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대륙, 뜨거운 열정의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마침내 6월 11일 막을 올립니다. <더팩트>는 전 세계 축구 축제의 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는 새 연재 [월드컵 오버뷰]를 신설합니다. 단순한 승패와 피파랭킹이라는 숫자의 함정을 넘어, 그라운드 위 베테랑들의 묵직한 서사와 철저한 전술 분석, 숨겨진 팩트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겠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온 전통 강호 체코의 숨은 칼날을 분석한 이영규 전문기자의 첫 분석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의 위대한 도전과 월드컵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독자 여러분께 배달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축구사에서 '세대'를 정의하는 일은 대개 한 시대를 독점한 지배자의 이름을 따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펠레의 시대', '마라도나의 시대'를 살았고, 지난 20년은 리오넬 메시(39)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라는 두 초월적 존재가 지배한 '신(神)의 시대'를 통과해 왔다.
계절의 순환처럼 축구사에도 피할 수 없는 '황혼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미 4년 전 카타르의 드라마로 끝난 줄 알았던 이 두 신적 존재는 이제 정말로 북중미에서 월드컵 무대의 ‘찐’ 마침표를 찍는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느껴야 할 대상은 메시와 호날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찬란하고도 가혹했던 태양 아래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온몸으로 지탱하면서도 끝내 그 눈부신 빛에 가려져야 했던 수많은 재능이 이번 월드컵을 사실상 '라스트 댄스'로 장식해야 한다는 점이야말로 서글픈 잔상으로 남는다.
축구사에서 가장 가혹하면서도 가장 찬란한 운명을 타고난 천재들. 바로 1991년과 1992년에 태어나 현대 축구의 가장 뜨거운 심장부에서 뛰어온 이른바 '91·92 세대'다. 이제 2026년 북중미의 광활한 피치 위에서 국가대표 커리어의 사실상 마지막 장을 준비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그들이 현대 축구사에 아로새긴 유산에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신계(神界)의 압박과 신인류의 추격, 그 좁은 길목에서
91·92 세대의 연대기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생존과 증명의 기록'이다. 이들은 매년 발롱도르 포디움의 가장 높은 곳을 예약해 두었던 메시와 호날두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며 청춘을 보냈다. 그리고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은 킬리안 음바페나 엘링 홀란 같은, 현대 축구의 피지컬적 정점에 선 '신인류'들의 무서운 추격을 동시에 받아내고 있다. 양극단의 거대한 압박 속에서도 이들은 결코 조연의 삶을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정상의 기준'을 끊임없이 경신하며 세계 축구의 메인 스트림을 굳건히 지켜냈다.
펠레를 넘어 브라질 A매치 역대 최다 득점자(79골)로 우뚝 선 '삼바 축구의 황태자' 네이마르(34·브라질), 프리미어리그 단일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우며 안필드의 왕으로 군림했던 모하메드 살라(33·이집트), 그리고 아시아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변방의 축구를 세계 메인 스트림 한복판으로 편입시킨 손흥민(33·한국)이 바로 그 전형이다. 이들은 신들의 시대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과 서사를 구축해 낸 위대한 도전자들이었다.

◆ 현대 축구 전술적 진화의 페르소나
피치 위에서 이들이 남긴 전술적 유산은 가히 혁명적이다. 2010년대 이후 펩 과르디올라와 위르겐 클롭 등이 주도한 '고강도 압박'과 '전환(Transition)'의 시대 속에서, 91·92 세대는 새로운 전술적 패러다임을 온몸으로 구현해 낸 페르소나였다.
과거 터치라인에 국한되던 클래식 윙어의 개념은 이 세대의 살라, 사디오 마네(34·세네갈), 네이마르, 손흥민을 거치며 최전방 스트라이커 이상의 타격력을 갖춘 '반대발 윙어(Inverted Winger)'로 완전히 재정립되었다. 특히 마네와 살라가 안필드의 양 날개를 책임지며 선보인 속도와 정확한 타격은 시스템이 선수를 압도하던 냉정한 전술의 시대에 강렬한 파괴력을 불어넣었다.
어디 그뿐인가. 2019년 발롱도르 포디움 2위에 오르며 센터백도 경기를 지배하는 에이스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리버풀의 사령관 버질 반 다이크(34·네덜란드)의 등장은, 현대 축구에서 '수비수의 빌드업과 경기 조율 능력'을 가르는 절대적인 척도가 되었다. 여기에 동갑내기 마에스트로 케빈 더 브라이너(34·벨기에)가 라이벌 맨시티의 전성기를 이끌며 하프스페이스에서 보여준 공간 재해석 능력까지 더해지며, 91·92 세대는 현대 축구가 가장 빠르고 치밀하게 진화하는 전성기를 완벽하게 이끌었다.

◆ 자본의 대이동, 그리고 글로벌 아이콘
이들의 영향력은 피치 경계선 밖, 축구 산업의 영토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2017년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며 기록한 2억 2200만 유로의 이적료는 세계 이적시장의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도화선이자, 축구 선수의 가치가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 플랫폼이자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세대가 대중의 가슴에 진정한 거인으로 각인된 것은 이들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허브이자 이정표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살라는 종교와 국경의 갈등을 치유하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평화의 아이콘이 되었고, 손흥민은 아시아 시장과 유럽 빅리그를 다이렉트로 연결하며 축구 산업의 글로벌화를 완성했고, 피치 안팎에서 보여준 겸손과 배려는세계 무대에 '아시아의 품격'을 소리 없이 아로새겼다. 여기에 고향 세네갈에 병원과 학교를 지으며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은 사디오 마네의 헌신이 더해진다. 이들은 부의 크기가 아닌, 삶의 태도로 세상을 위로했던 진짜 글로벌 아이콘들이었다.

◆ 찬란했던 세대의 가장 아름다운 마침표를 기다리며
역사는 간혹 가장 높은 곳에 선 1인자만을 기억하는 비정한 속성을 보인다. 그리하여 훗날 누군가는 이 세대를 향해 '발롱도르를 들지 못한, 거인들의 시대에 가려진 이인자들'이라 평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이들이 피치 위에 쏟아부은 고강도의 에너지와 고독한 투쟁은 현대 축구를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낭만적으로 만들었음을. 신들의 장기 집권 속에서도 매 경기 인간계의 한계를 시험하며 전술을 진화시켰고, 축구라는 공놀이를 인류 최고의 문화 콘텐츠이자 감동적인 서사시로 팽창시킨 진짜 주역들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48개국 체제로 전환되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광활하게 펼쳐질 2026 북중미 월드컵. 풋풋했던 청춘을 지나 완숙미의 노련함과 여유를 입고 마지막 춤을 준비하는 네이마르, 살라, 마네, 반 다이크, 손흥민, 더 브라이너의 발끝을 주목해보자. 이들이 북중미의 피치 위에 남길 마지막 발자국은, 단 한 명의 독점적인 지배자 이름 대신 '가장 뜨겁게 투쟁했던 도전자들의 시대'라는 찬란한 헌사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