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김혜성(26)이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졌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는 야구인들이 많았다. 한마디로 눈에 확 띌 정도의 탁월한 선수로 여기지 않아서다. KBO리그에서는 통하지만 세계 최고 무대인 메이저리그급은 아니란 시선이었다. 메이저리그 계약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역설적으로 김혜성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혜성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박병호처럼 일발장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정후처럼 엄청난 콘텍트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김하성처럼 강한 어깨와 파워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혜성은 뚜렷하게 내세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모자란 것도 없는 선수다. 타격 수비 주루 모두 평균 이상을 한다.
LA다저스는 김혜성의 이 점을 눈여겨 보고 스카우트했다. 김혜성의 계약 조건은 3+2년에 총 2200만 달러(약 317억 원)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없다. 초호화군단 다저스에서 최하위급 연봉이다. 김혜성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백업 요원’으로 메이저리그에 간 선수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시범경기에 들어가기 무섭게 김혜성을 돌리고 있다. 2월 21일(이하 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와의 개막전에선 2루수로 기용하더니 23일 캔자스시티전에선 유격수, 24일 샌디에이고전에선 중견수로 내보냈다. 김혜성의 용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버츠 감독은 유틸리티 플레이어를 매우 좋아한다. 간판 타자 무키 베츠를 비롯해 크리스 테일러, 미겔 로하스, 토미 에드먼, 키케 에르난데스, 맥스 먼시 모두 2개 포지션 이상을 소화한다. 특히 크리스 테일러와 키케 에르난데스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애틀 유격수였던 크리스 테일러는 다저스에서 로버츠 감독을 만나 유격수 2루수 3루수, 외야 전 포지션을 종횡무진하는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키케 에르난데스 역시 마이애미에서 유격수 한자리만 지켰지만 지금은 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가 됐다. 김혜성이 그려볼 수 있는 미래다.
김혜성은 KBO리그에서 4시즌 연속 3할대 타율과 7시즌 연속 20도루 이상을 기록했다. 유격수와 2루수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김혜성에 대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르면 "수비와 주루에서 김하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외야 수비까지 가능하지만 김하성 보다 파워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ESPN은 "뛰어난 러너다.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 쓰임새가 있다"고 했다.
로버츠 감독의 기용 방식이나 미국 현지 반응은 일맥상통한다. 김혜성을 다저스의 ‘수비 전문 선수’로 보고 있다. 다저스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대부분의 엔트리를 정했다. 야수 부문 13자리 가운데 12자리는 확정적이다.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김혜성은 제임스 아웃맨, 앤디 파헤스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저스가 김혜성을 잡은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저스는 김혜성의 운동 신경과 포지션 소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일 뿐이다. 다저스는 김혜성의 성실함과 밝은 인성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김혜성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훈련에 매달려 사는 선수다. 생활의 모든 부분이 야구와 연결돼 있으며 한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여기에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는 김혜성의 드러나지 않는 강점이다.
아시아 출신 내야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김하성이 그 통념을 깼다, 김혜성은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최초의 수비 전문 멀티 플레이어가 그것이다. 김혜성은 "꼭 성공해서 나 같은 유형의 선수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성의 희망이자 KBO리그 선수들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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