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8명의 헌재 재판관 중 5명(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김복형)이 '기각', 2명(정형식·조한창)이 '각하', 1명(정계선)이 '인용' 의견을 냈다. 이로써 한 총리는 87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고, 초유의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대행의 대행' 체제도 공식적으로 끝났다.
정치권은 한 총리의 탄핵 기각을 두고 극명하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탄핵안이 정략적 탄핵이라며 '9전 9패'의 줄탄핵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석고대죄하라며 책임을 돌렸다. 한 총리 탄핵 전 만났던 일부 야당 구성원 중에서도 헌재가 한 총리 탄핵을 인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점치기도 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한방'으로 대역전을 노리는 듯하다. 민주당은 신속하게 윤 대통령을 파면하라며 헌재를 압박했다. 한 총리 탄핵 기각 결정이 윤 대통령 탄핵 선고에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의 의견이 뚜렷하게 갈린 건 께름칙한 부분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만장일치 인용을 더 예단하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헌재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진영 간 대립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헌재 앞에서 윤 대통령의 신속한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중 날아든 날달걀에 얼굴을 맞았고, 이재정 의원은 한 남성으로부터 허벅지를 가격당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지지자 두 명이 분신으로 숨졌다. 더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없게끔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답답하게도 정치권은 국론분열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헌재와 광화문 일대에서 장외 집회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탄핵을 촉구하며 길거리로 나서고 있고, 국민의힘은 헌재 앞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극성 지지자들까지 몰려 일상의 불편을 겪는 시민의 불만과 아이의 등하굣길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헌재의 선고가 기약 없이 늦어지는 이유를 알 길이 없어 답답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루빨리 나라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국민은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4일이 유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빗나간 지 오래다. 민망하게도 주 후반만 되면 '다음 주 중후반' 전망이 반복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4월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여야가 언제까지 소모적인 논쟁과 정치공세에만 치중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론전에만 집중하며 사회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고 당리당략에만 매몰돼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민생을 챙겨야 할 여야가 앞다퉈 장외 집회나 릴레이 시위로 길거리를 누비면서 정치적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결국 여야가 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키우는 걸 자초하는 셈이다. 대환장 '파티(party)'다.
이런 와중에 전국 곳곳에서 산불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대형 산불에 소중한 산림 자원이 잿더미가 되고 있다. 산림청과 소방당국, 각 지역 공무원과 진화대가 진화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산불 진화 중 희생된 인명이 4명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여아가 탄핵 공방에만 혈안일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