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최대주주 신동국, 경영권 분쟁 종결 선언
경영진 선임 놓고 '장고'
경영권 분쟁 재촉발 불씨 여전
경영권 분쟁 종식을 선언한 한미약품그룹은 새로운 경영진을 구상하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더 좋은 의약품을 '우리 기술'로 만들자"는 고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경영 철학은 한미약품을 '신약 명가'로 우뚝 서게 했다. 임성기 회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배출한다는 한미약품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개량 신약 기술로 입지를 다진 한미약품은 2015년 베링거인겔하임, 일라이릴리, 사노피,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들에 6건의 기술 수출을 성사시켰다. 규모는 8조 원으로 지난해 국내 제약사 전체 기술 수출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연구·개발(R&D) 투자 금액은 4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신약 개발은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다. 장기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뚝심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미약품은 그동안 창업주의 신념으로 신약 개발에 우수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을 겪은 지금 한미약품이 정체성을 이어갈지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지난 10일 한미약품 오너 간 분쟁이 종식됐다고 선언했다. 신동국 회장이 전면에 나서 오너 간 불협화음을 봉합했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조건으로 오너 일가가 뜻을 모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신동국 회장은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책임경영과 정도경영으로 그룹을 이끈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동국 회장은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개인 최대주주이며, 그가 경영하는 한양정밀은 자동차 부품 제조 기업이다.
신동국 회장은 올해 초 촉발된 경영권 분쟁을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았다. 그는 지난 3월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임성기 회장의 두 아들을 지지하면서 형제들에게 주총 승리를 안겼다. 형제 경영으로 그룹이 재편하는 듯했지만 신동국 회장은 이달 초 돌연 모녀의 편으로 돌아서면서 경영권을 흔들었다.
신동국 회장은 모녀의 손을 잡는 과정에서 한미사이언스의 지분을 늘렸다. 최대주주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 오너 일가가 화합하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면 신동국 회장의 발언권은 더욱 강력해지는 구조가 됐다.
신동국 회장(가운데)은 한미약품 오너 일가의 화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사진 왼쪽은 고 임성기 회장의 배우자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 오른쪽은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한미약품, 한양정밀, 더팩트 DB |
경영권 분쟁이 종식됐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는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신동국 회장은 상의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대주주 간 완전한 화합을 이루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신동국 회장은 새로운 경영진에 대한 밑그림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신동국 회장의 존재감이 커진 만큼 그가 그룹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한미약품은 국내 전통 제약사 '빅 3'에 꼽히는 대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오너 일가의 경영권 다툼으로 경영에 혼란을 빚고 기업 가치가 훼손되는 건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을 꿈꾸는 한미약품에는 큰 손해다.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기업을 보면 더욱 그렇다.
롯데그룹은 과거 '형제의 난'으로 성장의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시기 롯데는 빠르게 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 했고,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도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지 못했다. 한미약품도 불안정한 경영으로 신약 개발의 추진력을 잃게 될까 우려된다.
기업은 오너 일가의 소유물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주주들의 이익과 임직원들의 생계, 그리고 사회의 공기(公器)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룹 경영권이 오로지 회사의 성장에 맞춰질 수 있도록 결단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 DNA'를 이어갈 경영진이 꾸려졌다는 소식을 기대해 본다.
jangb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