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조커라는 이름은 남자 둘
지난 10월 8일(현지시간) ‘8살 많은 형’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통산 101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역대 3위의 기록이죠(지미 코너스 109회, 로저 페더러 103회). 하드코트 우승횟수(72회)는 페더러(71회)를 넘어섰습니다. 같은 시기 동생은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시즌 초반, 남들은 한 번만 해도 잘했다고 칭찬받는 트리플더블을 평균기록(25득점 13리바운드 12어시스트)으로 달성하며 통산 4번째 MVP를 겨냥했습니다.
둘은 세르비아 국적에, ‘조커(Joker)’라는 애칭, 그리고 해당 종목 ‘고트(GOAT)’라는 세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에게 찬사를 보낼 정도로 친분이 두텁습니다. 팬데믹 시절 직접 만나 코로나 바이러스를 주고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죠. 전자는 노바크 조코비치(1987년생), 후자는 니콜라 요키치(1995년생)입니다.
# 조커 별명의 흐름
둘의 별명 조커는 모두 이름(Novak Djokovic, Nikola Jokić)에서 비롯됐습니다. 시작은 테니스였습니다. 2000년대 중반 조코비치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이름의 발음이 영어권에서 '조커비치'로 들린다는 이유로 팬과 언론이 그를 조커로 불렀죠.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조코비치가 극적인 우승으로 커리어 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자, 외신에 ‘골든 조커’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5년 덴버에 입단한 요키치는 이름의 영어 표기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조커’가 됐습니다. 요키치에 따르면,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만난 조코비치가 그에게 조커라는 별명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합니다. 별명 인수인계까지 한 셈이죠(조코비치식 유머).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선배 조커’는 이번 101번째 우승에도 불구하고 머지 않아 은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후배 조커는 지금이 최전성기로 여겨집니다. 그래서인지 별명 조커는 이제 요키치의 것인 듯합니다.

# 두 조커의 공통점1 - 유머
원래 조커는 카드놀이의 특수패(레드조커, 블랙조커)죠. 그래서 우리는 흔히 ‘000이 바로 특급조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파생돼 ‘농담쟁이’, ‘익살꾼’, ‘광대’ 등의 뜻도 가집니다. 조코비치와 요키치의 ‘조커’는 이름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넘어 유머(장난기)라는 공통점을 갖기에 더 절묘합니다.
조코비치는 젊어서부터 장난기가 넘치고, 특히 다른 선수의 흉내를 잘 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페더러, 샤라포바, 나달 등을 모방한 그의 영상짤은 제법 유명합니다. ‘코트 위의 코미디언(On-court comedian)’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101번째 우승 후에도 여러 마리의 달마시안을 배경으로 우승컵을 치켜든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습니다(feat.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
반면 요키치의 유머는 은근합니다. 코트 위에서는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미디어 노출을 꺼리는 편이지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자주 카메라에 잡힙니다. 특히 같은 동유럽 출신인 루카 돈치치(LA레이커스)를 만나면 그냥 두지 않습니다. 또 워낙에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니 ‘경기를 장난처럼 다루는 천재 조커’라는 평도 받습니다.
# 두 조커의 공통점2 - 가정중심과 겸손
세르비아 문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인구 700만 명이 안 되는 세르비아의 문화는 가족과 공동체 중심적입니다. 또 겸손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세르비아가 발칸반도 중심부에 위치해 과거는 물론 지금까지도 전쟁과 분열로 신음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90년대 코소보 내전 때 성장한 조코비치가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환경에서 테니스를 배웠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죠.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대회(이번에 우승한 대회)를 만들었고, 가족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자주 강조하죠. 요키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나는 농구보다 말과 가족이 더 소중하다"고 공공연히 말합니다. 친형이 줄곧 현장응원을 하는데 너무도 열정적이어서 경기장 폭력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SNS에서 ‘요키치의 형들 외모’가 화제가 됐을 정도입니다.

# 웃으면 싸우는 ‘전사 조커’ vs 무표정한 ‘천재 조커’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조커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조코비치의 집중력은 유명합니다. 글루텐 알레르기를 극복하면서 에너지(체력)와 집중력의 화신이 됐죠. 끈질긴 베이스라인 플레이어인 그가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많이 연출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럴 때 조커는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웃음기는 사라지며 처절해집니다.
반면 요키치는 NBA 파이널을 제패하고도 감정동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팀 선수들을 위로하죠. 이런 요키치가 세르비아에서 자신의 말이 경마에서 우승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죠. 그는 코트 위에서는 무심한 표정으로 농구 역사에 없었던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측불허의 천재적인 패스와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슈팅도 곁들여지죠. 그래도 웬만해서는 감정노출이 없습니다.
# 조커의 시대
조코비치와 요키치는 닮은 듯 서로 다른 조커입니다. 하나는 웃으며 싸우고, 다른 하나는 무표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죠. 그런데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인성이 좋다는 점입니다. 사생활도 모범적입니다. 엄청난 소득과 인기를 바탕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는 등 구설에 오르는 여러 스포츠스타들과는 다릅니다. 둘은 서로를 높이 평가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메시지를 보냅니다.
이번 조코비치의 우승에 요키치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AI에게 물어보니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별일이 없다면 둘의 우정은 계속될 것이고, 스포츠팬들은 당분간은 그들의 플레이를 현재진행형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두 조커의 시대'를 사는 것도 행운인지 모르겠습니다. 테니스와 농구를 좋아한다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