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전 대통령 재판과 눈가리개 벗은 '정의의 여신' [박종권의 나우히어]
  • 박종권 언론인
  • 입력: 2025.04.22 00:00 / 수정: 2025.04.22 00:00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두 번째 정식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착석해 있다. 피고인 석 뒤의 모니터에는 정의의 여신 상징물이 보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두 번째 정식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착석해 있다. 피고인 석 뒤의 모니터에는 정의의 여신 상징물이 보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법정 모습이 21일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의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 2차 공판에서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와 주위를 둘러본 뒤 피고인석에 앉았다. 그가 검사석과 변호인석이 아닌 피고인석에 앉은 모습은 자체로 역사의 한 장면이겠다.

우리는 이미 4명의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단죄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번이 5번째 비극이다. 굴곡진 현대사의 안타까운 장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지난 14일 1차 공판에는 법정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다. 법원 출입도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허용해 역사적 순간을 담으려는 언론의 카메라를 가로막았다.

이번 2차 공판에도 지하주차장 출입을 허용했다.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도 제한한 셈이 됐다. 재판정에 섰던 역대 대통령과도 다른 처우였다. 12.12군사쿠데타와 5.18 관련 내란 혐의로 법정에 선 전두환 노태우도 수의를 입은 채 사진을 찍혀 역사적 장면으로 남았다. 이명박과 박근혜도 법원 정문을 통해 출두하며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법정 재판과정도 TV로 생중계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번째 공판에서 취재진들의 퇴장을 명령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번째 공판에서 취재진들의 퇴장을 명령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결과적으로 윤 전 대통령만 특혜를 받은 셈이다. 그가 앞선 네 명의 대통령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검사 출신이라는 것이겠다. 법의 신뢰는 "만인에 평등하다"는 전제 아래 세워진다. 항간에 검사와 판사의 관계가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이어서 눈 질끈 감고 봐주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내란 사건 담당 재판부가 과연 정의로울 것인지 의심을 받는 상황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 시작은 지귀연 부장판사가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날(日)이 아닌 때(時)로 환산해 구속을 취소한 것이다. 지난 71년 동안 일자로 산정해온 것을 유독 윤 전 대통령에게만 시간으로 계산해 풀어준 것이다.

그 후 다른 사건 그 어떤 피의자도 시간으로 산정해 구속을 취소한 사례는 없다. 그런데 구속취소에 이어 법원 정문이 아니라 지하주차장으로 출입하게 하고 법정 촬영도 불허하니 의혹이 이는 것 아니겠나. 게다가 1차 공판 인정신문에서 재판장이 직접 피고인의 직업을 소개해 입길에 올랐다.

눈을 뜨고 있는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더팩트 DB
눈을 뜨고 있는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더팩트 DB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장이 인정신문에서 직업을 묻자 "무직"이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윤 피고인에게는 모두진술을 포함해 93분간의 장광설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날 피고인석에 앉은 윤 전 대통령의 뒤쪽에 법원의 재판상황과 증거를 보여줄 대형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모니터 바탕화면은 법원의 상징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로 천칭과 법전을 손에 든 정의의 여신이다.

재판의 과정도 절차도 결과도 정의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다짐이겠다. 원래 정의의 여신 디케는 눈을 가린 채 오른손에 검을, 왼손에 천칭을 든 모습이다. 천칭은 치우치지 않은 공평함과 공정함을, 날카로운 검은 추상 같은 심판을, 눈가리개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음을 나타낸다.

헌데 우리의 대법원 청사 2층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검 대신 법전을 들었다. 눈가리개도 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본다. 이를 두고 한때 풍자 섞인 비판이 일기도 했다. 눈을 가리지 않은 이유는 피고인이 권력자인지 재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그래야 유전무죄(有錢無罪) 유권무죄(有權無罪)를 판결할 수 있다는 거다.

검 대신 법전을 든 것도 추상 같은 심판보다 법조문만 따지는 법기술자임을 자인하는 셈이라고도 풍자했다. 다른 정의의 여신상이 대체로 서있는 입상(立像)인데 반해 앉아있는 좌상(坐像)인 점도 권위적으로 비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래서 그랬을까. 21세기 들어 제작된 법원 상징물은 정의의 여신이 역동적으로 서있는 형상이다.

다만 좌상의 여신이 오른손에 천칭을 든 반면 상징물의 여신은 왼손에 천칭을 들고 있다. 이를 두고도 좌상은 YS정부 때인 1995년, 상징물은 DJ정부 때인 2000년에 제작됐다는 점에서 우파 좌파 저울론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정의의 여신상에 얽힌 이야깃거리가 최근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은 재판부의 자업자득이겠다.

내란 우두머리라는 중범죄 혐의를 받는 윤 피고인에 대해 지나치게 온정적이거나 편파적인 특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심을 자초한 것이다. 눈가리개를 벗고 윤 피고인을 바라보며 "직업이 전직 대통령이시죠"하며 예우했다는 거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지만 눈을 가리지 않은 정의의 여신은 상대를 알아보는 거다.

또 추상 같은 칼 대신 법전을 든 것도 그렇다. 재판을 진행하는 지 부장판사는 법조문을 문구를 따져 일자와 시간의 어정쩡한 경계를 미세하게 비집고 들어가 구속취소를 결정했다고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서 공수처의 수사권까지도 문제를 제기해 많은 시민들이 재판 결과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혹자는 지 부장판사가 구속취소에 이어 수사권 흠결을 들어 공소를 기각할 수도 있다는 엉뚱한 가정을 제기한다. 그러면 구속취소에 즉시항고 하지 않은 검찰이 공소기각에도 항고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으냐 걱정하는 거다. 이 경우 내란에 중요 임무 종사자들은 처벌받고 정작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피고인은 무죄 방면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우(杞憂)이겠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구속취소부터 법정촬영 불허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결정을 거듭하지 않았나. 이제는 이미 신뢰를 상실한 것으로 보이는 형사합의25부가 어떠한 판결을 한다고 해도 양 측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형과 무기징역밖에 없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서 가벼운 처벌을 받으면 시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다면 피고인측은 재판부가 여론에 떠밀려 잘못된 판결을 했다고 주장하지 않겠나.

재판의 과정과 절차는 물론 결과까지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도 사법 신뢰가 의심받는 처지에 놓였다. 1심 법원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지 않았나. 1심과 2심의 선고가 천양지차로 달라 시민들은 과연 "정의는 무엇인가" 묻는다.

그런 가운데 혹여 윤 피고인에 대한 재판부도 "우리는 1심이니까 억울하면 2심의 판단을 받아 보라"는 식일까. 그것은 절대 아닐 것으로 믿는다. 그래도 이미 오이 밭에서 신발을 신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썼다면 더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처신해야 하지 않겠나. 스스로 재판을 회피하는 결단으로 무너진 사법신뢰를 다시 세울 수 있다. 본인이야 억울할 수 있지만 개인의 명예보다 사법신뢰가 더 엄중하지 않은가. 오히려 이러한 비범한 결단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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