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당정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움직임이 본격화할지 주목된다. 이미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상장 회사들이 역대급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발표하면서 주주환원 정책에 불이 붙었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세제 개편 등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더 이상 단발 이벤트가 아닌 '정책형 가치 제고'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현금 보유 기업들, '통큰' 자사주 소각 릴레이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전년(약 10조원) 대비 133% 급증한 약 23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 논의와 정책 드라이브에 힘입은 결과로 평가된다.
이 같은 흐름은 해가 바뀐 뒤에도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자사주 1530만주를 소각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전날 종가 80만원을 기준으로는 12조2400억원 규모다. 소각 예정일은 2월9일이다. 이는 지난해 상장사 자사주 소각규모인 23조원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회사는 지속 가능한 실적 성장을 창출하는 동시에, 미래 투자와 재무 안정성, 주주환원 간 최적의 균형을 유지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에 주가는 반응했다.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다음날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50% 오른 86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91만원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업계에 누적되기 시작할 유래없이 강력한 현금흐름은 주주환원, 계약 기반의 설비투자, M&A 등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활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기업들도 자사주 소각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같은 날 삼성물산은 780만주(약 2조3000억원)의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삼성물산은 "이번 주식소각 결정은 2023년 2월 16일 공시한 '2023~2025년 주주환원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전통적 배당주로 불리는 금융주도 소각 대열에 합류했다. KB금융그룹은 지난달 15일 자사주 861만주를 소각했다. 약 1조2000억원 수준이며, 발행주식총수의 2.3%에 달하는 규모다. 하나금융지주도 올해 상반기 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1분기와 2분기 각각 2000억원씩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자사주 매입액은 전년 7541억원 대비 증가한 1조원이 예상된다.
자사주를 취득한 기업도 늘고 있다. 현대차는 보통주 74만4870주(3668억원)와 기타주식 12만5054주(338억원)를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현대차는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 중 자기주식 1% 소각을 이행하기 위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의 자사주 취득"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지난달 26일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향후 정책에 따라 단계적인 자사주 소각을 진행할 예정이다.

◆ 증권가 "단발성 이벤트 아냐"…주주환원 프리미엄 '주목'
이처럼 자사주 소각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정부의 주주환원 정책이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논의되는 상법개정안은 자사주를 취득한 경우 1년 이내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기존 자사주의 경우 1년6개월 내 소각하도록 규정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세제 개편으로 고배당 기업의 세 부담이 줄면서 배당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상법 개정안과 연계해 자사주 취득과 소각, 처분을 자산거래에서 자본거래로 일원화해 법인의 자사주 소각, 처분 관련 법령간 체계 정합성을 제고할 계획"이라며 "밸류업 회사에 대한 인센티브가 강화될 예정인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배당을 높이고 자사주 소각에 나서게 될 유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이 정책형 가치 제고 수단으로 자리잡을 거라고 본다.
정상휘 교보증권 책임연구원은 "정부의 3차 상법 개정안은 기한 내 소각 의무화 같은 강제책에 의한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유도함으로써 대주주들에 의한 주주환원 확대가 시장 전방위적으로 발생하길 의도하는 밸류업 법제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기업들이 다수 포진된 금융주, 자동차, 필수소비재 등의 업종과 최근 호실적 및 자사주의 적극적 매입, 소각을 보여주고 있는 반도체 업종에서 나타날 주주환원 관련 프리미엄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작년 유가증권시장에서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행렬이 이어졌던 것은 자사주의 경영권 방어 목적 악용에 따른 주주가치 희석 리스크가 제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주식 수가 줄어드는 시장에서는 동일한 이익을 내더라도 주당 가치는 상승한다. 2026년 한국 증시는 단순한 저평가 영역을 넘어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간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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