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으로 치러지는 21대 대선의 대진표가 나왔다. 기호 1번 민주당 이재명, 기호 2번 국민의힘 김문수, 기호 4번 개혁신당 이준석, 그리고 기타 후보들이다. 기호 3번은 조국혁신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결번이 됐다.
이런저런 여론조사를 보면 유력후보들의 판세는 ‘1강 1중 1약’으로 보인다. 지지율 50%를 넘나드는 민주당은 이미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분위기이다. 5월1일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일었던 먹구름은 서울고법이 1차 기일을 대선 이후 6월18일로 연기하면서 말끔히 걷혔다.
국민의힘은 5월10일 새벽의 후보 교체 ‘당내 쿠데타’가 당원 투표로 불발됐다. 3차에 걸친 경선을 통해 선출된 김문수 후보를 단일화란 명목으로 주저앉히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대신 내세우려다 실패한 거다. 마치 12.3 비상계엄이 민심에 의해 진압됐듯이 5.10 후보 교체도 당심(黨心)에 의해 정리된 셈이다.
공통점은 친위 쿠데타도 당내 쿠데타도 만 하루를 지속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검사 출신들의 독재적 전횡이 일반 시민과 당원들에 저지됐다는 거다. 윤 전 대통령은 시민의 힘을, 국민의힘 지도부는 진짜 국민의 힘을 가볍게 여겼다. 대통령직 파면과 비대위원장직 사퇴는 오판과 오만의 대가이겠다.
여하튼 12일부터 본격 선거전이 시작됐다. 이재명 후보는 몸조심 중이다. 김문수 후보는 ‘반 이재명 빅 텐트’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먼저 단일화 실패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갈라진 당심을 추스르는 게 급선무이겠다. 이준석 후보는 1차 관문이 두 자릿수 득표일 것이다. 득표율이 10%를 넘으면 선거비용 50%를, 15%를 넘으면 100%를 보전 받는다. 득표율에 따라서는 차세대 리더로서 우뚝 서게 되고 나아가 대선 이후 보수진영 정계개편이 이뤄진다면 그 중심이 될 수 있다.
강물이 굽이칠 때는 소용돌이가 동반된다. 물이 뒤집어지고 포말이 인다. 온갖 부유물도 함께 섞여 빙빙 돈다. 역사도 그렇다. 역사의 변곡점에는 과거의 잔재와 현재의 옹이와 미래의 가능성이 뒤범벅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그렇다. 후보의 면면을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 설계라도 한 듯이 과거의 영광, 현재의 과실, 미래의 투자로 나뉘어진 인상이다.
가치로 환산하면 그림과 현찰과 코인의 차이라고 할까. 그림의 가치는 누가 얼마로 평가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경우에 따라 이발소 그림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릴 수도 있고, 반대로 진품명품에 출품했다가 한낱 거리의 작품으로 판정될 수도 있다. 코인의 가치는 지금도 오르락내리락 불확실하다. 트렌드에 따라 ‘대박’의 복덩이이지만 ‘쪽박’의 원수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과 루나 테라의 등락이 대표적이다.
현찰은 확실한 눈 앞의 가치이다. 기회를 봐 가며 금리를 취할 수도 주식이나 부동산을 취득할 수도 있다. 황금보다 현금이라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자산 증식 방법은 사람마다 선호하는 형태가 다르다. 아무래도 가진 쪽은 골동품과 그림을 사두기도 하고, 없는 쪽 특히 젊은 층은 코인 대박을 노리는 듯하다. 대체로 일상의 시민들은 예금과 적금을 이용한다. 물론 요즘은 서학과 동학으로 불리는 ‘개미’로서 열심히 국제정세와 세계경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김문수 후보는 인생역정이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경북고 서울상대를 나온 대표적인 TK임에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맞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이끈 민주화운동 1세대이다. 고교 때 유신 반대 시위로 무기정학을 당했고, 대학 때는 김근태 등과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학교에서도 제적 당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 자극 받아 노동현장에 뛰어든 위장취업 1세대이다.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노동자 권리를 쟁취하는데 앞장서고 서노련도 결성했다. 전두환 정권의 수배로부터 그를 숨겨준 노동조합장과 결혼도 했다. 유시민 심상정 등 민주인사들과 동지적 관계였고, 인민노련(인천민주화노동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보안사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도 받았다. 그야말로 학생운동부터 노동운동까지 구속과 학교 제적으로 점철된 청춘이었다.
그런 그가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자 정체성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정치에 투신해 민중당을 창당했으나 총선에서 1석도 얻지 못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부름으로 민자당에 입당해 보수진영에서 국회의원 3선, 경기도지사 2선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선 경선에서 맞붙었고, 아스팔트 보수로 지칭되는 자유통일당 대표에 올랐으며, 윤석열 정권에서 노동부장관으로 임명됐다.
그야말로 극좌에서 극우까지 정반대 이념의 중심에 섰다.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에서는 ‘변절자’로 불리지만 그는 민자당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묻지만 사람은 원래 변하는 거다. 그는 과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전설이었다. 지금은 극우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윤석열 탄핵에도 반대해 국회에서 내란사태에 사과하지 않고 버티면서 ‘꼿꼿 문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여부는 옥션에 나선 구매자에 달렸다. 투표에 나선 유권자 말이다. 청년기 민주화운동에 새긴 뚜렷한 족적, 장년기 군부독재의 뒤를 잇는 정당에서 승승장구, 노년기 아스팔트 우파의 중심으로 탄핵 반대까지 모두 똑같으면서도 또다른 김문수이다.
그의 인생은 노동운동가에서 산업화의 기득권으로, 민주화에서 독재를 잇는 육법당(陸法黨)의 총아로 극적으로 바뀐 역정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위장취업 노동운동가에서 노동부장관이 됐지만 여전히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의문이다.
그가 외치는 ‘반 이재명’ 말고 미래의 청사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해 파면한 윤석열 탄핵의 강을 과연 건널 수 있을지, 건널 의지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재명 후보의 인생역정도 드라마틱하다. 김문수의 인생이 독재와 민주화, 재벌과 노동의 이념지형 굴곡을 거쳤다면 이 후보 인생은 산업화의 그늘과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불평등 심화라는 사회경제적 굴곡을 거치고 있다. 그가 14세의 소년공에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생이 되고, 변호사가 돼 서울에서 쫓겨난 성남의 노동자들을 위해 인권운동을 펼치며, 직접 행정일선에 나서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행로는 한편의 ‘인생극장’이다.
성남시장 때는 전국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시의 재정이 사실상 부도가 났다는 거다. 이를 1년 만에 벗어나면서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재판에 계류된 대장동이나 백현동 개발도 그 관련일 것이다. 개발이익을 시민에게 돌렸을 뿐 자신은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그야말로 탈탈 털었지만, 아직까지 찾아낸 돈은 없다.
부인이 법인카드로 전현직 국회의원 부인과 운전기사 및 수행원 점심값으로 10만 4000원을 긁었다는 혐의만 먼지털이로 찾아냈을 뿐이다. 그는 ‘먹사니즘’과 ‘잘사니즘’을 내세운다. 어쩌면 그의 인생 저 깊이에서 길어 올린 구호가 아닐까. 스스로 생존과 오늘보다 나은 삶으로의 험로를 걸으며 개인과 사회의 니즈(Needs)를 자연스럽게 연계한 것 아닐까.
정치의 목표가 희망을 주는 것이라면, 그는 자신의 삶 자체로 희망의 서사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천에서 난 용’에게 이번 대선은 화룡점정의 기회가 아닐까. 이재명은 김문수와 다른 듯 닮은 점이 있다. 권력에 굽히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의 표적수사도 꿋꿋이 버텨내고 있다. 김문수는 고문과 구속에도 굽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꼿꼿 문수’ 아닌가.
반면 자리 제안에 대한 처신을 둘이 달랐다. 그동안 경기도지사 출신은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이번에는 깨질 공산이 크다. 둘 다 경기도지사 출신이니까. 또한 선출된 대통령은 모두 다른 당명으로 당선됐는데, 이 징크스도 깨질 듯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이재명도 민주당이고,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이어 김문수도 국민의힘이다.
이준석 후보의 인생 역시 드라마틱하다. 서울과학고와 카이스트를 거쳐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극심한 학벌사회에서 서울대가 주름잡는 가운데 세계 최고의 학벌을 갖춘 거다. 그는 일찌감치 교육사업에 투신했다가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이 된다.
26세에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대 총선과 보궐선거, 21대 총선에 새누리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 후보로 서울노원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하지만 2021년 헌정사상 최초로 30대에 최연소 제1야당 국민의힘 대표가 된다. 그는 20대 대통령선거와 이듬해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당 대표직에서 쫓겨난다. 이후 개혁신당을 창당해 22대 총선에서 경기화성을(동탄) 지역구에 당선된다.
윤석열 탄핵으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는 지난 3월 31일 만 40세가 돼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헌정 사상 최연소 대선 출마자인 셈이다.그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굳건한 양당체제에서 얼마나 선전할지 두고 볼 일이다.
마치 화폐와 가치교환의 수단으로 대두한 코인처럼 혁명적 변화가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언제쯤 가시화될지 모르는 상황과 흡사하다. 그럼에도 투자가 관점에서 지금 얼마라도 묻어두면 비트코인처럼 초대박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허망한 신기루처럼 사라져 정치사회적 자산의 손실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후보들의 개인적 차이를 떠나 이번 선거는 역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탄핵 찬반, 기득권과 서민, 과거와 현재의 대결이 아니다. 시민의 힘이 직접 반영되는 시대로의 이행 말이다. 간접 민주정치가 초연결시대에 ‘직접적 민주정치’로 전환하고 있는 거다.
이번 대선의 바탕인 12.3 비상계엄을 저지한 시민의 힘도, 대법원의 제1당 후보 ‘삭제’ 시도를 막은 시민의 힘도, 제2당 지도부의 우격다짐 후보 교체를 막은 시민의 힘도 결국 광장과 온라인이 빛의 속도로 연결된 시대의 정치 현상이다. 그리스의 아고라와 모바일 소통이 어우러진 디지털 공론장이 정치적인 사안을 직접 결정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를 구시대의 정치만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