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상의 줌인 사커] 차범근 감독을 둘러싼 진실 공방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0.10.16 15:08 / 수정: 2010.10.16 15:08

차범근 전 수원삼성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1980년대 중반 필자는 두 차례 그의 집에 머물며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무렵 차범근에 대한 현지 교민들의 감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교민들의 호의를 무시하고 거만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사연이 있었다.

차범근은 1979년부터 10년 동안 분데스리가를 누볐다. 타국에서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던 당시 교민들에게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진출은 큰 기쁨이었고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독일은 물론 프랑스, 스페인 등 인근 교민들까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경기장을 찾아 차범근을 응원했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자주 회식자리를 마련해 차범근을 초대했다. 교민회 행사는 물론 사사로운 자리에도 ‘자랑스런’ 차범근이 참석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차범근은 단호히 거절하며 응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교민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차범근을 향해 “교민들의 호의를 몰라 준다”느니 “무례하고 건방지다”느니 하는 원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차범근이 출전하는 경기는 발을 들여 놓지 않을 정도로 현지 교민들과 차범근의 관계는 소원해 졌다. 이런 사실은 국내에도 속속 전해졌다.

차범근의 집을 두 번째 방문 한 것은 그가 레버쿠젠에 몸담고 있을 때였다. 교민들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차범근의 답변은 간단했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나자고 하는 교민들이 한둘이 아닌데 요구대로 다 만나주면 언제 훈련하고 어떻게 덩치 큰 유럽 선수들을 이겨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교민 접촉을 차단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초기 한동안은 교민들과도 잘 어울렸으나 어느 순간 안 되겠다 싶어 선을 그으면서 좋지 못한 소문이 나돌더라고 했다. 차범근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 교민들의 말처럼 그에게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범근으로부터 직접 해명을 들으면서 그의 어쩔 수 없었던 처지를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최근 차범근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의 명문 베이징궈안 사령탑을 맡으려 했다가 구단으로부터 거절당했다는 보도가 나와 진위 여부를 놓고 한 바탕 확인 소동이 벌어졌다. 중국의 한 포털사이트가 ‘차범근이 베이징궈안 사령탑으로 자신을 추천했다가 거절당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후 현지 인터넷 언론매체들이 일제히 차범근 감독이 베이징궈안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소식을 전해 파문이 인 것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차범근 감독이 새 수장을 물색 중인 베이징궈안에 적극적으로 부임 의사를 나타냈다고 한다. 하지만 물거품이 됐는데 베이징궈안의 가오차오 사장이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고 서로 소통도 있었다. 한국 감독들은 체력 훈련은 잘 시키지만 다른 부문에서는 수준이 높다고 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차범근 감독은 중국에서 성공한 경험이 없다”는 말로 차 감독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는 것이 현지 보도 내용의 골자다.

하지만 차범근 감독이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 이번 소동은 진실 공방으로 비화됐다. 차범근 감독측은 “베이징궈안과의 접촉은 있었지만 모두 베이징궈안이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이며 결국 성사된 것 없이 끝났다”고 밝혀 중국의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현재로선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정황에 비춰 차범근 감독이 베이징권안측에 먼저 손을 내밀었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6월 수원삼성에서 물러난 차 감독은 1998프랑스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선진 핑안 감독을 맡았었다. 하지만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이듬해 서둘러 돌아온 쓰라린 경험이 있어 중국 진출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2010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해설가로 SBS방송사와 계약을 맺을 때 2011년까지로 못 박은 상태여서 당분간 한국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소식의 근원지였던 가오차오 사장이 “차범근 감독을 베이징궈안 사령탑 우선 후보로 점찍고 연락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을 뿐이지 차범근 감독이 나서서 베이징궈안을 맡고 싶어 했다고 한 적은 없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하니 이번 진실 게임의 승자는 차범근 감독이라고 단정해도 무방할 것 같다.

차범근 감독은 중국의 선진 핑안 사령탑을 맡고 있던 지난 1998년에도 국내 모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K리그에서의 승부조작설을 제기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는 등 여러 차례 진실공방에 휘말린 적이 있다. 차범근 감독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히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 감독의 언론 기피증이 이번 파동으로 그 도를 더할지 모르겠다.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