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충돌’ 우려, 기로에 선 한중 관계와 '혐중(嫌中)' [이우탁의 인사이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 입력: 2025.07.20 00:00 / 수정: 2025.07.20 00:00
명동 中대사관 주변에서 ‘반중 시위’ 빈발..‘물리적 충돌’ 우려
한미동맹 중심 잡으면서 한중관계도 챙기는 지혜 필요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명동거리에 자리잡은 주한 중국대사관 건물 주변에서 거의 매일처럼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시위 양상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더팩트 DB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명동거리에 자리잡은 주한 중국대사관 건물 주변에서 거의 매일처럼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시위 양상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더팩트 DB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과 중국인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까 걱정됩니다."

최근 필자는 주한 중국 대사관의 정무담당 외교관들과 장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명동거리에 자리잡은 주한 중국대사관 건물 주변에서 거의 매일처럼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시위 양상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했다.

특히 ‘멸공’ 구호를 끊임없이 외치는 일부 시위군중이 중국의 국기(오성홍기)를 대사관 앞에서 찢는 퍼포먼스까지 할 때는 정말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명동거리는 중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어서 자칫 흥분한 양국민들이 충돌할까 조마조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묘한 감상에 젖었다. 명동 중국대사관 자리에는 조선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있다. 이곳은 본래 조선말 포도대장 이경하의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오군란(1882)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에 건너온 6000여 청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중국과 연결된다.

특히 임오군란 이후 조선과 청의 통상조약(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이 체결되자 청나라 상인들이 대거 명동으로 진출했다. 이 조약은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명문화시킨 불평등 조약이었다. 명동을 거점으로 중국의 위안스카이(袁世凱)는 총독처럼 조선의 국사를 쥐락펴락했다.

청나라 상인들은 특유의 근면함과 결속력으로 돈을 모아 명동 일대 부동산을 사들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장제스의 중화민국 대사관이 자리잡았으나 1992년 한국전쟁에서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중국이 전격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자 명동에서 대만의 주권은 사라지고 만다.

필자는 1994년 9월, 한중 수교 2주년을 맞아 초대 중화인민공화국 주한대사인 장팅옌(張庭延) 대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과거의 불신을 뛰어넘어 한중양국의 미래를 발전시켜나가자는 장 대사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이후 상하이와 워싱턴 특파원을 거치는 등 30여년 간 한중 관계에 천착해온 필자도 최근의 한중관계, 특히 요즘 국내에서 '혐중(嫌中)'이라는 말이 횡행하는 모습에 걱정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날 중국 대사관 사람들은 이재명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지난달 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사이의 통화 내용을 강조하면서 "지난 몇 년간 힘들었는데, 이제 좀 달라졌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통화에서 ‘호혜평등의 정신’을 언급한 것을 특히 주목했다. ‘대미외교’에 올인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실용외교’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특히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올 것인지로 화두가 자연스럽게 옮겨갔는데 외교관들답게 ‘한중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 답했다. 시 주석이 내년 상하이 APEC을 주관하는 만큼 당연히 경주에 오지 않겠냐는 기류로 이어졌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경쟁이 가열되더라도 한중 관계는 더 악화되지 않겠다는 다소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명동 중국 대사관 앞의 사정은 여전히 ‘작은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중국 외교관들의 걱정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내에서도 한국내 ‘혐중 시위’ 소식이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는데 자칫 한국의 ‘혐중’이 중국의 ‘혐한(嫌韓)’을 자극할까 지레 걱정됐다.

그날의 대화는 한국 내에서 요즘 확산하는 ‘시진핑 실각설’에 이르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중국 외교관들은 "일부 우익인사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낭설을 유튜브 등에서 퍼트리고 있는데, 그걸 무게감있는 언론에서 다룬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의 중국’ 원칙 만큼이나 중국 외교관들에게 최고지도자 문제가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미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주석의 향후 행보는 차분히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에서 양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국 간 교역규모와 인적 교류의 수준만 보더라도 불필요한 갈등은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피해야할 것이다.

한국 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문제를 놓고도 진영을 나눠 예민하게 논쟁하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게도 이 질문이 쇄도했다. 필자는 이날 조 후보자의 발언이 ‘외교적 함의’를 적절하게 담았다고 평가한다.

조 후보자는 안철수 의원이 ‘이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느냐"고 직설적으로 묻자 "확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한미 정상회담 전 중국을 먼저 방문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행보를 해야 하는 한국외교 수장이 할 만한 ’절묘한 답변‘ 아닌가.

한미동맹의 중심축을 분명히 하면서도 한중 관계도 챙기는 지혜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국익을 극대화하고 한국 외교의 실효적 공간을 넓히는 것이 실용외교의 목표라 한다면 더 냉철하고 신중한 접근이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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