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상법개정 논란이 시장을 달구고 있다. 증권가와 주주는 기업들의 반대에도 상법개정안 시행을 대체로 환영하는 처지였으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아쉽다는 시각이 이어져서다. 여기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불투명해진 상법개정안 시행에 깜짝 사의 의사까지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가는 지난 1일 한 대행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 직후 보고서를 통해 "IMF 직후 국내 기업과 한국 자본시장의 건전성·투명성 제고를 위해 지배구조 규제가 대폭 강화됐다. 대표적으로 1998년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유가증권 상장규정 개정), 1999년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들 수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도 이 당시에 함께 도입됐다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상법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 상장사가 총회와 전자주주총회를 병행 개최해야 하는 등 주로 주주 권익 강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증시 저평가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수 주주의 설득력을 얻었고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한 대행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선고를 하루 앞둔 3일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상법개정안은 다시 국회로 환송됐다. 재적의원 과반이나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다시 가결될 예정이다.
기대를 모았던 주주들의 실망감은 배가되고 있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 등 대형주들의 연이은 대규모 유상증자 발표로 소액주주 피해가 더해지고 있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와중이라 실망감의 깊이는 더해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외인의 증시 대거 이탈이 관측돼 코스피는 물론 종목별 단기적 주가 급락은 예고된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 수장 중 한 명이자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주주들의 권익 보호에 포커스를 맞춰 직무를 수행해 온 이복현 금감원장의 돌연 사의 언급은 증권가와 주주들의 속앓이를 더 하고 있다. 상법개정안 시행을 위해 '직을 걸겠다'고 재차 밝혀온 이 원장은 지난 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에 유감을 표하면서 원장직을 내려놓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재계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조차 안 할 수 있는 핑계가 생기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 이슈가 정쟁화되는 게 안타깝다"며 "주주 가치 보호나 자본시장 선진화는 대통령께서 직접 추진하신 중요 정책이고 대통령이 계셨으면 저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원장이 사의 표명 다음 날인 3일 오전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회의)에서는 말을 아끼면서 당장 사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 원장은 이날 F4회의에서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을 유지하면서 회의에 임했고, 회의를 마친 후에도 전날 사의를 표명한 것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이에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선고일이 임박함에 따라 탄핵 선고 이후 상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들의 무분별한 경영개입에 의사 결정 지연이나 투자 차질 등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상법개정안을 반대하는 기업들과 주식회사로써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응당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 주주들의 엇갈린 간극도 확대될 전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 대행의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반길 수 있으나, 국회 본회의 통과 후 환호했던 주주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사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 관세 우려와 탄핵 선고 등 증시에 악영향을 줄 대내외적 불확실성도 겹치면서 시기적으로도 아쉽다는 지적도 격화하는 중"이라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근 유상증자와 지분 승계를 단행한 한화의 경우에도 상법개정안이 시행됐다면 의사결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탄핵 선고 여부에 따라 논란이 과열될 경우, 투쟁에 나선 주주들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