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인천=김형수 선임기자] 돈 내는 사람이 많고 받을 사람이 적다면 좀 더 많은 돈을 나눌 수 있다. 연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저출생과 기대수명의 연장에 따른 고령화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받을 사람이 많아지니 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 단축될 수밖에 없다. 연금제도를 손보지 않고는 앞으로 30년 이내에 국민연금 재정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추산된다. 이대로라면 2030세대의 노후 보장은 든든할까? 출산 정책이 성과를 내야 청년세대의 연금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연금 정책이 안정적으로 정착돼야 출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은 62세 정년 연장 연금 개혁의 여파로 2012년 대선에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에게 정권을 넘겨야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대적인 국민 반대와 총파업 등 격렬한 시위를 겪으면서도 대통령 권한을 동원해 연금 개혁안을 강행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주장이 얼마나 관철됐는지는 의문이다. 2023년 마크롱은 부실한 국가 재정을 타개하기 위해 "프랑스 노동자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며 점진적으로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년 연장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정책이지만 소득대체율이 74%인 프랑스 노동자들에게는 극심한 저항을 불러온 다른 문제였다.
실질 소득대체율 30% 정도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 개시 연령이 65세로 늘어난다면 법적 정년 60세와의 간극이 5년이나 된다. 소득이 중단되는 이른바 '은퇴 크레바스'가 길어진다. 국가 재정 곳간이 마르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연금제도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노동자들을 직장에 더 남겨두려 하지만 연금 개혁과 맞물린 정년 연장은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된다는 논리이다. 조기 취업자, 여성, 낮은 급여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연금 개혁이 얼마나 평등한 제도가 될 것인가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연금 개혁은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고 동의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는 난제이다. 정권 유지를 위한 포퓰리즘이나 미봉책으로는 개혁에 다다를 수 없다. 정치권이 폐쇄적인 논의보다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주장에 먼저 귀 기울이고 머리를 맞대야 최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셈법으로 미뤄왔던 국민연금 개혁 과제가 18년 만에 정치적 합의를 거쳐 첫 발을 디뎠다. 모처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의 모수 개혁이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을 연장함으로써 발등의 불을 끈 것처럼 보이지만 세대와 정치 이해집단 간 이견과 대립은 순탄하지 않을 듯싶다. 특히 젊은 세대의 반발에 직면하는 등 연금 양극화를 해결하고 최소한의 소득 보장안을 만들어내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연금 개혁은 정치권력의 존폐를 가름하는 개혁의 과제로서 사회적 합의를 전제한다.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상회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다. 그러나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아직 OECD국가 중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노년부양비가 유소년부양비를 앞섰으며, 미래 노인 부양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추세이다. 과연 국민연금은 대한민국 노인 세대의 노후를 보장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고령화 현상은 저출생과 평균 수명의 연장에 기인한다. 저출산·고령화 정책은 지속가능한 제도 운영의 핵심 요인이지만 저출산 정책에 수백조 원을 쏟아붓고도 지난해 잠정 합계출산율은 0.75명에 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부산, 광주가 전국 평균보다 낮았으며, 가장 많이 증가한 도시는 인천으로 비교 전년 대비 0.07명이 증가한 0.76명으로 나타났다.
연금 재정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저출산 정책이 성공하고 완만한 고령화의 진전 과정을 거친 프랑스도 연금 개혁은 정권을 건 절대적 도전 과제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연금·의료·교육·노동개혁 등 4대 구조개혁을 국정과제로 추진했으나 이해충돌의 양상이다. 24일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금 개혁이 청년세대에 불평등한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주장했다.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덜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의 지속가능성은 담보하기 어렵다. 앞으로 구조개혁 논의에서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적극 담아야 한다. '낸 만큼만 준다'는 스웨덴, 일본 등 유럽 국가들이 도입하고 경험한 '자동 조정장치'는 우리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척박한 노년 세대의 경험만은 반복되지 않도록 기성세대의 지혜도 필요하다. 또 국민·기초·퇴직·개인연 연금금 등 다층 연금 체계를 구축하고 일찍 계몽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저출산·고령화 정책에 더 집중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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