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탁의 인사이트] 첫발 내디딘 실용외교와 전략적 韓·美·中 삼각관계
  • 이우탁 칼럼니스트
  • 입력: 2025.06.13 00:00 / 수정: 2025.06.13 07:46
이재명 대통령-시진핑 中주석 첫 통화의 외교적 함의1992년 한중 수교도 美 동의 하에 실현...’전략적 공간‘ 중요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정식으로 초청했다. 이에 시 주석이 11년 만에 방한할지 관심이 모인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정식으로 초청했다. 이에 시 주석이 11년 만에 방한할지 관심이 모인다. /뉴시스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국제정치학에서 삼각관계 이론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세 국가 사이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이론이다. 이 삼각관계에 ‘전략성’을 결합한 학자가 로웰 디트머다. 그는 1970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미국과 소련, 중국 간 삼국 관계를 분석했다.

디트머는 세 국가가 갖고 있는 가치(Value)와 관계(Balance)를 바탕으로 냉전 질서를 흔들었던 미국과 중국의 국교 수립이 가능했던 속사정을 파헤쳤다. 결국 미국은 중국을 끌어들여 냉전의 한 축이자 패권도전국이었던 소련을 굴복시켰다. 사회주의 형제국이라는 과거의 혈연은 국익 앞에서 낭만적 추억에 불과했다.

소련 붕괴이후 세계 최강으로 등극한 미국의 손을 잡은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했다. 이후 중국은 순식간에 ’세계공장‘으로 자리잡으며 욱일승천했고, 20여년이 흐른 지금 미국의 패권도전국으로 성장했다. 세계패권사를 관통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패권전쟁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의 패권도전국과 달리 만만치 않은 내공을 과시하고 있다. 과연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는 끝날 것인지를 놓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절박해진 미국은 핵심 동맹국들에게 대중 압박전선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더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줄타기는 없다‘며 확실히 미국 편에 설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배경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의 시게루 이시바 총리와 먼저 통화한 뒤에 이뤄졌다. 필자는 통화내용에 주목했다. 중국 외교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중국의 의중이 확연히 드러난다.

시 주석은 "피차간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존중할 것"을 강조했다. 중국의 국가 핵심이익은 다른 나라와 타협할 수 없고, 거래나 협상이 불가능한 문제를 말한다. 지난해 11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시 주석은 "중국의 전략적 안보와 핵심이익이 위협받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지 말 것이며, 대만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말라는 주문인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만난 중국 정부 인사들은 필자에게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미중 대립전선의 전면에 서서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은 자제해야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사갈 수 없는‘ 숙명적 이웃인 중국과도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였다.

’대미올인‘ 외교를 펼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피력한 것이기도 했다. 전략적 삼각관계에는 ’3국 공존‘ 모델이 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존재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1992년 8월24일 실현된 한중 수교는 냉전이 끝났음을 확인시켜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한국전쟁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눈 양국은 공식으로 종전(終戰)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그리고 북한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았다. 그때 양국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한국의 북방정책과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결실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최강 미국의 ’동의‘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전략적 삼각관계가 공존의 길에 있을 때에만 가능했던 것이다.

한중 수교 이래 양국 교역규모는 세계무역사에 기록될 발전을 거듭해왔다. 중국은 지난해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이 대통령은 통화에서 "한·중 양국이 호혜평등의 정신 아래 경제·안보·문화·인적교류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교류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시 주석도 "한국의 새 정부와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용외교‘의 기치를 든 이재명 대통령이 첫발을 제대로 내딛은 것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를 전략적으로 이해하려는 소통이 더욱 절실해졌다. 우리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실용외교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자면 한미 동맹의 굳건한 토대 속에서도 중국과도 공존할 ’전략적 공간‘을 찾아야 한다. 마침 올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국의 전략적 위상을 확인할 기회이다. 예측가능한 확고한 외교전략과 함께 세련되고 성숙한 외교행보가 절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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