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는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3월 1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반려견들과 휴식하고 있다./대통령실 |
[더팩트 | 박종권 칼럼니스트] 법(法)은 차갑다. 인정사정이 없다. 그래서 추상(秋霜), 가을 서리에 비유하는 것일까. 양날의 칼이라고도 한다. 타인을 찌르지만 결국 자신도 찔린다는 거다. 법가(法家)의 대표격인 진나라 상앙(商鞅)이 그렇다. 그는 한 집이 죄를 지으면 열 집을 똑같이 벌하고, 죄 지은 것을 알리지 않으면 허리를 자르는 엄한 신법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런 엄혹한 법령을 백성들이 믿을까. 상앙은 세 길 나무를 도성의 저잣거리 남문에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십금(十金)을 준다"고 포고했다.
그래도 옮기는 자가 없었다. 이에 상금은 오십금으로 올린다. 어떤 이가 허실삼아 나무를 옮기자 곧바로 오십금을 준다. 거짓 약속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를 바탕으로 진나라는 법치국가로 성장한다. 하지만 덕치(德治)보다 법치(法治)에 백성들의 삶은 삭막하게 된다. 결국 상앙 자신도 자신이 포고한 법령의 그물에 걸려 거열형에 처해진다.
세난(說難)을 지은 한비자는 진나라의 재상 이사와 함께 순경(荀卿)에게 법을 배웠다. 유세를 하더라도 절대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말라고 가르쳤던 한비자 아닌가. 그럼에도 적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와 동문수학했던 이사는 자신보다 뛰어난 한비자를 경계해 헐뜯는다. "한비자는 한나라 출신이니 한나라를 위해 일할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한비자는 옥에 갇혀 이사가 보낸 독약을 마신다. 법적법, 법가의 적은 법가인 셈이다.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천하통일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도 한때는 진나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진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본인이 한비자를 헐뜯은 논리가 자신에게 향한 거다. 이때 이사는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작은 시냇물도 가리지 않는다"고 돌변한다.
국정은 인사가 만사인데 끼리끼리 무리만으로 대업을 이룰 수 없다는 거다. 비유하면 특정 지역 출신만으로, 특정 대학 출신만으로, 특정 직역 출신만으로 구성된 정권으로는 큰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천하통일도 어렵다는 거다.
그는 진시황의 마음을 움직여 출세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페라리는 장의차에 불과하다. 영화 ‘남과 여’에서 주인공은 카 레이싱을 설명한다. "시속 200km로 돌아야 하는 커브 구간에서 190km로 달리면 우승하지 못한다. 그런데 210km로 달리면 주로를 이탈해 전복된다"고 말이다.
성공을 향해 달리는 인생도 그렇다. 항상 직선 주로만 펼쳐지는 게 아니다. 구불구불 행로에서 주저하면 뒤처지고 과속하면 탈선하는 거다. 이사는 진시황이 죽었을 때가 변곡점이다. 올바른 선택은 장자인 부소(扶蘇)가 제위를 이어받도록 하는 거다. 하지만 환관 조고(趙高)의 꾐에 흔들린다. 결국 차남인 호해(胡亥)를 지지한다. 멈춤 없는 질주의 끝은 비극이다. 결국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주인공 간신 조고의 참소로 죽임을 당한다.
당나라 시인 조업이 이사열전을 읽고 독이사전(讀李斯傳)이란 시를 지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속이기도 어려운데, 남들이 다 아는 것을 속이려다 죽음을 자초했다. 겨우 한 사람의 손바닥으로 세상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없다." 옛날 일인데도 현재와 오버랩 되지 않나.
묘하다. 법(法)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는 것일까. 형장으로 끌려가는 이사가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탄식한다. "너와 함께 누렁이(黃犬)를 데리고 동문 밖에서 토끼사냥을 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한때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뽐냈던 법가(法家) 출신 이사의 마지막 꿈은 황견과 누리는 자유였던 거다.
법조인 출신 문재인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아나운서 출신 고민정(현 국회의원)이 질문한다. "후보의 세가지 소원은 무엇인가." 문 후보가 간단하게 대답한다. "첫째 정권교체, 둘째 세상 바꾸기, 셋째 자유." 이를 두고 문재인의 측근 이호철은 "후보의 자유는 임기를 마치고 마루(반려견)와 함께 뒷산을 산책하고 들꽃보기"라고 소개했다.
풍산개인 마루는 흰둥이(白犬)이다. 마루는 문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서 생활하면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풍산개 ‘곰이’와 짝짓기에 성공해 7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의 이름은 아름, 다운, 강산,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문 대통령이 2022년5월 퇴임하면서 마루도 경남 양산으로 왔다가 그해 12월에 죽었다. 진나라의 이사와 달리 문 대통령은 반려견과 들녘을 달리는 자유를 만끽한 거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으로 탄핵돼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도 소문난 애견인이다. 2021년 후보 시절 다리를 벌리는 ‘쩍벌’ 습관이 지적되자 소셜미디어 ‘토리스타그램’에 반려견 마리(비숑 프리제)가 엎드린 사진을 싣고 "쩍벌 마리, 마리는 180도까지 가능해요"라고 적었다. 오래된 습관이라고 에둘러 설명한 거다.
지난해 추석에는 반려견 새롬이와 써니를 안고 명절 인사 사진을 찍었다. 윤 대통령의 한남동 사저에는 현재 반려견 8마리와 반려묘 5마리가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 이사는 누렁이와 들판을 달리는 자유를 누리지 못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함께 생활한 마루가 죽은 뒤 수목장까지 치러줬다. 과연 윤 대통령은 새롬이 써니와 앞으로도 산책할 수 있을까.
요즘 서울 한남동에는 옹호와 비판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혹자는 이를 척구폐요(跖狗吠堯)에 비유한다. 도척(盜跖)의 개가 요(堯)임금을 향해 짖는다는 것이다. 도척은 춘추시대 유명한 도적인데, 그가 기르는 개가 어질기로 유명한 요임금을 향해 짖는 상황을 표현한 거다. 여기서 도척의 개는 "옳고 그름이나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밥 주는 주인에게 무작정 굴종하는 얼뜨기"를 지칭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열전 첫머리 백이(伯夷)열전에 도척이 나온다. "날마다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쳐 먹었다. 잔인한 짓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며 하늘의 이치에 의문을 던진다. 진정 천도(天道)가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하느냐고 말이다.
의로운 백이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고,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 안연(顔淵)도 가난에 찌들어 제대로 먹지 못해 요절했다면서 말이다. 사마천은 당혹스럽다고 말한다.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을 하면서도 평생을 호강하며 대대로 부귀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는 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했다. 이것이 천도(天道)라면 과연 옳으냐 그르냐 되묻는다.
이런 도척에게도 도(道)가 있다고 했다. 장자(莊子) 외편의 한 토막. 도척의 수하들이 "도둑에게 도(道)가 있느냐"고 묻는다. 도척은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이 뛰어남(聖)이고, 남보다 앞장서 들어가는 것이 용맹함(勇)이며,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로움(義)이다. 도적질이 가능한지 판단하는 것이 지혜로움(智)이며, 도적질한 물건을 골고루 나누는 것이 어짊(仁)이다."고 했다.
맹자(孟子)도 한마디 걸친다. 진심(塵心)편에서 요순과 도척의 차이를 논한다. "첫닭의 울음에 일어나 선(善)을 행하는 자는 순(舜)임금의 무리이고, 첫닭의 울음에 일어나 이(利)를 찾는 자는 도척의 무리이다. 순임금과 도척의 구분은 선(善)과 이(利)의 사이일 뿐이다"고 말이다.
도척은 과연 춘추시대 이야기일까. 현재도 여전히 도척은 건재하고, 도척의 반려견들이 요란하게 짖는 상황 아닌가. 의리(義理)가 아닌 의리(意利), 밥덩어리를 바라면서 말이다. 비록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 하지만 주인 잃은 개들은 밥덩어리 던져주는 새 주인을 위해 또 짖지 않겠나.
지금 ‘눈 떠보니 후진국’에서 법과 법이 서로 맞서고 있다. 정확히는 헌법과 셈법이 부딪치고 있다. 법 없이도 살 국민들에게 한겨울 법 타령이라니. 정말이지 이런 법이 있나.
※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