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 과연 ‘최적의 균형점’ 찾을까 [이우탁의 인사이트]
  • 외부필자
  • 입력: 2026.09.10 08:09 / 수정: 2026.09.10 08:09
앨리슨의 통찰...한 국가의 중대결정, 하나의 논리로 도출되지 않아
진영 찬반 대결 속에서도 ‘국익의 극대화’ 관점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6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군사적 기여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자원 투입을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6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군사적 기여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자원 투입을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AP·뉴시스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하버드 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1971년 ‘결정의 본질(Essence of Decision)’을 출간했다. 동서냉전 시절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분석한 이 책은 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결정이 도출되는 과정이 하나의 매끈한 논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1999년 버지니아대학 필립 젤리코 교수와 개정판을 내기도 했던 앨리슨은 세 개의 렌즈를 제시했다. 국가를 하나의 이성적 행위자로 보는 '합리적 행위자 모델', 관료 조직의 표준운영절차가 결정을 좌우한다는 '조직과정 모델', 그리고 정부 안팎의 여러 행위자가 벌이는 힘겨루기의 산물이라는 '관료정치 모델'이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어떤 분석틀로 보느냐에 따라 정책적 함의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역설했다. 새삼스럽게 ‘앨리슨 모델’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한국 외교를 시험대로 몰고 있는 ‘호르무즈 파병’ 논란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파병’이라는 ‘동맹의 기여’를 요청한 이후 우리 사회는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여당의 중진 송영길 의원은 "침략 전쟁을 반대하도록 헌법 5조에 명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엔 결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나 일본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야당의 중진인 윤상현 의원은 "외교는 타이밍이다. 때를 놓친 외교적 선택은 효과도, 가치도 반감된다"며 파병에 찬성했다. 정부와 여당 지도부는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며 신중한 행보이지만 국방부가 지난주 호르무즈 해협의 현지 상황 파악을 위해 조사단을 보낸 사실이 확인되자 논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국방부의 보고를 바탕으로 조만간 정부의 움직임은 빨라질 것이고, 이슈의 폭발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앨리슨 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호르무즈 파병을 둘러싼 백가쟁명의 논쟁은 국가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까지 필요한 ‘재료’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합리적 행위자의 눈으로 보든 조직이나 관료정치의 모델로 보든 계산은 냉정해야 한다.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이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하는 이상, 항행의 자유는 분명한 국익이다. 동시에 명분이 부족한 전쟁에 발을 담갔다가 이란과의 관계, 나아가 중동 전체에서의 입지를 잃는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한미동맹의 신뢰, 그리고 최근 경색된 통상 현안까지 얽혀 있다. 국익은 단일한 숫자가 아니라 여러 변수가 뒤엉킨 방정식이며, 그 방정식을 푸는 첫번째 기준은 바로 '국익의 관점'이다. 또 소해함 하나를 보내는 데도 이동에만 한 달, 준비까지 포함하면 석 달이 걸린다는 국방 당국의 설명은 관료 조직이 하루아침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쩌면 이미 호르무즈 해협에 가있는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넓히면서 ‘파병’ 프레임을 부각시키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대응일 수도 있다. 파병은 구호가 아니다. 거쳐야할 절차를 무시한 결정은 반드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앨리슨이 던진 통찰의 힘을 빌린다면 어느 한쪽의 논리만으로 결정을 재단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예스냐 노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일에 나서야 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파병 압력 속에서 ‘절묘한 결정’을 했던 사례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국내의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결단하면서도 미국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평화재건사단 성격의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아르빌에 보냈다. 결국 이라크에는 갔지만 ‘어떻게 갈 것인가’의 공간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도출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에도 직접적 교전 가능성을 배제한 소해·기뢰제거나 항행 정보 공유 같은 비전투적 기여를 통해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과 국내 정치적 부담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현실적 접점을 도출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외교는 정답을 찾는 수학이 아니라 균형을 찾는 항해술에 가깝다. 호르무즈의 파도는 거세지만, 국익을 기준으로 다층적인 결정 구조 속에서 냉철한 판단을 한다면 무모한 항해가 아닌 좁지만 안전한 항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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