노조만 바라보면 갈등이 사라지는 걸까. 증권업계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정 이사장의 시야 밖인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비 한 방울이 귀한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서 맹수들을 이겨내야 했던 마사이족의 지혜가 담긴 격언이다. 이는 자본시장에도 유효하다. 속도를 위해 장애물을 외면하는 선택은 당장은 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가는 결국 시장 전체가 치르게 된다.
지금 한국 자본시장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코스피 5000을 넘어서 6000, 7500이라는 미증유의 영역을 향해 가야 한다. 그 길은 길고 험하다. 거래소 혼자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지금 거래소는 함께 가고 있는가.
zz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