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1999년 묘한 이름의 음료가 출시됐다. 롯데칠성이 내놓은 미과즙 음료인데, 이름이 ‘2% 부족할 때’였다. 언뜻 운동을 하거나 더위로 땀을 흘리면서 체내 수분이 2%만큼 빠져나갔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런데 광고에서는 땀 흘리는 모습과 시원하게 마시는 장면도 없다. 그저 설레거나 아프거나 아련한 젊은 날의 사랑 이야기였다.
2000년 선보인 첫 TV광고에서 젊은 정우성이 중국의 장쯔이를 향해 "가, 가란 말이야" 울부짖는다. 나이 20살에 여자를 만났는데, 그 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장쯔이는 슬픈 눈으로 "나를 채워줘"라며 돌아선다. 이때 내레이션이 흐른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당시 동종의 음료시장에서 90%의 판매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소비자들은 이온음료와 미과즙 음료를 잘 구분하지도 않았다. 미과즙 음료란 청정수에 미량의 과즙을 넣은 음료, 즉 과일맛 음료인 셈이다. 그렇지만 복숭아 색깔에 선명하게 적힌 숫자 ‘2’에 주목했을 뿐이다.
주문할 때도 그냥 ‘이프로’로 불렀다. 이때부터 "2% 부족하다"는 말이 각종 상황에 패러디 됐다. 직장에서는 완벽에 조금 못 미치는 일처리에 "2% 부족한데"라며 아쉬워했다. 일반인은 대체로 2% 부족한 것을 98% 상태로 이해했다.
학생들은 98점이면 내신과 수능 1등급 아니냐며 홀짝홀짝 마셨다. 그런데 영화 ‘넘버3’의 대사가 소환되면서 2%의 의미가 달라진다. ‘넘버3’에서 조폭 중간보스인 한석규에게 이미연이 자신을 몇 프로 믿느냐고 묻는다. 이에 한석규는 심드렁하게 "51%"라고 답한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가진 이미연이 "이제는 몇 프로 믿느냐"고 묻는다. 이에 한석규는 "51%"라며 "누구라도 49%이상 믿지 않는다. 나에게 51%는 100%이다"라고 말한다.
2%의 의미가 "조금 부족하다"는 뜻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로 확장된 거다. 특히 선거가 그랬다. 승자독식 체제에서 2%P차이면 사실상 100%와 제로의 간격이 아닌가. 양당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51%면 안정적인 승리를 넘어 압승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이번 6.3대선도 그랬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재명 후보가 박근혜의 51.6%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했다. 최소한 50%를 넘기기 바랐다. 그런데 2%P 부족했다. 정확히는 49.42%로 0.58%P 부족했지만. "이겼지만 아쉽다"는 반응이 그래서 나왔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2%가 넘쳤다. 41.15%의 득표율로 39%대 숫자를 넘어섰다. 이른바 보수 정당으로서는 역대 최대 차이의 패배였지만 "졌잘싸(졌지만 잘 사웠다)"로 자위하는 근거가 됐다.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안타깝겠지만 진정으로 2%P가 부족했다. 8.34%로 선거비용 절반을 보전 받을 수 있는 10% 득표율에서 1.66%P가 부족했다. 딱 2%P가 부족해 향후 정치행보의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두 자릿수 득표에 성공했다면 보수진영 재편에서 중요한 축이 될 수도 있었다.
어디 정치 뿐이겠나. 우리의 국제경제도 2% 차이가 엄청난 연쇄효과를 부르는 상황이다. 미국 중앙은행 기준금리는 4.50%이다. 우리는 이보다 2%P 부족한 2.50%P이다. 이러한 금리 차이가 달러의 이동과 환율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새 정부는 ‘플러스 마이너스(+-) 2%’의 중용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도록 말이다.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중용(中庸)의 도(道)가 중요하다는 거다. 노(魯)나라 환공(桓公)이 자리 오른편에 둔 기울어진 그릇, 좌우명(座右銘)처럼 말이다. 이 그릇은 텅 비면 기울고, 절반 차면 바르고, 가득 차면 엎어진다. 이로써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공자는 "가득 채우고 기울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에 제자인 자로(子路)가 가득 채우고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음으로. 공을 세우고도 겸양으로, 용맹하면서도 검약으로, 부유하면서도 겸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노자(老子)가 말한 "매우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가장 교묘한 것은 졸렬해 보이며, 훌륭한 언변은 어눌한 듯하다"는 가르침과 맥이 통한다. 그는 "잘 완성된 것은 결함이 있고, 가득 찬 것은 빈 곳이 있다"고도 했다.
마치 고려청자 연적에서 가지런한 꽃잎 중 하나가 비뚜름함으로 미적 완성도를 높인 것과 결이 같다. 출애굽기의 모세도, 아테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도 말더듬이 출신 아닌가.결국 정치에도 여백과 여유가 완벽의 조건이겠다. 그래서 플러스 2%와 마이너스 2%의 적절한 유격이 필요할 터이다.
노자는 여기에 지도자의 청정(淸淨)을 강조했다. 깨끗함과 고요함이 천하를 바르게 하는 바탕인 거다.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이다. 정권이 바뀌면 수천개의 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인사는 그 자체로 메시지이다. 아마도 이 대통령은 좌우의 통합과 전후의 균형을 중시할 것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를 넘어 대선 경쟁자까지 아우르는 행보에서 명(明) 태조 주원장이 떠오른다. 간난과 역경을 딛고 천하를 손에 넣은 그는 반대파 인물을 적극 기용했다. "다만 지금의 성실함을 생각하고, 이전 과오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적이었던 원(元)나라 관리도 진심으로 대우해 제국의 기초를 닦았다.
이처럼 성공한 제왕은 인재를 구하되 완전무결을 추구하지 않고, 현자(賢者)의 작은 허물은 묻어주었으며, 과거 자신과 불편한 관계는 기억하지 않았다. 제(齊)나라 환공(桓公)도 자신을 반대했던 관중을 재상을 앉혔다. 그가 바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이다.
인재의 등용을 말하면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이사(李斯)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내세운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는 아직까지 회자되는 명구이다. 황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거다. "산은 작은 흙덩이도 꺼리지 않아서, 바다는 작은 물도 가리지 않아서 크다(山不讓塵 海不讓水)"는 거다.
이런 넓은 인재 풀(Pool)의 활용이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원동력이겠다. 정권은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고 재창출하는 것은 더 어렵다. 당(唐) 태종이 창업(創業)과 수성(守城) 중 어느 쪽이 힘든 지 물었다. 이에 위징(魏徵)이 "어느 제왕이든 간난신고 끝에 천하를 얻지만, 안일에 흐르면 잃지 않은 경우가 없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대답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겐 반면교사도 있지 않나. 2%의 의미가 심중한 시대에 우리는 ‘이 프로’를 선출했다. 이재명 ‘프로페셔널’ 대통령 말이다. 그가 오래 전 ‘3프로TV’에 출연했을 때 "2(이)프로와 3프로의 맞짱"이라는 우스개를 차용해 봤다. 여하튼 경제에 밝은 ‘이 프로’가 2% 부족한 점은 채우고 2% 지나친 점은 비워 중용(中庸)의 대동(大同)세상을 만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