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국내외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 <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국회=임영무·서예원·장윤석 기자 |
[더팩트 | 진희선 칼럼니스트] 지금 우리 사회는 1945년 해방 후 3년 동안 해방공간에서 극심한 이념 갈등과 이로 인한 주요 요인의 암살이 횡횡했던 이후로, 가장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 증오와 혐오, 배제와 차별이 넘치면서 막말로 점철된 불통과 불신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2016년 광화문에서 불타올랐던 촛불은 국정을 농단한 최고 권력자를 탄핵으로 끌어내며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후 8년 동안 진보와 보수 정권이 대한민국의 키를 번갈아 쥐며, 소통과 통합의 촛불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갈등과 혐오는 더 증폭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존하며 사회적 통합을 모색하는 시스템 위에 작동된다. 나와 다른 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 없다. 지난 군사 독재 시대에는 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억압했다. 다양성과 다원성이 부정된 것이다. 우리는 피의 대가를 치르며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그런데 독재 정권을 몰아낸 다음,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소통하며 함께 하는 공존을 모색했는가?
니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듯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불편하다. 타인이 지옥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한 경쟁의 정글에서 생존을 위한 생명체의 자기방어적 속성일 수 있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는 이러한 원초적인 자기방어적 속성을 극복하고, 생김새와 생각이 다른 타자와의 소통과 공존을 확대해 가며 진화했다.
타자와 확대된 공존 위에 기술과 문화를 교류하고 융합하며 오늘날 찬란한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타인과의 소통과 공존이 불편하다며 거부하면 우리는 수천 년 전 원시시대 부족사회 소읍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 많아지면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서로 소통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치가 소통과 공존의 길을 마련하는 창구 기능을 해야 하나,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함께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1884년 갑신년에 외세에 의존해 조선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갑신정변 ‘3일천하’는 허상이었다. 그로부터 140년이 흐른 2024년 갑진년에 특수부대를 동원해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궤변으로 선포한 ‘3시간 비상계엄사태’는 무도한 최고 권력자의 망상임이 드러났다.
지난날 피의 대가로 성취한 민주주의 힘은 강했다. 계엄 선포 2시간 30분 만에 시민들은 뭉쳤고 국회의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계엄을 해제했다. 성숙한 시민 민주주의 시스템이 신속히 작동하였으며 해외 언론들은 그 민주주의 회복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가 내란 위기를 초래한 권력자를 끌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2016년 추운 겨울 광화문을 선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어두움을 밝혔던 촛불 정신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촛불로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으로 국민은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의 잘잘못을 파헤치며 적폐 청산에 몰두하느라 새로운 미래를 열지 못했다. 소통과 통합은 고사하고, 진영 간 증오와 갈등이 증폭되면서 국론은 분열되고 이념 양극화는 가속화 하였다. 그 반발로 급기야 보수는 상대 진영의 검찰총장을 영입하여 후보로 세우고 대권에서 승리한다. 5년에 걸친 진보 정권 적폐 청산의 반작용으로 윤석열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더욱 요새화된 진영 논리로 모든 사안을 해석하는 흑백과 선악의 시대가 되었다.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연일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 흔들며 적대감을 키워갔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고소 고발하며 사법부에 떠넘겼다.
각 진영은 진영 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 나오면 조리돌림을 통해 추방하며 콘크리트 팬덤층을 구축했다. 대권과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진보는 총선에서 승리하며 입법부를 장악했다. 이제 진보 진영은 입법권을 기반으로 반격에 나섰다. 이에 분노한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 총칼로 상대방을 쓸어버리고 제압하겠다는 망상적 사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이념과 진영 갈등이 극단으로 가면 얼마나 큰 혼란이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혼란을 그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그 공동체의 존속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비상계엄사태로 인한 탄핵정국은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그 다음은 단지 정권과 정파의 교체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16년 촛불 정신이 왜 실현되지 못하고 소멸하였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제는 불통과 불신의 시대를 끝내고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공존의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 촛불 정신을 되새기며 다시는 진영 간 갈등과 증오가 증폭되고 혼란이 가중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비상계엄사태와 탄핵정국이 종료되면 그다음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
며칠이면 2025년 을사년이 시작된다. 120년 전 1905년 조선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했다. 왕권은 힘을 잃고 국론은 분열되었으며, 백성은 비루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조선은 완전히 침몰했다. 역사를 잊어버린 자는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자는 미래로 나가지 못한다.
역사가 보여준 교훈을 잊지 말되,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의 과거 잘잘못을 파헤치기는 쉬우나, 더 나은 미래로 나가기 위해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인가, 정권이 바뀌면 쉬운 일부터 하려 한다. 전리품도 챙기고 상대방 망신도 주면서 같은 진영으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당장의 가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맛 들이면 미래로 나가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는 과거의 쉬운 일에 골몰하고, 현명한 자는 미래의 창의적인 일에 몰입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안다. 역사는 늘 현명한 자 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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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