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중압감이 컸던 월드컵 첫 경기에서 황인범과 오현규의 연속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대회 전의 우려를 희망으로 바꿔놓았으며, '우리도 세계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 12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체코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의 2-1 승리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후반전에만 모두 세 골이 터지며 짜릿한 흥분을 자아낸 가운데, 황인범의 절묘한 칩슛과 오현규의 감각적인 역전 결승골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후배들이 만들어낸 이 두 골을 지켜보며, 축구에서 '골게터'라는 포지션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됐다.
골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언제나 강렬하다. 더구나 패배의 위기에서 전세를 뒤집는 역전골에 대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순간적인 판단과 무의식에 가깝게 이어진 슈팅 메커니즘을 보며, 골게터의 본능과 세계적 킬러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1980년 대통령배 축구대회에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나는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출전을 포함해, 마지막 A매치였던 1991년 한일정기전까지 통산 A매치 98경기에서 30골을 기록했다.)
◆ 골게터, 스트라이커... '킬러'라 불리는 포지션
축구에서 골게터, 스트라이커, 혹은 킬러라고 불리는 최전방 공격수는 팀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이들의 가장 큰 임무는 단연 '득점'이며, 경기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는 결정적인 한 방을 책임져야 한다.
월드컵 역사에서는 게르트 뮐러, 파올로 로시, 게리 리네커, 살바토레 스킬라치, 다보르 슈케르, 호나우두, 미로슬라프 클로제, 하메스 로드리게스, 해리 케인, 킬리안 음바페 등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득점왕으로 이름을 남겼다. 국내 K리그 역시 백종철, 윤상철, 김도훈, 이동국, 데얀, 주민규 등이 뛰어난 골 결정력으로 한국 축구의 공격수 계보를 이어왔다. 결국 득점왕의 역사는 곧 시대를 대표하는 킬러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 킬러의 유형과 '한국형 공격수'의 특징
월드컵 무대에서 활약한 역대 득점왕들은 대체로 골문 앞에서 경이로운 본능을 발휘하는 전형적인 '킬러형 공격수'였다. 게르트 뮐러나 파올로 로시, 살바토레 스킬라치 등은 경기 전반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오직 득점에만 집중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를 갈랐다.
반면 K리그에서는 공격수가 팀플레이에 적당히, 혹은 매우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 축구의 백종철, 윤상철, 김용세, 김도훈, 이동국, 주민규와 외국인 레전드 데얀은 득점뿐만 아니라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와 전방 압박, 공간 창출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하며 팀 전술의 핵심 축 역할을 수행했다. 즉, 한국형 공격수는 순수 골잡이보다는 팀과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유형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 득점왕과 팀 전술의 상관관계
훌륭한 스트라이커의 탄생에는 선수의 개인 능력만큼이나 전술적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뛰어난 결정력을 갖춘 공격수라 하더라도 상대 진영에서 공간이 확보되지 않거나, 파이널 서드(공격 지역)에서 명확한 공격 루트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기 어렵다.
위대한 킬러들의 뒤에는 항상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해 주는 팀 전술과 동료들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었다. 공격수는 혼자 골을 만들어내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팀 전체의 조직적인 움직임 속에서 완성되는 포지션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득점왕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개인 기술 연마뿐만 아니라 공격 전술의 정교함, 효율적인 공간 활용, 날카로운 패스 타이밍 등 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 세계적인 득점왕 육성을 위한 한국 축구의 과제
세계적인 골게터는 결코 우연히 탄생하지 않는다. 유소년 시절부터 남다른 득점 감각과 골에 대한 천부적인 본능을 가진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고,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밀하게 육성해야 한다. 스트라이커는 실전에서의 수많은 슈팅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성장하며, 최적의 위치 선정과 움직임, 공간 인지 능력을 반복 훈련을 통해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오랜 세월 조직력과 끈끈한 팀플레이를 최우선 가치로 두면서, 전문적인 '원톱 공격수' 육성 시스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유소년과 청소년 단계에서 재능 있는 득점형 유망주를 선발해 체계적으로 밀어주는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가동되어야 한다. 세계를 호령할 득점왕은 타고난 재능 위에, 이를 알아보는 축구 철학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더해질 때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