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의 월미도에서] 알로하! 하와이 이민 123주년
  • 김형수 기자
  • 입력: 2025.12.22 13:04 / 수정: 2025.12.22 13:37
'700만 재외동포 종가' 인천, 포용도시 만들어야
'이민 기념일' 제정…글로벌 민족 역량 발휘하길
2013년 하와이 이민 110주년을 기념해 호놀룰루시의회의 의결을 거쳐 파와아 인하공원(Pawaa Inha Park) 표지석이 설치됐다. 표지석 왼쪽 뒤로 2003년 인천시가 설치한 이민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 보인다. /김형수 선임기자
2013년 하와이 이민 110주년을 기념해 호놀룰루시의회의 의결을 거쳐 '파와아 인하공원(Pawaa Inha Park)' 표지석이 설치됐다. 표지석 왼쪽 뒤로 2003년 인천시가 설치한 이민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 보인다. /김형수 선임기자

[더팩트ㅣ인천=김형수 선임기자] 하와이 이민으로 시작된 해외이민은 700만 재외동포의 뿌리이다. 123년 전 오늘(22일)은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으로 기록된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이민의 출발일이다.

오늘 인천 제물포항의 날씨는 영하 4~5도로 1902년 그때와 비슷하다.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이 스칠 뿐 눈, 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역만리를 향한 선조들의 눈망울에는 망향의 그리움과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1900년대 초반은 가뭄과 기근이 이어지면서 전국에 혜민원이 설치될 정도로 백성들의 삶은 힘들었고, 하와이 이민의 단초로도 작용됐다. 1902년 11월 16일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엽전 10냥의 집조(여권)를 발급한 유민원(綏民院)이 설치됐다.

미국인 사업가 데슐러(David W. Deshler)는 인천 내동에 이민 모집 동서개발회사를 설치하고 인천내리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이민자를 모집했다. 12월 22일 아침, 해관 선교에는 민영환 유민원 총재와 존스(Geroge Heber Jones) 내리교회 목사 등 가족, 친지들이 나와 첫 이민을 전송했다. 월미도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우선주식회사 소속 켄카이마루(현해환, 玄海丸)에 오른 121명은 일본 나카사키항에서 미국 상선 갤릭(Gaelic)호에 승선해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항 7번 선창에 도착했다. 입국 허가를 받은 최종 인원은 86명이었다.

인천개항장은 일찍이 세계와의 교류와 소통을 시작한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이다. 개항의 도시 인천은 이민의 출발지이지만 이제 재외동포청을 유치한 다문화 재외동포의 거점 도시가 됐다. 하와이 이민을 권장한 인천내리교회, 하와이 이주 50주년을 기념해 1954년 설립된 인하대, 세계 한인이민의 역사를 집대성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실재한다.

최근 인하대총동창회가 개교 70년을 기념해 발간한 '역사를 잇는 미래의 힘'에는 1953년 11월 15일 하와이에서 발행된 한인 이주 50주년 기념 '하와이 한인동포의 황금 희년을 맞이하여(50 years of Progress_ Hawaii Korean Golden Jubilee Celebration)' 팸플릿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의 축사가 수록됐다. 축사는 '50년 전에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리고 울며 방황할 적에 하와이에서 한인 이민의 길이 열려 인천 항구에서 처음으로 한인의 이민배가 떠나 호놀룰루 항으로 가게 된 것이다'로 시작된다.

이어 '인천과 하와이 사이에 미국과 연락하는 우의 상통의 길을 만들기 위하여 이름을 인하라고 하고 인천시장의 주선으로 인천 항구에 좋은 대학기지를 내놓고 우선 정부에서 백만 불을 먼저 지불했고 그 나머지는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만 몇 푼씩이라도 제공하기로 하고 미국의 MIT와 같이 공업대학을 만들어 우리나라 공업과 기술 방면이 여기서 나오도록 하자’고 했다.

또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운영한 한인기독학원도 축사를 통해 '하와이 이민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본 학원이 1947년 발전적 해체를 하게 됨에 따라 갈리하이 계곡에 있는 학원 부지를 매각한 대금을 인하공과대학 설립에 기본금으로 희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인하대는 하와이 이민으로 태어난 유일한 대학이다.

하와이 한인들은 갖은 고생을 무릅쓰고 조국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후진 육영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하와이는 일제 강점기를 몸소 겪은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합성협회, 한인기독교회 등이 한인 교육과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했다. 2003년 인천시가 제작한 하와이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 설치된 공원은 2013년 호놀룰루시의회의 의결을 거쳐 파와아 인하공원(Pawaa Inha Park)으로 명명돼 하와이와 인천을 잇고 있다.

1926년 하와이섬(빅아일랜드) 힐로 지역에 이승만 박사가 조성한 동지촌 인근에 독립운동 자금 조성과 경제자립을 위해 설립한 동지식산회사 운영 숯가마가 오랜 세월 속에 점차 훼손되고 있다. /김형수 선임기자
1926년 하와이섬(빅아일랜드) 힐로 지역에 이승만 박사가 조성한 '동지촌' 인근에 독립운동 자금 조성과 경제자립을 위해 설립한 동지식산회사 운영 숯가마가 오랜 세월 속에 점차 훼손되고 있다. /김형수 선임기자

푸우이키와 오아후 공동묘지 등에 수많은 한인 선조들이 묻혔다. 이름 모를 묘비명도 많다. 지난해 10월 전국 개봉한 이진영 감독의 음악영화 '하와이연가'에는 사진신부 임옥순, 한센병 환자로 몰라카이 섬 칼라우파파에 격리돼 생을 마감한 김춘석 등 이민 1세의 애절한 삶이 가족의 사랑과 민족의 동질성으로 펼쳐졌다.

2018년 별세한 김창원(도널드 김) 앰코(AMKOR A&E) 회장은 사진신부로 결혼한 이민 1세대 자손으로 하와이 한인사회를 이끈 '대부'였다. 김 회장은 평소 기부정신을 실천해 오면서 KAIST, 인하대에도 거액을 기탁했다.

미국 이민 사상 처음으로 주 대법원장이 된 이민 3세 문대양(로널드 문) 하와이주 대법원장은 2022년 별세했다. 그의 별세에 하와이주 법무부도 성명을 내고 "우리는 전설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이미 오래 전 이민 1세대는 모두 작고했다. 정·재계를 이끈 하와이 한인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사와 전통, 애국애족의 이민 정신이 계승되길 바란다.

지난 2022년 12월 유정복 인천시장은 이민 120년 기념행사를 호놀룰루에서 주최하고 재외동포청 유치의 교두보를 만들었다. 최기선, 안상수, 송영길 등 역대 인천 민선시장들이 하와이를 방문했었다. 하와이 여기저기에 산재됐던 민족교육·독립운동의 유적들도 한층 정리된 분위기다.

하지만 빅아일랜드(하와이섬) 힐로 지역의 옛 한인 동지촌에서 발견된 숯가마터는 한국인의 소유로 전환됐지만 오히려 접근은 제한적이다. 남아 있는 원형이 더 훼손되기 전에 보전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확충할 정부 차원의 지원도 절실한 이유다.

하와이 이민은 인천의 고유한 자산이고, 개항의 근현대사를 이어온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인천을 '이민의 종가'라고 하지만 하와이 이민의 오늘을 기억하는 일은 별로 없다. '이민 기념일'을 제정해 글로벌 도시의 역량을 키워나갔으면 한다.

인천은 이민의 역사를 바탕으로 700만 재외동포의 유입에 따른 포용의 도시로 거듭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로하! 하와이 이민, 123주년의 의미를 되새긴다.

in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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