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우리는 조민을 부러워한 적 없다
  • 서다빈 기자
  • 입력: 2025.08.21 00:00 / 수정: 2025.08.21 00:00
조국의 귀환, 진심 없는 사과와 586의 위선을 마주하다
'관행'이라는 말로 덮인 입시비리, 누가 책임졌나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18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직후 기자들에게 몇 번의 사과를 한다고 해서 2030이 마음을 열겠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왜 저를 싫어하는지 분석하고, 제가 해야 할 역할을 해나가다 보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에서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출소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이새롬 기자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18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직후 기자들에게 "몇 번의 사과를 한다고 해서 2030이 마음을 열겠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왜 저를 싫어하는지 분석하고, 제가 해야 할 역할을 해나가다 보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에서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출소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서야 꺼내본다. 나는 학생부 종합 전형(학종)의 시대를 살아왔다.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학생들은 교실 안팎에서 '스펙 쌓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내 생활기록부는 학종을 준비하는 학생치고는 평범했지만, 봉사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내세울 수 있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미안한데, OO이에게 A 봉사 활동 시간을 줘도 되겠니?" OO이는 전교 상위권에 드는 친구였고, 선생님의 말투에는 미안함보다 당연함이 묻어 있었다.

처음 깨달았다. 노력도, 시간도, 기록조차도 누군가를 위해 양보해야 하는 현실을. 상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봉사시간이 사라지는 그 경험은 너무나도 씁쓸했던 능력주의 사회의 입문이었다.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다른 반 친구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런 부당함은 사립고등학교의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히 반복되고 있었다. 문제를 제기하면 시샘이나 낙오자의 푸념쯤으로 치부됐다.

잊고 지냈던 그 기억은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들의 입시 비리 사태를 접하면서 떠올랐다. 대학생이 되어 마주한 현실은 낯설지 않았다. 설명되지 않은 특혜, 불투명한 기회, 상식과 괴리된 기록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행"이라며 정당화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무기력함을 넘어 분노를 일으켰다.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600만 원을 확정받고, 지난해 12월 16일 수감됐다. 그로부터 8개월 뒤, 그는 이재명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조 전 대표는 출소 다음날 진행된 한겨레 인터뷰에서 '2030 세대에서 사면 비판이 높았다고 언급했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2030 세대가 저에 대해 가진 불만은 이른바 '입시 비리' 문제에 대한 불만일 것"이라며 "자신들은 가질 수 없던 인턴십이라는 기회를 조국이라는 사람은 자식들에게 주고, 그걸 입시에 제출했다는 것 때문에 화를 내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 18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지난 18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며칠 뒤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그는 기자들에게 "몇 번의 사과를 한다고 해서 2030이 마음을 열겠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왜 저를 싫어하는지 분석하고, 제가 해야 할 역할을 해나가다 보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단지 인턴십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는 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진심 어린 사과도 하지 않았다. 사면·복권을 받고 돌아와 정치에 복귀하겠다는 조 전 대표는 "역할을 해나가다 보면 해결이 될 것"이라 했지만, 그 말은 자기연민에 빠진 독백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견디기 어려운 건, 그런 주장 뒤에 숨어 있는 기성세대의 회피와 위선이다. 청년들의 분노에 586은 "부러워서 그러는 것"이라며 불공정을 지적하는 이들에게도 열등감의 딱지를 붙인다. 우리는 조민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드러난 구조적 불공정과 위선에 분노했을 뿐이다.

당은 조 전 대표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정치적인 것'이라 치부하며 그가 '정치적 파워'를 지닌 것이라고 자랑한다. 물론 그들 나름의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함이 모든 것을 면죄부로 바꿀 순 없다. 진심은 없고 해명과 서사만 넘쳐난다.

그를 억울한 희생자로 미화하고, 청년의 분노를 열등감과 질투로 치부하는 태도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뻔뻔한 기만이다. 2030이 바라는 건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와 공정을 되살릴 용기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결국 진심 어린 사과다.

bongou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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