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나우히어'] 징크스와 정치...'사도'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입력: 2025.01.07 00:00 / 수정: 2025.01.07 13:25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장윤석 기자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장윤석 기자

[더팩트 | 박종권 칼럼니스트] 미국 프로야구에 ‘밤비노의 저주’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1918년 월드시리즈 5번째 우승 이후 간판 타자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다. 밤비노(베이브 루스 별명)는 1920년 홈런왕이 되고 양키스는 2009년까지 27회에 걸쳐 우승반지를 낀다. 반면 보스턴 레드삭스는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거듭하다 86년 만인 2004년에 우승하면서 비로소 '밤비노의 저주'를 푼다.

작고한 축구 황제 펠레도 징크스에 시달렸다. 그가 월드컵의 우승을 예언한 국가는 오히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곤 했다. 1966년 월드컵에서 브라질 우승을 장담했으나 16강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1974년에는 아르헨티나가, 1978년에는 서독이 결승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모두 8강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의 예상이 번번이 빗나가자 이를 ‘펠레의 저주’라고 불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그랬다. 공동개최국 일본의 선전과 브라질 조별리그 탈락을 예상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4강 신화와 브라질의 전승 우승으로 끝났다. 물론 펠레는 "그저 덕담했을 뿐"이라고 억울해 했다. 사실 그는 2006년 이탈리아와 2010년 스페인 우승은 적중시켰다.

2016년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도 맞혔다. 공은 둥글고 결과는 알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징크스를 의식하는 듯하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주인공 잭 니콜슨은 보도 블럭의 경계선을 밟지 않는다. 뭔가 금을 밟으면 불운이 찾아올 것 같은 거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그가 과감히 금을 밟은 사실조차 잊게 만들면서 징크스를 깨뜨린다. 잭 니콜슨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는다.

우리네 일상생활에도 무속과 미신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만세력을 짚어가며 사주팔자를 가늠하거나 이사는 손 있는 날을 피한다. 연초에 토정비결을 보고 결혼할 때는 궁합도 맞춰 본다. 풍수와 지관을 찾아 명당을 구하기도 한다.

특히 기업가와 정치인들이 더욱 무속과 명리와 풍수에 심취한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인재제일’을 사시로 내걸고 채용할 때 관상가를 대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 그룹 사옥의 묘한 형태는 풍수의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온갖 명리학자와 도사 집 문턱이 반질반질해진다.

그럴 것이 10.26사건의 핵심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운세를 한 명리학자가 ‘풍표낙엽(楓飄落葉) 차복전파(車覆全破)’로 풀었다고 전해진다. 당시는 단풍잎이 날려 떨어질 무렵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여 차량과 운전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12.12쿠데타가 일어나고 나서 "차지철이 엎어지고 전두환이 깨뜨린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런 점만 부각해서 본다면 정말로 신통한 명리가 아닌가. 그래서 그럴까. 윤석열 대통령도 본인과 가족은 물론 주위에서도 "왕(王)이 될 상인가" 궁금해 한 듯하다. 한 언론사 회장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역술인을 동반해 저녁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사자로 지목된 역술인은 최근 한 여성지 칼럼을 통해 "조만간 윤 대통령에게는 결과에 따른 책임이 동반될 것이다. 원숭이 상인 한동훈과 악어 상인 윤 대통령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라고 썼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신동아 2000년 3월호에서 "신령의 강림지인 청와대 터는 산 사람이 사는 법이 아니다"고 했다. 박정희부터 박근혜까지 본인과 가족의 신상에 화가 미치지 않은 이가 없으니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터를 봤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는 어떨까. 원래 12곳의 후보지 중 최종적으로 간택된 곳이지만 정작 주인은 퇴임 후 아름답지 못했다. 감옥살이의 불명예를 피하지 못한 거다. 그러면 청와대 입주를 피해 용산으로 옮긴 윤석열 대통령은 어떨까. 한남동 관저도 ‘흰 수염 역술인’도 봤다고 알려져 있는데 말이다.

정작 내란의 우두머리가 돼 파면과 엄중한 처벌을 피하기 어렵게 되지 않았나.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상당수 풍수가들이 청와대 터가 사나워 대통령들 끝이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서울 한남동에 터를 잡은 윤 대통령의 신세는 어찌될까. 정말로 궁금하다.

세월을 거슬러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했다는 역술인들은 과연 퇴직한 이후를 예견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맞췄다는 이들도 탄핵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윤 대통령이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준 사람은 그가 탄핵될 줄은 몰랐을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인데 산만 보고 깊은 골짜기를 못 봤을까, 아니면 외면했을까.

묘한 것은 엄청난 인명사고를 겪은 대통령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을 보자. 1993년10월 서해에서 서해훼리호 침몰로 292명이 사망했다. 이어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숨졌다. 그로부터 2년 후 김영삼 대통령은 IMF사태를 맞고 불명예 퇴진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아직 피지도 못한 청춘 304명이 숨졌다.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찾기가 어렵나"고 물었던 그는 2년 후 국정농단으로 탄핵됐다. 광화문을 메운 100만 촛불집회가 겨울을 녹이면서 이듬해 봄 파면되고 구속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제대로 책임지는 우두머리 공직자는 없었다. 연일 격노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은 ‘아닌 밤 중 비상계엄’을 발령했다. 현재 국헌문란으로 탄핵돼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24년 12월 29일에는 제주항공이 비상착륙하면서 179명이 숨졌다. 선례를 보면 그의 앞날이 어둡다. 이쯤 되면 ‘참사 징크스’로 볼 만하지 않나.

수많은 생명의 희생에는 그에 상응하는 속죄와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믿음은 어쩌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집단의식의 발로일 수 있겠다. 최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입건된 윤 대통령이 법집행에 거부하는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설마 항간의 루머처럼 음력으로 해가 바뀌면 좋아진다는 명리학적 예측에 기대는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명리학의 핵심이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위한 ‘위로’라고 한다. "좋은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며, 나쁜 게 항상 나쁜 게 아니다"는 격언은 길흉(吉凶)의 상대성을 말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사 알 수 없다는 거다. 분명한 것은 선덕(善德)이 쌓이면 끝이 아름답고, 악업(惡業)이 쌓이면 추하다는 거다.

징크스도 깨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가 3연패 뒤 4연승으로 우승한 것도 9회 말 볼넷에 이어 대주자의 2루 도루가 동점과 끝내기 홈런의 발판이 됐다. ‘더 스틸(The Steal)’로 명명된 과감한 도루 하나가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징크스를 깨뜨린 거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영화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처럼 마음 속 금(禁)을 밟으면 불안도 징크스도 사라진다. 정치도 징크스는 잊어라. 정도(正道)를 걸으면 마침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사도(邪道)를 취하면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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