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춘제'는 불가피한 미래, '성장위원회'가 진짜 지원해야 할 것들[이영규의 비욘더매치]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08.18 00:00 / 수정: 2026.08.18 00:00
겨울 잔디 관리와 관중석 난방을 위한 기술·장비 도입 지원이 핵심
'겨울철 휴지기'를 얼마나 기술적으로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
J리그가 지난 7일 2026-2027 시즌을 성공적으로 열어젖혔다. 개막 첫 주 J1이 역대 최다인 30만4292명을 포함해 J1, J2, J3 통틀어 47만6112명의 관중을 동원해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J1 경기장의 객석점유율 역시 85.9%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J.League SNS 캡처
J리그가 지난 7일 2026-2027 시즌을 성공적으로 열어젖혔다. 개막 첫 주 J1이 역대 최다인 30만4292명을 포함해 J1, J2, J3 통틀어 47만6112명의 관중을 동원해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J1 경기장의 객석점유율 역시 85.9%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J.League SNS 캡처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아시아 축구의 시계가 마침내 추춘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2026년 8월 7일, 일본 J리그가 오랜 진통 끝에 2026-2027 추춘제 첫 시즌의 막을 올렸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가시마 앤틀러스의 공식 개막전에 6만 3960명의 인파가 몰리며 단일 경기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유럽 빅리그와의 이적시장 동기화,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일정 일치, 한여름 혹서기 회피라는 명분을 내걸고 던진 J리그의 승부수는 일단 화려한 흥행과 함께 첫 단추를 뀄다. 그러나 한겨울 2달간의 긴 휴지기(윈터 브레이크)가 몰고 올 리그 흐름의 단절과 구단 운영비 증가라는 비싼 기회비용은 J리그가 감당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두 달간 홈경기가 열리지 않아 입장권과 매점 등 경기 관련 수입은 사실상 끊기는 반면, 1~2월 따뜻한 지역으로 떠나는 '제2의 전지훈련비'와 선수단 고정 인건비, 잔디 보온 유지 관리비가 계속 발생한다.

이웃 나라의 과감한 첫걸음을 바라보는 국내 축구계 내부에서도 최근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회장 이근호) 등을 중심으로 "폭염 속 선수 보호와 국제 경쟁력을 위해 당장 추춘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현장 행정을 책임지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고민도 깊다.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넘기 힘든 현실적 장벽들이 겹겹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J리그가 지난 7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공식 개막전을 시작으로 2026-2027 추춘제 첫 시즌의 막을 올렸다. 이날 경기는 가시마가 4-3으로 역전승했다./ 가시마 앤틀러스 SNS 캡처
J리그가 지난 7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공식 개막전을 시작으로 2026-2027 추춘제 첫 시즌의 막을 올렸다. 이날 경기는 가시마가 4-3으로 역전승했다./ 가시마 앤틀러스 SNS 캡처

◆ K리그가 처한 두 가지 장벽: '혹한기 인프라'와 '지자체 예산'

K리그가 J리그처럼 선뜻 달려나가지 못하는 데는 명확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겨울철 한파와 결빙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고, 특히 수도권과 중부권 경기장의 겨울철 잔디 관리 여건은 추춘제 전환의 가장 치명적인 변수다.

무엇보다 습도가 높고 비교적 온화한 일본의 겨울에 비해, 한국의 1~2월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잔디가 얼어붙으면 선수 부상 위험과 경기력 저하가 직격탄으로 돌아온다. 전용 구장의 지중 열선 가동 체계나 관중석 방풍·난방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K리그 현실에서 한겨울 경기는 관중 외면이라는 이중고로 직결된다. 겨울을 피한다며 휴식기를 2.5~3개월로 늘린다면, 그것은 추춘제가 아니라 ‘반토막 난 춘추제’에 불과하다. 리그의 흐름은 끊기고, 선수단은 사실상 한 시즌에 두 번 프리시즌을 치러야 한다. 결국 이 길게 늘어지는 휴지기를 얼마나 기술적으로 줄여낼 수 있느냐가 추춘제 성공의 최대 분수령이다.

행정 및 예산 구조의 한계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K리그1·2 상당수 구단이 시도민구단 형태로 운영된다. 지방자치단체의 회계연도는 1월부터 12월까지인데, 8월에 시작해 이듬해 6월에 끝나는 시즌은 행정상 회계연도와 충돌한다. 다음 해 예산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8월에 이듬해 상반기까지 포함하는 연봉 계약을 어떻게 체결하고 집행할 것인가라는 행정적 난제를 풀지 못하면 시도민구단의 운용은 마비될 수 있다.

2024년11월28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충남아산의 주닝요가 대구FC를 상대로 골을 터뜨린 뒤 포효하고 있다. 경기 이틀전 전국적인 폭설로 경기를 위해 급하게 치운 눈이 그라운드 주변에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다./K리그
2024년11월28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충남아산의 주닝요가 대구FC를 상대로 골을 터뜨린 뒤 포효하고 있다. 경기 이틀전 전국적인 폭설로 경기를 위해 급하게 치운 눈이 그라운드 주변에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다./K리그

◆ J리그의 선행 사례에서 얻는 '후발주자'의 실익

그렇다고 K리그의 추춘제 논의가 J리그보다 늦어지고 있는 현실에 조급해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지리적·기후적 환경이 유사한 이웃 나라 일본이 먼저 거대한 비용을 치르며 주사위를 던져준 것은, K리그에 오히려 ‘지혜로운 후발주자'가 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무작정 첫 번째 깃발을 꽂는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앞서 나간 J리그가 치를 시행착오와 운영 데이터를 가장 가까이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실패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는 예산 낭비를 줄이고 시행착오를 대폭 축소할 수 있는 K리그만의 가장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준비 전략이다. 일본의 선행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한국 축구가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실익이다. 중요한 것은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우리의 방향이다.

추춘제 전환을 위해서는 겨울철 영하의 추위속 잔디를 보존하는게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다. 사진은 강원FC의 홈구장인 강릉종합운동장의 천연잔디 그라운드./K리그
추춘제 전환을 위해서는 겨울철 영하의 추위속 잔디를 보존하는게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다. 사진은 강원FC의 홈구장인 강릉종합운동장의 천연잔디 그라운드./K리그

◆ 행정은 제도로 풀고, '잔디와 관중'은 실질적 기술 투자로

결국 추춘제는 K리그 역시 언젠가 반드시 가야 할 불가피한 미래다. 그렇다면 지금 K리그에 필요한 것은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2년 후 시행"과 같은 구체적인 전환 로드맵을 연맹이 명확히 대외에 선언하고 단계별 대안을 준비하는 일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시도민구단의 행정·예산 제도를 정비하고, 겨울철 잔디 관리 장비를 단계적으로 확충하며, 코리아컵 등을 통해 추춘제 일정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 기간이다.

시·도민구단의 예산 집행이나 회계연도 불일치 같은 행정·제도적 이슈는 시간을 두고 연맹과 지자체,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가이드라인과 이월 제도를 수립하여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당장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본질은 영하의 추위 속 '잔디 보존'과 '관중 보호'라는 물리적 인프라다.

겨울 휴지기를 단축하고 리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돔구장이나 기존 구장 바닥 전체에 히트코일을 깔라는 식의 비현실적인 요구는 접어두어야 한다. 대신 유럽 빅리그처럼 겨울철 잔디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피치 커버, 일조량 부족을 보완할 LED 채광기, 그리고 혹서기 잔디의 통풍과 열·습기 관리를 돕는 대형 송풍 시설 등 현장이 진짜 필요로 하는 ‘기술과 장비’를 신속히 도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코리아컵(FA컵)을 통한 부분적 추춘제 일정 시뮬레이션이나, 12월과 2월 경기를 남부 지역(제주, 창원, 부산 등 K리그1·2 남부 연고지)에 집중 배치하는 유연한 대진표 설계 등의 실무적 검증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프로축구 성장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고 프로축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현장 과제와 정책화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뉴시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프로축구 성장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고 프로축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현장 과제와 정책화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뉴시스

◆ 성장위원회가 집중해야 할 '진짜 지원'

마침 정부(문체부) 주도로 한국프로축구의 산업경쟁력 강화와 성장방안 마련을 돕기 위해 '프로축구 성장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정부가 K리그의 체질 개선을 진정으로 돕고자 한다면, 정권 홍보용 생색내기 정책이나 단순 보고서 채우기가 아닌 현장이 진정 목말라 하는 실질적인 기술 지원에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성장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인정받으려면 K리그가 실제로 바뀔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가장 먼저 손대야 할 곳은 겨울철 잔디와 관중석이다. 지자체 소유라는 이유로 예산 순위에서 밀려왔던 K리그 경기장들에 겨울철 잔디 생육 및 보존 장비(피치 커버, LED 채광기 등) 설치를 국비로 직접 지원하고, 관중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관중석 난방 히터 및 방풍 시설을 확충해 주는 것이야말로 성장위원회가 내놓아야 할 가장 확실하고 본질적인 솔루션이다.

마냥 "언젠가는 하겠다"는 모호한 선언은 설득력이 없다. 연맹은 올해 안으로 구체적인 전환 시점을 담은 로드맵을 제시하고, 전환 준비기간 동안 J리그의 운영 데이터와 시행착오를 면밀히 분석해 최적의 운영 시스템을 다듬어야 한다.

추춘제 전환은 더 이상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다. J리그가 먼저 비용을 치르며 길을 열었다면, K리그는 그 길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면 된다. 정부와 성장위원회 역시 그 준비를 말로만 독려할 것이 아니라, 겨울 잔디와 관중석에 실질적인 기술 투자를 해야 한다. 추춘제의 승부처는 단순히 시즌 달력의 변화가 아니다. 한겨울에도 잔디를 살리고 관중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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