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프로축구 부천FC의 이영민 감독은 최근 기묘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K리그1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수원FC를 꺾고 팀을 사상 첫 1부 리그로 승격시킨 그는, 2026시즌 9라운드를 치른 22일 현재 K리그 중위권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선전 중이다.
구단은 그의 리더십을 신뢰하며 2028년까지 장기 재계약을 맺었지만, 정작 그는 내년 시즌 강제로 지휘봉을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 전술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발행하는 ‘종이 한 장’의 자격증 때문이다.
◆’박사'에게 '초등 졸업장' 없다고 연구 금지하는 꼴
문제의 핵심은 대한체육회의 ‘경기인 등록 규정’이다. 2027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2급 이상의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이 없으면 지도자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골자다. 황당한 지점은 이 감독이 이미 '축구계의 박사' 학위라 불리는 AFC(아시아축구연맹) P급(Pro) 라이선스 소지자라는 사실이다.
P급은 수년 간의 실무 경력과 논문 제출을 거쳐야 얻는 아시아 최고 등급 자격이다. 전 세계 어디서든 대표팀을 지휘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국내 행정용 자격증이 없다고 자격을 뺏겠다는 것은, 노벨상 후보에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니 연구실에서 나가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문체부의 지침이 있다 하더라도, 종목별 특수성을 고려해 규정을 유연하게 적용할 책임이 있는 대한체육회 이사회는 오히려 ‘미 소지자 등록 불가’라는 대못을 박으며 행정 편의주의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 검증된 전문가에 대한 예우가 사라진 행정
국가 체육지도자 자격증 취득 과정은 필기, 실기, 구술, 연수까지 4단계를 밟아야 한다. 다만 국가대표나 특정 프로 경력자에게는 면접과 연수만으로 과정을 축소해주는 혜택이 주어진다. 전문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영민 감독처럼 현장에서 승격을 일궈내고 실력을 증명한 ‘실무형 명장’들에게도 마땅히 전문가에 준하는 예우와 취득 과정의 ‘패스트트랙’이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이영민 감독은 프로 선수 출신이 아니어서 다른 지도자들처럼 과정 축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 시절 프로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필드 위에서 수만 관중 앞에 전술로 자신을 증명해온 감독에게 다시 기초 교육을 받고 필기시험을 치르라는 것은 그의 커리어 전체를 부정하는 처사다. 칭찬은 못할망정 밥그릇까지 뺏는 격이다.
◆ 행정편의 억지 규정, 프로 감독에겐 "직업 포기 선언"
이 제도의 가장 큰 폐해는 현실성 결여다. 자격증 취득은 통상 4월부터 11월까지 무려 7개월이 소요되는 대장정이다. 시즌 내내 매주 경기를 치르고 전술 분석에 24시간을 쏟는 프로 감독이 어느 겨를에 교실에 앉아 시험 공부를 하겠는가. 감독이 자격증을 위해 팀을 비운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단과 팬들에게 돌아간다. 즉, 현직 감독에게 이 과정을 강제하는 것은 사실상 "감독직을 포기하고 시험 준비나 하라"는 말과 같다. 현장을 무시한 억지 규정이 한 감독의 직업 수행권을 침해하고 팀 운영을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
더욱이 이 제도는 ‘내국인 역차별’이라는 코미디를 연출한다.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 지도자는 축구협회의 심의를 거친 공인 자격증만 있으면 등록이 가능하다. 똑같은 P급 라이선스를 가졌음에도 외국인 감독은 당당히 벤치에 앉고, 팀을 승격시킨 한국인 감독은 ‘무자격자’로 몰려 쫓겨나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다. 정부가 진정 지도자의 질을 관리하고 싶다면,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P급 라이선스의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 자격 체계 안으로 포용하는 상식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정부의 권위주의와 협회의 태만이 빚은 합작품
이영민 감독은 한때 하도 기가 막혀 프로선수 등록까지 고려했을 정도다. 법적 대응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만약 소송이 시작된다면 이는 개인의 일자리를 넘어 지도자 전체의 생존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묻는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
효력정지 가처분부터 헌법소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까지 행정의 폭력에 맞선 사법적 심판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외국인 감독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규정을 국내 감독에게만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상 평등권 침해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도 성명을 통해 "현행 제도는 중복 규제이며 국제 기준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만큼, 집단 소송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축구협회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축구의 AFC 라이선스 체계와 국가 자격증 사이의 괴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협회가 수십 년간 라이선스 체계를 운영해오면서 문체부와 협의하여 ‘전문스포츠지도사 인정’과 같은 법적 의제 조항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은 명백한 직무 태만이다. 결국 이번 촌극은 문체부의 고압적 행정과 협회의 무능이 만나 빚어낸 흑역사다.

◆ 지금이라도 상식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이영민 감독의 사례는 현재 한국 축구계가 직면한 ‘행정 만능주의’의 모순을 상징한다. 성과를 낸 전문가를 행정적 형식 요건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2028년까지 계약된 감독이 전술적 결함이 아닌 '행정적 이중 규제' 때문에 팀을 떠나게 된다면, 이는 한국 축구 행정의 영원한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문체부, 체육회, 축구협회는 머리를 맞대고 국제 표준과 국가 자격 간의 호환성을 인정하는 실질적인 구제책을 내놓아야 한다. 팬들은 법정에서 다투는 모습보다는, 경기장 벤치에서 열정을 쏟는 이영민 감독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