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날줄과 씨줄 엮인 대선...민주주의 파수꾼은 시민의 손 [박종권의 나우히어]
  • 박종권 언론인
  • 입력: 2025.05.27 08:05 / 수정: 2025.05.27 08:05
유권자의 깨어 있는 손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역사의 이정표다. 23일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권영국 민주노동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왼쪽부터)./국회사진기자단
유권자의 깨어 있는 손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역사의 이정표다. 23일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권영국 민주노동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왼쪽부터)./국회사진기자단

[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이제 일주일 남았다. 21대 대통령선거가 코 앞이다. 각 정당 후보들은 막판 스퍼트 중이다. 앞선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굳히기와 격차 벌리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뒤쫓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골든 크로스’를 꿈꾸며 세력 결집에 나서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일단 두 자릿수 징검다리 확보가 목표이겠다.

유권자들에게 배송된 투표안내문과 전단형 선거공보는 현재의 판세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동봉된 선거공보물은 단 석 장이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비롯해 군소 후보의 선거공보는 없다. 이유야 어찌 됐든 3인 각축이다. 지난 칼럼에서 각 후보의 특징적 인상을 현찰과 미술품과 토큰으로 분류했다. 선거공보물은 이런 분류를 뒷받침한다.

예컨대 기호 1번 이재명 후보는 "지금은 이재명"이란 구호를 앞세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은 자신이라는 거다. 그는 선거일인 6월 3일을 "국민 주권의 날"로 선언했다. 투표는 진정한 내란종식과 진짜 대한민국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5월 29일과 30일 사전투표일임을 강조했다.

기호 2번 김문수 후보는 "원칙의 길을 걷다"를 내세웠다. 그의 공보물에는 출생지나 출신 대학이나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경력 등 일체를 소개하지 않았다. 그저 청렴한 삶을 살아오고, 정의의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어쩌면 극좌에서 극우로 변신한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입법 사법 행정의 균형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 역시 사전투표일과 본투표일을 붉은 색으로 강조했다. 부정선거 논쟁에 어느 정도 선을 긋는 것일까.

기호 4번 이준석 후보는 "새로운 대통령"을 표방했다. 자신이야 말로 "미래를 여는 선택"이라는 거다. 세 쪽에 걸쳐 직접 쓴 손 글씨로 자신의 정치역정과 포부를 소개했다. 활자가 아닌 ‘이준석체’로 유권자들 마음에 진정성을 호소하는 전략이다. 그의 글에서 눈에 띈 것은 노무현의 소환이다. 노란 밑줄로 두 번이나 노무현과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한다. 이는 민주당의 친노친문과 친이간 미묘한 틈새를 겨냥한 듯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은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경우에 비유하면서 거듭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한다.현재의 과거의 바탕에 서있다.

선거공보물을 통해 본 이번 대선 후보들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씨줄과 날줄이 선명하게 교차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집적이라고 할까.이재명 후보는 보릿고개에서 OECD국가로 성장해 온 한국의 경제사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를 피해 고향을 떠나 이촌향도(離村向都)로 이어진 개발의 그늘이 몸에 새겨져 있다. 프레스에 팔을 다친 소년공에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는 형설지공(螢雪之功) 청운의 ‘코리안 드림’도 그의 얼굴에 선연하다.

그가 변호사로서 성남지역 노동자를 대변하며 민중운동에 기여한 것도, 성남시장으로 직접 정치판에 뛰어든 것도, 경기도지사를 거쳐 이번 대선에 대통령 후보로 우뚝 선 것도 불굴의 인생역정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그 밑바닥에서 저 꼭대기까지 우여곡절(迂餘曲折)의 등정 과정이다. 전후의 한국이 세계경제의 큰 축으로 성장해온 것처럼 말이다. 마치 현대사를 피륙으로 보면 그의 궤적은 ‘날줄’이다.

김문수 후보는 성장의 어두운 그늘에서 그 스스로 횃불이 됐다. 그는 서울대 상대라는 학벌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든 위장취업 1세대이다. 군사독재와 재벌의 정경유착 질곡에서 허덕이던 노동자들의 삶과 인권을 위해 청춘의 꿈을 쏟아 부었다. 혁혁한 민주화 유공자이면서도 보상금 수령을 거절한 혁명가적 운동가이다. 그런 그가 민주세력의 본거지가 아닌 3당 합당의 민자당에 입당한 것은 이념적 좌표의 우 클릭이다.

이후 그가 젊은 날 목숨 걸고 맞섰던 군부독재 세력의 후예들과 한 솥 밥을 먹은 모습은 무척 생경했다. 그에게는 보는 시각에 따라 변절자와 전향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최근에는 아스팔트 우파의 대표격인 전광훈 씨와 손잡아 극좌에서 극우로 이념 지평의 극한을 열었다. 우리가 독재와 반독재, 반민주와 민주의 대결에서 성장과 평등, 보수와 진보로 이념 색깔이 변화하는 중심이자 극단에 그가 서 있다. 그의 궤적은 현대사의 ‘씨줄’이다.

이준석 후보는 이 현대의 날줄과 씨줄이 엮어낸 피륙 위에서 민주화와 성장의 과실을 마음껏 누렸다고 보겠다. 그는 강남8학군으로 대변되는 치맛바람과 교육사다리에서 ‘특목고(서울과학고)’를 나와 ‘특목대(카이스트)’에 잠시 걸쳤다가 ‘드림대(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교육사업 회사를 세웠다. 보수 본거지인 TK출신으로 서울대를 나온 부친은 그의 이념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보수 본색 말이다. 그는 ‘오래된 청년 정치인’으로서 신선함과 노회함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른바 세대포위론으로 세대 차별을,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차별을, 여성과 남성의 차별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비판을 받고 있다. 본인으로선 억울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는 씨줄과 날줄이 엮여낸 피륙을 어떤 옷으로 만들지, 색깔과 도안을 어떻게 할지 궁리하고 모색하는 역할로 보인다.

우리네 선거는 대체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본디 투표가 그렇다. 그리스 직접민주정치에서 패각투표와 도편추방제는 민주정에 위험한 인물을 10년간 국외로 추방하기 위한 비밀투표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선거도 늘 민주정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과 후보를 5년간 ‘응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 프레임이 그렇다.

하지만 권력의 파이는 달고 심판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선거판은 마치 장터 만병통치 약장수처럼 유권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현란한 곡예와 요란한 춤사위,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약효를 과장한다. 5일장을 찾는 시민들은 매번 당하고도 또 속는다. 이번 대선도 따지고 보면 심판과 응징의 장이다. 위헌 위법한 비상계엄으로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전임 대통령 탓에 느닷없이 치러지는 선거이다.

국민의힘 쪽에서도 "한때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 "친윤은 폐족이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차라리 착실하게 다음 지방선거와 총선거, 그리고 5년 후를 기약하자는 거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곡마단의 장구 소리에 묻혔다. 민주당의 "확실한 내란종식과 국민주권의 회복"이라는 프레임에 국민의힘은 철권통치의 가능성을 확대하며 견제와 균형을 내세운다.

내란세력이란 딱지를 희석하기 위해 이준석 후보와 단일화를 종용하며 보수대결집을 부르짖는다. 해가 지고 장이 파하면 모두가 뭔가 손에 들고 집을 향할 것이다. 이때 과연 손에 무엇이 들려 있을까. 집을 나서면서 목표했던 생필품이나 배우자를 위한 선물일까, 아니면 지난번 장날처럼 자식 카드로 긁은 만병통치(萬病痛齒) 약일까.

도도한 역사는 대통령이나 몇몇 정치인이 만드는 게 아니다. 시민의 뜻, 요즘으로는 시민 집단지성이 이끄는 거다. 줄리어스 시저는 "가장 위험한 적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의 적도 그럴까. 생각하면서도 눈감은 곳, 알면서도 고개를 돌린 곳에 있는 것 아닐까. 지난번이 그랬지 않나. 결국 유권자의 깨어 있는 손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역사의 이정표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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