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조민 부산대 의전원 입학취소의 본질과 의미
입력: 2021.08.25 08:35 / 수정: 2021.08.25 08:35
자녀 입시·사모펀드 비리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이동률 기자
자녀 입시·사모펀드 비리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이동률 기자

조국 스타일의 '능력주의'는 불공정...부산대 발표 시기 논란은 '아쉬움'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국내에 잘 알려진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지난해 9월 펴낸 '공정이라는 착각'이라는 저서에서 '공정'의 잣대인 '능력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의 이상(理想)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능력주의'라는 말의 창시자인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했지만 현실은 '공정'의 일반적 잣대로 제시된다. 대다수 국민들은 대학 입시와 취업 등에서 '공정'의 기본으로 삼는다. 특히 청년들이 ‘공정성’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출발선부터 뒤처진 흙수저들에게 공정한 경쟁은 마지막 기댈 곳이기 때문이다.

샌델 교수는 특권층 부모들이 부정한 방법을 써가며 자녀 입시에 목매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자기 자식의 능력으로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논리가 여기서 출발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딸 조민 씨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시 비리 의혹의 출발도 다르지 않다. 조민 씨가 고등학교 때부터 의전원 입학 전까지 쌓아온 스펙은 부모가 반칙과 편법을 사용해 포장해준 ‘능력주의의 광채’, 그 자체였지만 조 전장관과 정 교수는 정당함을 강조한다.

24일 부산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내린 대목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특권층의 능력주의로 포장된 잘못된 '정당성'의 논리를 깨부수고 '불공정'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박홍원 부산대학교 교육부총장이 24일 오후 부산 금정구 부산대 대학본부 대회의실에서 조국 전 장관 딸의 2015학년도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부산=뉴시스
박홍원 부산대학교 교육부총장이 24일 오후 부산 금정구 부산대 대학본부 대회의실에서 조국 전 장관 딸의 2015학년도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부산=뉴시스

부산대는 이날 조민씨에 대한 입학전형 공정관리위원회의 조사와 대학본부의 최종 검토를 거쳐 조민 씨 입학을 취소하는 예정 처분 결정을 내렸다. 최종 행정 처분을 내리는데 3개월 쯤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은 정 교수의 1,2심 재판부가 이견없이 조민 씨의 이른바 ‘7대 스펙’이 모두 허위라고 여긴 판단에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점은 부정할 순 없다. 1심 재판부는 정경심 교수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을 인정하면서 " 조민 씨가 동양대 표창장을 (부산대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낮은 점수를 받아 서류 평가 또는 2단계 평가에서 탈락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2심 역시 정 교수가 딸인 조민 씨의 입시를 위해 허위 서류를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정 교수가 딸의 입시에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확인서 △동양대 총장 표창장 △단국대 의과대학연구소 인턴확인서 △공주대 생명과학연구소 인턴확인서 △아쿠아펠리스호텔 실습 ·인턴확인서 △동양대 어학교육원 보조연구원 경력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턴확인서 등 이른바 ‘7대 스펙’을 활용했고, 이 서류는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박홍원 부산대 부총장은 "2015년 의전원 신입생 모집요강에는 제출 서류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를 경우 불합격 처리를 하게 돼 있다"며 "이를 근거로 입학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위는 동양대 표창장과 입학서류에 기재한 경력이 주요 합격 요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지만 대학본부가 입학 취소 여부를 판단할 때 지원자의 제출서류가 합격에 미친 영향력 여부는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허위사실 기재가 핵심이라는 부연이다.

조민 씨의 의사 면허도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법 제5조는 의사 면허에 대해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나, 의학을 전공하는 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 또는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한정한다.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이새롬 기자

조민 씨의 의사면허가 취소될 경우 조민 씨는 부산대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할 수 있다. 부산대가 국립대라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의사 자격은 유지하게 된다. 조 씨는 지난 1월 의사 국가고시에 최종 합격한 후 2월부터 모 병원 인턴으로 근무중이다.

고려대도 조민 씨의 입학 취소 처리 절차에 돌입했다. 고려대는 24일 "대학 학사운영규정에 의거해 입학취소처리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며 "향후에 추가로 진행 상황 등을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 이후에도 민주당 일부 인사들과 조국 지지자들이 입학취소 사실을 부정하며 '조국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나서고 있어 우려스럽다. 특히 여당에 관련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앞장서 진영논리에 빠져 사실상 결론난 '불공정'을 비호하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발표 시기와 관련한 논란이 이는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최종 확정은 대법원 상고심 결과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데도 다소 서둘러 발표한 인상을 준다. 일부에서 "3심제가 원칙인 민주주의 사법체계를 무시한 조치"라는 비판에 빌미를 제공했다. 부산대 측 역시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면 행정처분도 바뀔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까지 이날 발표를 강행한 이유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중대한 불행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인 '공정'의 확립 차원에서 부모의 잘못을 젊은 자녀의 삶에까지 책임을 지우는 처분 과정이라면 더욱 투명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소명인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자체 판단보다 법원 판결을 취소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라면 사법적 원칙에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더욱 옳았지 싶다.

조 전 장관 입장에선 구제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사실여부의 문제다. 모두가 조민 씨의 입학취소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말고 우리사회에 불공정 척결의 본보기로만 봤으면 한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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