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명분없는 대통령 윤석열의 '관저 농성'
입력: 2025.01.14 00:00 / 수정: 2025.01.14 00:00

나 혼자 살자고 '국격' 땅에 떨어뜨려
윤 대통령, 최소한 대통령으로서의 자세 보여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2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예상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진입로 철조망과 쇠사슬로 묶인 철문이 보이고 있다. /남윤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2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예상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진입로 철조망과 쇠사슬로 묶인 철문이 보이고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버티지 못하면 어찌하겠느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 김상헌은 그 말을 아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또 봄이 오듯이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지 못한다면, 이 성 안에서 세상은 끝날 것이고 끝나는 날까지 고통을 다 바쳐야 할 것이지만, 아침은 오고 봄은 기어이 오는 것이어서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왔듯 성 안에서 성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없다 하겠느냐.'

이 글은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예조판서 김상헌이 성첩에 올라 젊은 군관에게 차마 하지 못하고 삼킨 말이다. 인조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47일간(1637년 1월 9일~2월 24일, 양력) 농성했다. 인조는 남한산성 농성을 끝내고 청나라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로 항복했다. 삼전도 굴욕의 역사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관저 농성을 보며 소설 '남한산성'을 다시 읽었다. 남한산성 인조와 관저에서 농성 중인 윤 대통령의 모습이 겹쳤다. 그나마 인조는 외세의 항전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윤 대통령의 항전은 어떤 명분도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근래 관저를 경호하는 경호처 내부에 동요가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체포를 막아야 한다는 강경파와 법 집행을 막아선 안 된다는 세력의 충돌이다. 과거나 현재나 해법을 찾는 모습이 비슷하다. 인조 역시 남한산성에서 척화파와 주화파의 의견에 고심했다. 이는 영화와 소설에서 언급된 내용이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청과 화친을 맺고 성을 나가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고 예조판서 김상헌은 주장한다. 2025년 대통령 관저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이 있는 것 같다.

"전하, 명길을 베어 머리를 삼군에 돌리소서." "전하, 태평성대에도 역적은 있사오만, 어찌 군부를 적의 아가리에 밀어 넣으려는 명길 같은 자가 있었겠습니까? 명길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적진에 보내시고 그 간을 으깨고 염통을 부수어 성첩에 바르소서."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청과 화친해야 한다는 최명길은 역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성 안팎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며 오히려 왕과 조선을 살리게 된다. 물론 치욕적이었지만 말이다.

반대로 청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의 주장은 홍타이지가 삼전도에 오며 힘을 잃는다. "적이 비록 성을 에워쌌다 하나 아직도 고을마다 백성들이 살아 있고 또 의지할 만한 성벽이 있으며, 전하의 군병들이 죽기로 성첩을 지키고 있으니 어찌 회복할 길이 없겠습니까. 전하, 명길을 멀리 내치시고 근본에 기대어 살 길을 열어 나가소서." 김상헌은 마지막까지 성을 나가선 안 된다 목소리를 키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의 2차 체포영장 저지를 위해 경호처에 무기 사용 등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수처의 2차 체포영장 저지를 위해 경호처에 무기 사용 등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통령실

인조는 예판 김상헌이 아닌 이판 최명길의 뜻에 따른다. 남한산성을 나가 삼전도 굴욕을 당했지만 삶을 이어갔다. 역사적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만약 인조가 김상헌의 말을 따라 남한산성에 버텼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이미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으로 국격을 훼손했다. 사람에겐 인격이 있고 나라에는 국격이 있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두 가지를 모두 떨어뜨렸다. 윤 대통령은 자신으로 인한 대외 신인도 하락과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체포되어 끌려 나오는 모습을 바라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윤 대통령 곁에 있는 참모들이라면 최소한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버틴다고 버티어지는 것이 아님을 직언해야 한다.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 발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최명길은 인조에게 이같이 고한다. 이는 단순히 왕을 위한 직언이 아니다. 왕의 치욕이 오히려 백성과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읍소다. 지금 대통령 주변에 과연 최명길과 같은 참모가 있을까. 대통령의 태도가 여전한 걸 보면 없는 듯하다. 윤 대통령의 관저 농성이 혼자 살기 위함이라면?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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