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 바란다...'억강부약'으로 모든 것을 바르게 [박종권의 나우히어]
  • 박종권 언론인
  • 입력: 2025.06.03 00:00 / 수정: 2025.06.03 00:00
21대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있다. 그가 가는 길은 향기로운 꽃 길이 아니다. 살을 에는 얼음고원과 목 타는 열사의 사막과 메마른 날카로운 덩굴이 구르는 가시밭길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김문수 국민의힘,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왼쪽부터)./국회사진기자단
21대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있다. 그가 가는 길은 향기로운 꽃 길이 아니다. 살을 에는 얼음고원과 목 타는 열사의 사막과 메마른 날카로운 덩굴이 구르는 가시밭길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김문수 국민의힘,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왼쪽부터)./국회사진기자단

[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역사는 마치 토목공사 같다. 산이 가로막으면 터널을 뚫는다. 강이 가로지르면 다리를 놓는다. 목표 앞에 놓인 장애물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그것이 인류의 생존 여정이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민주의 숨통을 죄는 모든 형태의 독재는 미구에 타도됐다. 엄혹한 철권통치도 재스민과 오렌지와 장미 향기 앞에 스러졌다. 총알은 절대 신념을 뚫지 못한다. 총칼을 앞세운 쿠데타는 결국 ‘종이 짱돌’로 정리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이미 정해진 결과인지도 모른다.

어둠의 끝은 새벽이고, 강물은 결국 바다에 이르지 않는가. 그래도 동트기 전 샛별과 뭇 별들이 더욱 빛난다. 강물도 굳이 구불구불 흐른다. 바다를 향하지만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 이유는 이 산록 저 들녘을 골고루 적시기 위함이다. 산이 막으면 짐짓 우회하면서, 폭포로 떨어진다고 해도 서두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6월 4일이면 새 정부의 첫 날이다. 정권 인수기간도 없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벌써 ‘그림자 내각’이 작동하고 있을 게다. 이번에는 절반만 대표하는 반(半)통령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는 대(大)통령의 길을 닦으면서 말이다. 소통하는 소통(疏通)령으로 민의의 광장에서 말이다.

당선자는 취임 선서에 앞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일별할 필요가 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치인이 아닌가. 다산이 내세운 ‘어진 정치’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억강부약(抑强扶弱)’이겠다. 강자를 억제하고 약자를 돕는 정치 말이다. 중국의 삼국지 위지 왕수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우며 상벌이 분명하면 백성이 칭송한다"고 했다. 이로 이것이 어진이의 정치(仁人之政)라는 거다. 이른바 선정(善政)의 요체이다.

이 같은 취지의 억강부약이 목민심서의 형전과 애민에 담겨 있다. 형전의 금포(禁暴)조항을 보자. 폭력을 금한다는 뜻인데, "호강(豪强)을 물리치고 귀근(貴近)을 멀리해야 한다"고 했다. 호강은 세력을 뽐내는 토호들이고 귀근은 권력자 주변에 똬리를 튼 측근들이다. 이들의 횡포를 제어해야 민중의 삶이 평안하다는 거다.

애민(愛民)편에서는 진궁(振窮)을 말한다.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은 세상에서 궁벽하기 짝이 없는 네 부류, 즉 사궁(四窮)이다. 이들은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다. 궁한 사람들을 일으켜준다는 뜻의 진궁(振窮)이 바로 부약(扶弱)과 통한다. 다산은 혼기를 넘겨서도 결혼하지 못한 이들도 궁한 처지라고 봤다. 그래서 관청이 나서서 성혼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요즘 저금리 신혼대출이나 아파트 청약 신혼특례 등이 그 연장선 아닐까. 기업까지 나서서 "결혼하면 1억 준다"는 약속 역시 그렇고 말이다. 목민심서의 애민 6조가 바로 양로(養老), 자유(慈幼), 진궁(振窮), 애상(哀喪), 관질(寬疾), 구재(救災)이다. 노인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버려진 어린이를 보살피며, 궁벽한 이들을 일으켜주고, 상을 당한 이들을 돌봐 주며, 병자를 구호하고, 재난을 당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거다.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살펴야 한다는 거다. 강함과 약함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강자라고 해서 무조건 억눌러야 한다는 게 아니다. 특권과 반칙에 엄격히 대처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대동(大同) 세상이 펼쳐진다는 거다. 다산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벼슬살이에 대해서도 통찰을 제공한다.

그가 쓴 ‘임금’이란 표현을 ‘국민’으로 치환하면 요즘에도 꼭 들어맞는다. 사실 국민주권시대에 국민이 왕정시대 임금과 같은 위치가 아닌가. 예로부터 민심이 천심이라고도 했다. 그는 "임금(국민)을 섬기는데 있어서 임금(국민)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임금(국민)의 총애를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팬덤 정치’에 대한 경계이다.

무턱대고 좋아하며 지지하는, 그러면서 반대하는 이들을 멸시하는 팬덤은 존경의 대척점에 있다. 그는 또 "임금(국민)의 신뢰를 받아야지 임금(국민)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는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로 여기면 딱 맞겠다. 인기영합적 정책은 당장은 혀끝에 단맛으로 다가오겠지만 결국 충치와 비만을 부른다.

공자도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를 지탱할 수 없다"고 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말로만 공정과 상식을 백 번 외쳐봐야 헛일이다. 믿음을 사지 않으면 그저 불공정과 몰상식의 포장으로 여겨질 뿐이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3번 언급했던 대통령이 국민의 자유를 압살하는 내란을 획책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무신(無信)과 무신(巫信)의 끝은 탄핵 파면이었다. 다산은 자신을 엄정하게 닦지 않은 사람이라면 비록 학식이 고명하고 문체가 찬란하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흙담 위의 색칠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사여구로 문장이나 꾸미는 작은 솜씨는 한 세상에 회자된다고 해도 이는 광대가 우스갯짓을 연출하는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논어' 안연편에서 정치에 대한 계강자의 물음에 "정치는 바르게 한다는 뜻이니 그대가 바름으로써 이끈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자 정야(政者 正也)"이다. 무릇 정치가의 행동과 신념은 올바름을 지향해야 하고, 이를 통해 나라 전체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거다.

새 정부는 "구시대의 막내이자 신시대의 맏형"이 되길 바란다. 민주화의 피와 산업화의 땀이 얼룩진 현대사의 바탕 위에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찬란한 황금기의 서막을 열었으면 좋겠다. 이는 시대적 요청이자 역사적 숙명이다.

21대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있다. 그가 가는 길은 향기로운 꽃 길이 아니다. 살을 에는 얼음고원과 목 타는 열사의 사막과 메마른 날카로운 덩굴이 구르는 가시밭길이다. 비록 지금 힘들어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비단길처럼 말이다. 혼자 박수 받으며 걷는 꽃 길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견디며 걸어가는 비단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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