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대통령의 자세
입력: 2024.12.19 00:00 / 수정: 2024.12.19 00:00

윤 대통령, 탄핵·수사 절차 비협조로 일관
"법적·정치적 책임 회피 않겠다" 약속 무색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관계자들이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관계자들이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헌일 기자] 공인(公人).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맡은 일의 특성 상 이들에게는 일반 국민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편법 수준의 행위도 공인에게는 그릇된 행동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공인으로서 자격에 흠이 되며 법적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자녀의 위장전입이 들통나 각종 공직에서 낙마한 후보자들이 가까운 예다.

각 분야 저명인사들이 각종 사건·사고로 구설에 오를 때마다 어디까지가 공인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지만 공무원이 공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잠시 직무정지되긴 했으나 틀림없는 공인이며, 대통령은 공직의 정점에 서있는 자리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과도한 권한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의전 서열 1위이며, 나라의 녹을 받는다. 그런 만큼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엄격한 잣대를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과 검경의 수사를 대하는 자세는 이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듯하다.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현실화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법적 대응을 위해 준비가 더 필요해서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어쨌든 그는 탄핵 심판과 자신을 겨냥한 수사를 시작부터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모습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6일 탄핵소추 의결서 등 관련 서류를 윤 대통령에게 발송했으나 아직 접수했다는 확인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실에 우편으로 보낸 서류는 17일 오전 11시 31분쯤 도착했으나 '수취인 부재'로 송달되지 않았고, 관저에 보낸 서류는 같은 날 오전 9시 55분쯤 도착했으나 '경호처 수취 거부'로 전달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수사 측면에서도 윤 대통령은 검찰과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의 출석 요구에 모두 응하지 않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윤 대통령 측에 2차 출석을 요구한 상황에서 공조본에 윤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을 공조본으로 이첩하기로 결정했다. 공조본이 보낸 출석요구서도 대통령실 및 경호처의 거부 등으로 전달조차 불발됐다.

이렇게 탄핵 심판과 수사는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방법으로 회피하는 반면 여론전에는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 행위'라는 방어 논리를 펴면서 17일에는 번호인단을 통해 "수사와 헌법재판 절차를 동시에 할 수 없으니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탄핵 가결 이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이런 의미였던 것일까. 그의 주장대로 대통령으로서 고도의 통치 행위인 비상계엄을 단행했다면, 법적 대응도 공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앞뒤가 맞는다. 유리할 때만 써먹기에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너무나 무겁다.

윤 대통령처럼 법조인 출신이자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 것이 제자리에 있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보수의 가치를 강조하는 동시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대법관 출신인 자신을 당시 노무현 후보와 차별화하려는 전략으로 평가됐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제자리를 흔들림없이 지키는 데는 일단 실패했다. 그가 대국민담화에서 두번이나 공언한대로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음으로써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걸맞는 격은 지켜주길 바란다.

hone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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