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5월 31일 논의한 '2025~2029년 중기자산배분' 안건에서 국내 주식투자는 아예 하지 않고, 대신 해외 주식·채권 투자와 국내 채권 등으로 연금 기금을 분산투자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 결론에 근거하여 국민연금의 국내증시 투자 비중을 축소하기로 계획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뉴시스 |
[더팩트 | 박순혁 칼럼니스트] 서울경제의 6월 3일 자 단독 보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5월 31일 논의한 '2025~2029년 중기자산배분' 안건에서 국내 주식투자는 아예 하지 않고, 대신 해외 주식·채권 투자와 국내 채권 등으로 연금 기금을 분산투자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 결론에 근거하여 국민연금의 국내증시 투자 비중을 축소하기로 계획을 잡았다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의 투자 목표 비중은 올해 15.4%에서 내년 14.9%, 5년 뒤인 29년에는 13%로 낮아지게 되고, 이는 25년 한 해에만 5.5조원, 29년까지 5년간 총 26.4조원의 매물이 국내증시에 국민연금을 통해 쏟아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안 그래도 취약한 국내증시의 수급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며, 현재 범 정치권 차원에서 추진 중인 국내증시 살리기 정책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지나치게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만큼 국민연금의 이런 결정은 반드시 철회되고 원점에서 재논의해 줄 것을 강력히 제언한다.
자산운용회사는 자사의 펀드 등에 가입한 수익자에게 주기적으로 자산운용 보고서를 작성, 제공하여야 한다. 이 자산운용보고서의 6번 유의점 항목에는 '과거 성과는 미래 성과를 보장하지 않음 : 보고서에서 제공하는 과거 투자 성과는 미래 성과에 대한 보장이 아니므로, 투자자들은 이를 참고 자료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라는 문구가 의무적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의 국내증시 투자비중 축소 결정은 바로 이 가장 기초적인 유의사항을 위배한 것이다. 나는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의 이번 결정 과정을 보면서 대한민국 5천만 국민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는 이 기구가 투자와 관련한 전문성을 갖춘 조직인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 그루 워렌 버핏은 "사람들은 늘 백 미러를 쳐다본다" 라고 하여 투자 결정에서 과거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한 바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의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을 축소하겠다는 결정의 과정을 보면 과거 십 수년간 한국증시의 성과가 부진했으니 당연히 앞으로도 그렇게 부진할 것이라는 식의 판단을 한 것인데, 이야말로 버핏이 강조한 '백 미러를 쳐다 보는' 식의 투자결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1,000조원이 넘는 막대한 규모의 '국민연금 중기 자산배분' 과정이 이처럼 비전문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나는 정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투자계에는 '평균 회귀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특정 자산이 특정 기간 동안 다른 자산 대비 압도적인 초과 수익을 거두었을 경우 평균 회귀의 법칙에 따라 이후에는 그 자산이 수익률이 급전직하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 10년 동안 대한민국 증시는 거의 10배가 오른 반면, 미국의 다우 지수는 3배 조금 더 올랐을 뿐이다. 지금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가 한 방식 그대로 과거 10년간의 투자 성과를 기반으로 미국 주식은 다 팔고 100% 한국 주식에만 투자하기로 결정하였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이후 1990년대 10년 동안 대한민국 증시는 IMF 위기 등의 영향으로 제 자리 걸음 한 반면 미국 다우 지수는 4배 이상의 상승을 기록하여 국민연금은 '백 미러를 보고 투자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말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워렌 버핏은 2024년 올해 초부터 미국 증시의 과대평가를 계속 경고하고 있으며, 실제 그가 운용하는 버크셔 헤서웨이는 지속적으로 미국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포트폴리오 최대 보유 종목인 애플(Apple) 주식을 절반 가까이 들어내는 등 미국 주식을 팔아 확보한 현금만 449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를 통째로 인수하고도 남을 만큼 큰 금액이다.
버핏은 왜 이러는 것일까? 아마 이유는 미국 증시의 고평가 정도가 심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미 증시의 평균 PER은 23배를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뉴 밀레니엄 시대의 닷컴 버블 시절 이후 최고치다. 반면에 대한민국 증시의 평균 PER은 8배 밑으로 떨어져 있는데 이는 97년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증시 격언에 '증시는 단기로는 미인 투표 기계이고 장기로는 저울계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단기 증시의 향방은 인기에 크게 좌우되지만, 장기로는 밸류에이션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전 세계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증시가 단기적으로는 더 오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밸류에이션에 따라 비싼 미국 증시보다는 싼 한국 증시의 투자 성과가 더 좋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서 장기 투자자인 버핏은 밸류에이션에 따라 고평가 정도가 심한 미국증시를 계속 내다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민연금은 고평가 된 미국 증시 투자비중을 늘리고 저평가 된 한국 증시의 비중을 줄인다? 그것도 백 미러를 보고 내린 판단으로?
이는 정말 투자의 근본도 기초도 없는 전문성이 현격히 결여된 결정 프로세스이고 의사결정 결과가 아닐 수 없다. 5천만 전 국민들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차대한 결정이니만큼 비전문적이고 졸속한 결정을 전면 백지화하고 보다 더 전문적이고 투명하며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다시 결정함이 옳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이 결정 과정에 범정부적인 관심과 의지를 갖고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하여야 할 것이다. 어쨌든 최종 책임은 대통령의 몫이니만큼 책임감을 갖고 적극 나서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