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 빠지고 이영표 남았다…월드컵 중계, 결국 KBS만 웃었나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05.08 00:00 / 수정: 2026.05.08 00:00
‘보편적 시청권’ 화려한 수사 뒤에서 실리 챙기는 방송사의 이중성
방송법 개정의 함정, 시장 원리 무시한 입법 본질적 한계

축구 중계 해설위원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방송인 안정환은 MBC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를 포기함에 따라 월드컵 경기 해설을 할 수 없게 됐다./더팩트 DB
축구 중계 해설위원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방송인 안정환은 MBC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를 포기함에 따라 월드컵 경기 해설을 할 수 없게 됐다./더팩트 DB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중계 명단에서 MBC와 SBS의 이름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민간 방송사 JTBC와 '보편적 시청권' 수호를 자처하며 홀로 남은 지상파 KBS다. 과거 지상파 3사가 올림픽과 월드컵 때마다 동일한 화면을 송출하며 '전파 낭비'라는 비난을 살 때만 해도, 우리는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라는 2002년 영웅들의 해설을 골라 듣는 사치라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풍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빈자리에는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숭고한 명분과 방송사들의 치밀한 손익계산서만 덩그러니 남았다.

◆ ‘총대’ 멘 KBS? 알고 보면 최대의 수혜자

KBS는 지상파의 자존심을 지키고 보편적 시청권을 수호하기 위해 홀로 중계에 나섰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냉정하다. MBC와 SBS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테이블을 걷어찬 사이, KBS는 ‘유일한 지상파 중계 채널’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특히 중계권 독점 비판에 직면한 JTBC로부터 여론과 정부의 압박을 지렛대 삼아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중계권을 넘겨받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JTBC는 FIFA로부터 약 1억 2500만 달러(약 1850억 원)에 중계권을 확보했으나, KBS와는 단 140억 원 규모의 재판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월드컵 당시 지상파 3사가 공동으로 지불한 중계권료가 1억300만 달러(약 1555억 원)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KBS는 4년 전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월드컵이라는 ‘킬러 콘텐츠’의 광고 수익과 시청률을 독식하게 된 셈이다. 명분은 ‘수호’지만, 실리는 ‘독점적 수혜’인 셈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 당시 지상파 3사 중계 해설진(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왼쪽부터).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는 이영표가 KBS, 박지성이 JTBC 중계 해설을 맡는다. /MBC, SBS, KBS 제공
2018 러시아월드컵 당시 지상파 3사 중계 해설진(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왼쪽부터).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는 이영표가 KBS, 박지성이 JTBC 중계 해설을 맡는다. /MBC, SBS, KBS 제공

◆ 박지성과 박찬호, 지상파가 주도한 독점의 역사

지난 2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때부터 지상파는 ‘전 국민의 볼 권리’를 앞세워 독점 중계의 부당성을 성토하고, 정부는 이에 발맞춰 강제 집행의 칼날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이들이 목소리를 높일수록 기시감 섞인 불편함이 남았다. 우리가 믿어온 ‘보편적 시청권’은 진정 시청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방송사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수사(修辭)였던가.

그들 역시 실익이 보인다면 동료 방송사의 뒤통수를 치고 독점의 길을 걸어온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1997년과 2001년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놓고 KBS와 MBC는 서로 더 높은 금액을 베팅하며 중계권료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다. 또한 박지성 선수가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할 때, 전 국민적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 중계권을 선점했던 것은 SBS였다.

자신들이 따낸 독점은 국익을 위한 투자고, 남이 사온 독점은 시청권 침해라고 몰아세우는 논리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SBS와 MBC가 동계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협상에서 발을 뺀 것 역시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명분보다, 광고 시장 위축과 ‘홍명보호’의 불확실성에 따른 실익을 우선시한 경영적 선택으로 봐야 마땅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더팩트DB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더팩트DB

◆ 코리아풀(Korea Pool)이라는 이름의 카르텔

지상파가 JTBC의 독자 행보를 비판하며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코리아풀’ 시스템은 과잉 경쟁에 따른 외화 유출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고 지상파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구매자 담합'의 성격이 짙다. 특히 지상파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이 원칙을 수시로 파기해왔다는 점은, 코리아풀이 국익이 아닌 기득권 수호를 위한 선택적 방패였음을 자인한 셈이다.

지상파는 JTBC가 공동구매 관행을 깨고 올림픽과 월드컵 가격을 끌어올렸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의 코리아풀은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만 작동했다. 과거 KBS는 MBC가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독점하자 국내 프로야구, 축구, 농구 중계권을 싹쓸이하며 "MBC에는 재 판매할 일이 없을 것"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 콘텐츠 유료화 시대, 여전한 ‘공짜’의 관성

우리는 이제 콘텐츠 제작과 확보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에 울펴퍼지던 캐롤이 저작권료 장벽에 막히고, 카페 응원조차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콘텐츠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진화의 과정이다. 하지만 중계권 논란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과거의 '공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천억 원의 리스크를 지고 사온 중계권을 ‘보편적’이라는 수식어 하나로 헐값에 공유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장 경제 원칙에도 어긋난다.

남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일궈낸 결과물을 무조건 무료로 누리겠다는 것은 ‘강자’의 횡포에 가깝다. 이제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콘텐츠 가치에 부합하는 정당한 비용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단이 2025년6월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쿠웨이트전에서 4-0 승리를 거둔 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더팩트 DB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단이 2025년6월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쿠웨이트전에서 4-0 승리를 거둔 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더팩트 DB

◆ 국가 직접 확보가 대안, 시장 개입은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 보호' 원칙에 반해

정치권이 중재를 넘어, 방송법 개정을 통해 보편적 시청권을 강화하겠다고 부산을 떠는 것 역시 본질을 망각한 처사다. 중계권료라는 시장의 비용 문제는 외면한 채, 사유재산을 강제로 나누라는 식의 입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국가가 국민의 시청권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방송사 간의 밥그릇 싸움에 개입해 민간의 재산권을 ‘재판매’하라며 팔을 비틀 일이 아니다. 정부가 직접 중계권을 확보해 모든 방송사에 무료 혹은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공재적 접근이다. 사유재산을 법적으로 공공재화하려는 시도는 헌법상의 영업 자유와 재산권 보호 원칙에도 배치된다. 국가의 책임은 민간 사업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명분 뒤에 숨지 말고 차라리 솔직해지자

2026년 월드컵 중계권 갈등은 '누가 더 국민을 생각하는가'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명분을 챙기며 실리를 뽑아냈는가'의 기록에 가깝다. 이제 방송사들은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화려한 수사로 시청자를 기만하며 중계권에 무임승차하려 하기보다, 시장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급변하는 미디어 시대의 흐름에도 맞다.

스포츠 중계권은 더 이상 당연한 무료 서비스가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품’이다. 적자가 우려되어 참여하지 못했다면, 혹은 실리를 위해 독점 전략을 택했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그 속내를 밝히는 것이 공적 매체다운 당당함이다. 선택에 따른 성공과 실패의 책임 역시 온전히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두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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