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가상세계' 사는 듯한 대통령
  • 이헌일 기자
  • 입력: 2025.02.07 00:00 / 수정: 2025.02.07 00:00
'부정선거' '계몽령' '호수 위 달그림자'…비상식적 주장 지속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이헌일 기자] 세계관. 사전적 의미는 세계를 인식하는 틀이다.

다만 이 용어는 몇 년 전부터 예능계와 다양한 창작물을 중심으로 사전적 의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사용되기도 한다. 작품마다 인물마다 고유의 규칙과 특성을 부여하고 이를 세계관이라 표현하는 식이다. TV 프로그램이든 소설이든 이런 작품을 향유하는 사람들 또한 그 규칙을 인지하고 그 틀 안에서 사고하며 즐긴다. 일종의 가상세계를 만드는 셈으로, 이른바 '부캐'도 이를 응용한 창작 소재로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매주 2회씩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다. 청구인인 국회 측과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 측이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 등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또한 사안에 대한 주목도를 방증하듯 각 변론기일마다 주요 내용이 다수 언론을 통해 상세하게 보도된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이후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부터 주장한 논리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비상계엄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이며, 비상계엄의 선포와 해제 등 일련의 과정은 모두 헌법의 틀 안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반면 국회 측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실행했고, 그 과정에도 하자가 있었으며 특히 국회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공방을 상식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위법 요소가 있었다는 평가가 우세한 분위기다. 윤 대통령 지지층 결집 등을 이유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추세이긴 하나 여전히 탄핵을 찬성하는 비율이 반대 비율보다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2월 3일 밤 많은 국민이 실시간으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국민담화를 시청했고, 포고령 1호도 직접 확인했다. 국회, 지방의회, 정당 등 입법부 활동을 금한다는, 의료현장에 복귀하지 않는 의료인과 포고령 위반자는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는 바로 그 내용이다. 또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해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모이는 과정도, 경찰이 국회 진입을 막고, 무장한 군 병력들이 국회로 진입하는 장면도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국민들은 이를 똑똑히 지켜봤다.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2024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외부 유리창이 계엄군 진입으로 파손돼 있다. /이새롬 기자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2024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외부 유리창이 계엄군 진입으로 파손돼 있다. /이새롬 기자

그런데 탄핵 심판이 진행될 수록 윤 대통령 측의 주장은 점점 더 현실과 동떨어져 가는 모습이다. 이 모든 과정을 국민들이 지켜봤음에도 다친 사람도 없고 실제 폭력이 자행되지 않았으니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은 5차 변론기일에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호수 위에 뜬 달의 그림자를 좇아가는 느낌"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저런 서슬 퍼런 포고령을 내리고, 중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해 군사작전을 펼쳤음에도 이는 모두 야당의 폭거를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행위였다며 '계몽령'이라는 표현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이밖에도 일선 지휘관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체포조를 가동하라는 지시를 대통령 혹은 상부에서 받았다고 증언하는데 윤 대통령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무려 126건의 관련 소송을 법원에서 모두 각하 또는 기각한 부정선거 주장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처럼 대통령 또한 법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를 주장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이렇게 방어를 목적으로 논리를 구축하다보니 변론이 거듭될 수록 일반적인 상식에 반하는, 그들이 짜놓은 세계관에 점점 더 철저히 갇혀가는 모습이다. 대선 당시 16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표를 던졌고, 절반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현 주소가 이렇다.

윤 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실체인 달이 아닌 그림자를 좇는 건 과연 누구일까.

hone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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