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금지, 약일까 독일까…'주주보호 vs 성장자금' 갑론을박
  • 윤정원 기자
  • 입력: 2026.01.29 11:22 / 수정: 2026.01.29 11:22
"모회사 주주만 손해" 금지론 확산…'코리아 디스카운트' 해법 부상
"반도체·배터리 CAPEX 감당 못해" 반발도
중복상장(모회사·자회사 동시 상장) 전면 금지를 두고 찬반 여론이 갈리는 분위기다. /챗GPT 생성 이미지
중복상장(모회사·자회사 동시 상장) 전면 금지를 두고 찬반 여론이 갈리는 분위기다. /챗GPT 생성 이미지

[더팩트|윤정원 기자] 중복상장(모회사·자회사 동시 상장) 전면 금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주주가치 훼손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징으로 지목되면서 금지론이 힘을 얻는 반면, 성장 산업의 대규모 투자자금 조달을 막아 기업 경쟁력을 깎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공개(IPO) 실무에서는 "중복상장 소지가 있으면 일정 자체가 늦어진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오찬에서 LS를 지목하며 "아직도 이런 사례가 있다"며 중복상장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여파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정치권의 입법 논의와 거래소의 심사기조가 동시에 변수로 떠올랐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LS그룹은 대통령의 지적 이후 백기를 들었다. 이 대통령의 LS 중복상장 지적 나흘 만인 26일 LS그룹은 한국거래소 예비심사 청구 중인 증손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 신청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LS 관계자는 "소액주주, 투자자 등 내외부 이해관계자의 상장 추진에 우려 목소리를 경청하고 주주 보호·신뢰 제고를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중복상장 금지론의 출발점은 이해상충이다. 핵심 사업을 떼어내 상장하면 성장 서사가 자회사로 이동하고,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가치 상승분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다. 2022년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 이후 LG에너지솔루션 상장 과정에서 이런 논란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사실상 독점하는 만큼 모기업 또는 자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의사결정을 할 공산이 크다"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결국 각 상장 기업의 주주 이익 훼손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평가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공모주 우선배정 같은 보상책이 있어도 지배력은 그대로인 채 알짜를 떼어내는 구조가 반복되면,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또한 한국이 중복상장 사례가 많고 이는 자본시장 저평가 요인이라고 공개 비판해왔다. 포럼은 지난 27일 '자본시장 개혁 완수 위해 정부에게 바라는 10대 과제'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서도 "한국은 세계에서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된 중복상장 케이스가 가장 많은 국가"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L자 들어간 주식은 사면 안돼'라고 지적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여론도 강경한 축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규칙을 만들어 허용하면 결국 구멍이 생긴다"는 식의 불신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대주주와 일반주주가 같은 조건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라는 견해도 다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LS그룹의 중복 상장 문제를 지적했다. /더팩트 DB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LS그룹의 중복 상장 문제를 지적했다. /더팩트 DB

반대 논리는 실무적이다.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처럼 초기 투자비(CAPEX)가 큰 산업에서, 사업 확장을 위한 외부자본 유치 경로를 좁히면 성장 자체가 늦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인수한 기업까지 중복상장 잣대로 묶이면, 글로벌 확장 전략의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반도체 업권 관계자는 "자회사의 분할 상장은 독립적인 자금 조달 창구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필수적인 재무 전략"이라며 "CAPEX나 연구개발(R&D)이 필요한 신사업 부문을 모회사의 내부 현금흐름만으로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논쟁이 길어지는 이유는 전면 금지와 완전 허용 사이에 현실적 타협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 대안은 모회사 주주 보호를 제도화하는 방식이다. 시장에서는 물적분할·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주거나 공모주 우선배정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거론돼 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적분할 제도 자체보다) 기존 주주 이익이 침해돼도 충분한 보상이 없어도 되는 구조가 문제"라며 "신주인수권 부여나 주식매수청구권 등 보호장치 설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예외적으로 자회사 상장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모회사 주주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법 제도가 뒷받침되고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작동돼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심사 과정에서 물적분할 기업의 모회사 주주보호 방안 등 확약사항을 요구하고, 상장 후 이행점검을 한다는 내용을 가이드북에 담고 있다. 다만 시장에선 우선배정 비율, 환원 규모, 내부거래 통제 등 핵심 항목을 어디까지 정량 기준으로 못 박을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주 보호 장치를 제도화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면 실효성 없는 형식적 체크리스트로 전락할 수 있다"며 "반대로 우선배정 비율이나 환원 규모 등을 과도하게 경직된 정량 기준으로 묶을 경우, 성장 산업의 자금 조달 자체가 위축될 수 있어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선에서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garde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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