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윤정원 기자] 남양유업이 5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겉으로는 정상화 궤도에 올라선 모습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한앤컴퍼니(한앤코) 체제 이후 성장전략 부재와 장기 성장 기반 확보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외식 철수와 비용 효율화, 자사주 소각 등 눈에 띄는 재무 조치가 이어졌지만, 정작 브랜드 경쟁력 강화나 외형 확대를 위한 실질적 전략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한앤코가 인수 이후 강조해온 '체질 개선'이 실질적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반복되면서, 남양유업이 단순 효율화 단계를 넘어 장기 성장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 외식 철수·자사주 소각…'무늬만 체질개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남양유업의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2375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감소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1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5% 증가하며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개선된 흐름처럼 보이지만, 매출 감소 속에서 비용 절감으로 만들어낸 '얇은 흑자'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성장 지속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한앤코 체제 이후 남양유업은 외식사업 철수라는 구조적 변화를 단행했다. 2024년 3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외식·프랜차이즈 사업 정리를 시작한 남양유업은 5월 '일치프리아니', 6월 '오스테리아 스테쏘', 7월 '철그릴' 등 주요 브랜드 매장을 순차적으로 폐점했다. 8월 일부 매장에서는 메뉴 조정과 인테리어 재정비가 진행됐으나, 연말이 되면서 외식사업본부는 사실상 해체됐다.
외식 사업 축소와 함께 남양유업은 올해 총 세 차례에 걸쳐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다. 소각 규모는 1월 약 36만500주(201억원), 3월 30만5464주(약 200억원), 7월 13만1346주(약 98억원)로 등이다. 7월에는 임직원 1546명에게 1인당 16주를 무상 지급하기도 했다. 발생한 제세공과금도 회사가 부담했다. 이러한 재무 정책은 주주 친화적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업계에서는 "외식 철수와 비용 절감 중심의 전략 외에 실질적 성장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자아냈다.
실제 자사주 소각 이후 주가 반등은 제한적이었다. 1월 17일 소각 공시 당시 주가는 6만6800원이었으나, 10월 17일 종가는 5만1400원으로 떨어졌고, 11월 7일 기록한 최저가 4만9700원과의 격차도 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외형 성장과 연결되지 않은 보여주기식 재무 정책이라는 프레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 실적 '속살' 들여다보면…주력 제품군 성장, 여전히 정체
남양유업의 실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핵심 제품군의 장기적 성장 정체다. 올해 3분기 우유류 매출은 약 1300억원으로 전 분기(1268억원) 대비 2.6% 증가했다. 초코에몽 확장 제품인 말차에몽, 초코에몽 Mini 무가당, 발효유 불가리스 설탕 무첨가 플레인이 실적 개선에 기여했으나, 전년 대비로 보면 여전히 감소세다. 원유 수급 안정화, 정부 정책 등 외생 요인이 일부 작용했지만, 브랜드 자체 경쟁력 강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분유류 매출의 경우 467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3% 줄었다. 저출산 영향과 함께 남양유업 분유 브랜드 경쟁력이 이전보다 약화한 점이 장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분유류는 이미 3~4년 전부터 하락세를 이어왔으며, '장기 부진 국면'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기타 제품군 매출은 607억원으로 전 분기(565억원) 대비 7.4% 증가했으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단백질 음료, 가공유 확대가 일부 반영됐지만, 본업 매출 하락을 만회하기에는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단기 판촉이나 일부 제품 확장으로 매출이 움직이는 수준일 뿐, 구조적 성장을 견인하지는 못한다고 평가한다.
한 식음료 전문 애널리스트는 "분유·우유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외형 성장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며 "단백질 음료나 가공유 확장도 의미가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 '안에서 쥐어짜기' 지적에…남양유업 "구조적 전환 명확"
본질적인 문제는 남양유업의 회복 흐름이 소재·수율 관리, 판촉 축소 등 '안에서 쥐어짜는'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조정·효율화는 단기 실적 개선에 효과적이지만, 이를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전문가들은 한앤코 체제에서 남양유업이 재무적 구조정비를 중심으로 움직여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사주 소각·외식 철수·비용 축소 등은 모두 보수적 경영과 위험 제거에 방점이 찍혀 있고, 이를 뒷받침할 신제품·브랜드 혁신·해외 사업·신성장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남양유업 제품을 취급하는 입장에서 보면 가격은 경쟁력이 있는데, 소비자가 주목하는 신제품이나 브랜딩 투자는 부족하다"며 "효율화 위주의 전략이 반복되다 보니 브랜드 매력도는 오히려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은 현재 안정화 단계로 보이지만, 중장기 전략이 부재한 상황에서 한앤코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거론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추가적인 브랜드 재건·카테고리 확장·해외 전략 등이 없다면 지금의 흑자는 ‘비용 절감 효과’ 이상의 의미로 평가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남양유업 측에서는 경영 정상화와 체질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최근 당사의 실적은 단순한 비용 털어내기가 아니라 2019년부터 이어진 적자를 끊어낸 구조적 전환의 결과"라며 "비효율·적자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면서도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매출 기반을 유지했다는 점은, 기업 체질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지표"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는 과거 오너 경영 체제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웠던 변화"라면서 "현재 책임경영 체제하에서 기업 구조가 실질적으로 정비되고 있고 그 효과가 실적에 분명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한앤코가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500억원대 손해배상소송의 결과가 다음 주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는 변론을 종결하고 이달 27일을 판결선고기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