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Q의 신' 요키치를 보며 '고트' 서장훈을 소환한 '까닭'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 유병철 기자
  • 입력: 2025.02.23 00:00 / 수정: 2025.02.28 10:28
NBA 지금은 '조커 시대' 센터가 3점슛과 패스까지 달인, 'BQ의 신'
3점슛을 쏘면 욕 먹었던 서장훈, 창조적 파괴 막는 '획일화'
조커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현역 최고의 농구 선수, 니콜라 요키치./요키치 페이스북
조커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현역 최고의 농구 선수, 니콜라 요키치./요키치 페이스북

[더팩트 |유병철 전문기자] # 어떤 스포츠든 고트(Greatest Of All Time)가 있습니다. 진정한 고트는 우승횟수나 개인기록만으로 평가한다면 그 의미가 축소될 것입니다. 굳이 패러다임 이론(feat 토마스 쿤)을 빌리자면, 고트는 해당 종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죠. 육상 높이뛰기에 배면뛰기(일명 포스베리 플롭)를 도입한 딕 포스베리가 대표적입니다. 농구를 보면 화려한 개인기와 카리스마로 큰 인기를 누린 NBA의 마이클 조던, 한국의 허재 등이 고트라 할 수 있습니다. 각각 '농구 황제', '농구 대통령'의 애칭으로 불리니 수긍이 갑니다. 더 멀리 보면 필리핀을 강타한 신동파, ‘슛도사’ 이충희 그리고 NBA의 윌트 챔벌레인, 카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 샤킬 오닐 등도 해당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 요즘 NBA는 어떨까요. 빠른 공수전환이 특징이어서 그럴까요, NBA는 10년이 멀다하고 패러다임 변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농구에서 3점슛의 정의를 새롭게 쓴 2010년대의 스테판 커리(36 골든스테이트)는 전성기는 지난 듯하지만 아직도 현역입니다. 올해 올스타전 MVP이기도 합니다. 커리 덕분에 NBA는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3점슛을 쏘아대는 ‘양궁 농구’가 일반화됐습니다. 심지어 이 때문에 농구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양궁 농구'는 지금 세르비아 출신의 니콜라 요키치(30, 덴버)의 ‘조커 농구’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한다는 말도 있는데, 요키치에 와서는 농구는 머리로 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NBA 홈페이지에 소개된 니콜라 요키치의 올시즌 기록(21일 현재)./NBA 홈페이지
NBA 홈페이지에 소개된 니콜라 요키치의 올시즌 기록(21일 현재)./NBA 홈페이지

# 조커(Joker)는 참으로 멋진 요키치의 별명입니다. 일단 알파벳 스펠링이 이름(Jokic)과 비슷하고, 결정적으로 요치키가 NBA 역사를 새로 쓸 정도로 다재다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카드게임에서 조커가 다이아몬드, 하트 따위에 속하지 않으면서 가장 센 패가 되기도 하고, 다른 패 대신으로 쓸 수 있듯이 말입니다. 211cm 129kg의 요키치는 포지션이 센터입니다. 센터는 골밑득점과 리바운드를 주로 담당하죠. 하지만 요키치는 포인트센터(포인트가드+센터)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본업 외에 농구의 거든 모든 부분에서 탁월합니다.

득점 위치가 다양하고, 어시스트 능력이 발군입니다. ‘패스하는 센터’로 불리기도 하죠. 올시즌 평균 30득점, 12리바운드, 10어시스트에 도전하고 있는데, 득점(3위), 리바운드(3위), 어시스트(2위), 스틸(4위), 3점슛 성공률(5위)에서 모두 톱5 안에 자리했습니다. 다재다능의 대명사인 '트리플더블'을 시즌 평균으로 달성하고 있으니, 트리플더블에 관한 온갖 기록을 현재진행형으로 경신하고 있기도 합니다.

# 요키치가 위대한 것은 단순한 '기록 포식자'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전술이해도가 높아 ‘BQ(농구IQ)의 신’이라는 애칭도 있습니다. 강력한 수비로 유명한 ‘에펠탑’ 루디 고베어(미네소타)가 "요키치는 우리 패턴을 다 알고 있다. 스파이가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예술의 경지에 닿은 멋진 패스, 솜보르 셔플로 불리는 독특한 슈팅자세에서 나오는 신기의 슈팅까지. 요키치의 플레이는 정말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요키치 하이라이트’를 검색하면 멋진 영상이 즐비합니다. 시크하면서도 솔직담백한 성격에, 적절한 장난기와 타인을 배려하는 매너, 그리고 결혼반지를 신발끈에 묶고 경기를 뛰었을 정도로 가족도 중시합니다. 농구는 직업이기에 최선을 다할 뿐, 비시즌에는 취미인 경마를 즐기고, 고향인 세르비아 솜보르에서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일상을 즐깁니다. 올해 올스타에 뽑힌 소감을 묻자 "휴식기에 제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팬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인기 방송인인 서장훈은 한국농구의 고트 중 한 명이다. 지난 1월 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 더팩트 DB
지금은 인기 방송인인 서장훈은 한국농구의 고트 중 한 명이다. 지난 1월 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 더팩트 DB

# 여기서 ‘라떼’ 얘기 하나. 지금은 인기 방송인인 서장훈은 현역 시절 ‘국보급 센터’로 불렸습니다. 207cm의 큰 키에 BQ가 높고, 슈팅능력이 좋아 한국 농구의 고트가 됐죠.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한국 성인농구에서 서장훈을 보유한 팀이 무조건 우승할 정도였습니다. 프로농구 전 농구대잔치는 원래 예비 대학생이 출전할 수 있었는데, 서장훈이 연세대에 진학하려 하자 이게 금지됐습니다.

실제로 서장훈은 연세대 1학년인 다음 해 농구대잔치(93-94시즌)에서 허재의 기아차와 삼성, 현대를 모두 제치고 대학팀 최초의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서장훈이 대학졸업을 앞두자 서장훈의 팀과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프로농구가 생겼고, 서장훈의 위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농구만 잘 한 게 아닙니다. 서장훈은 선수시절부터 달변에 똑똑하기로 유명했습니다.

# 이런 서장훈에게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슈팅이 정확해 찬스가 나면 가끔 3점슛을 던지곤 했는데, 많은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지도자에게는 맞기도 했습니다. 센터가 무슨 3점슛을 시도하냐는 것이죠. 나중에는 이게 좀 완화돼 ‘3점슛을 쏘는 센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이 별명 자체가 당시의 꽉 막힌 도그마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커리와 요키치도 초창기 평가절하를 겪었습니다.

커리는 왜소한 체격, 요키치는 뚱뚱한 체형에 느린 스피드로 다들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요키치는 2014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1번으로 지명을 받았는데, 얼마나 존재감이 없었는지 생중계 때 이 순간 타코벨 광고가 나갔습니다. 이런 요키치가 최근 4번의 NBA 시즌에서 3번이나 MVP로 뽑혔고, 올해도 강력한 후보입니다. 스포츠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다양성과 변화는 발전의 디딤돌입니다. 농구와 요키치, 그리고 서장훈을 통해 우리네 풍토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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