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기자의 무한도전] K3리그 축구선수에 도전하다④
  • 김현회 기자
  • 입력: 2009.05.04 17:55 / 수정: 2009.05.05 11:35

축구는 11명이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라운드에 나서는 이는 11명뿐이지만 이 정예멤버가 꾸려지기까지는 땀과 눈물, 심지어는 피를 흘리는 무수한 이들이 있다. 또한 축구는 국가대표와 K-리그만 하는 것도 아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는 몇 명뿐이지만 이들이 탄생하기까지는 K-리그부터 K3리그까지 무수히 많은 팀에서의 경쟁이 필요하다. 과연 축구 선수들은 이 험난한 과정을 어떻게 넘기고, 또 얼마나 좌절할까. 기자가 직접 K3리그 ‘꼴찌팀’ 고양시민구단 선수가 돼 가장 고달픈 그들의 이야기를 6회에 걸쳐 전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김현회기자] <3회에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꼭 출장하리라.’ 눈물을 머금고 삼척으로 떠났다. 선수단은 교통체증을 감안해 오전 7시에 구단 사무실에 집결, 원정길에 올랐다. 하지만 기자는 토요일 오전에 해야할 업무가 있어 오전 9시경 부랴부랴 혼자 삼척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꽤나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구단 업무를 맡은 이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삼척 원정, 김현회 선수까지 총 13명 참석합니다.’ 선발 출장 11명을 제외하고 후보가 기자를 포함해 단 둘이라는 말이었다. K3리그 교체 선수가 5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오늘 만큼은 데뷔전이 가능할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가위 바위 보
신나게 삼척으로 향해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였다. 삼척종합운동장에는 홈 팀인 삼척신우전자 응원단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었다. 기자는 미리 도착한 고양 선수단에 합류했다. 어차피 후보 신세인 기자는 나머지 12명의 선수 중 기자와 함께 벤치를 지킬 한 명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기자 이상으로 출장을 갈망하는 김성현 선수는 꼭 선발 출장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엔트리 구성으로 고민하던 김진옥 감독은 현명한 방법을 내 놓았다. 10명의 선수를 결정한 그는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기자를 제외한 채 두 명의 선수에게 공정한 제안을 했다. “가위 바위 보 해라. 진 사람은 후반전에 교체 투입이다.” 두 명의 선수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가위 바위 보를 했고 결국 김성현 선수는 기자와 사이좋게 벤치를 지켰다. 벤치에는 김진옥 감독과 기자, 김성현 선수 이렇게 셋 만 남았다.

선수 명단이 제출되고 경기에 앞서 몸을 풀었다. “현회야, 넌 골키퍼 몸 푸는 것 도와줘.” 김진옥 감독은 기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기자는 골문에 슈팅을 날리며 골키퍼의 워밍업을 도우려 했지만 오히려 골키퍼에게 도움을 받았다. “오늘 후반에 뛰실 것 같던데 아마 원치 않아도 공이 많이 갈 거예요”라고 말한 그는 “그런데 슈팅이나 패스 시에 발목이 움직여요. 그 점을 고치시고 압박을 당해 공을 빼앗기면 파울로 끊으세요”라고 조언했다. 골키퍼가 이런 말을 꺼낸 걸 보면 정말로 기자가 데뷔전을 치를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팀이 있고 내가 있다?
경기가 시작되고 쉽게 무너질 것이라 예상되던 고양은 만만치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0-0의 균형이 이어지자 기자는 내심 불안했다. ‘빨리 몇 골 먹어 경기를 포기하고 나를 뛰게 해줬으면…’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마 표현하지는 않지만 이는 K-리그 선수들이나 유럽 빅리그 후보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팀이 중요하다고 해도 자신이 뛰지 못하는 경기에는 의미가 적으니 말이다.

“성현아, 현회야. 몸 풀어라.” 김진옥 감독은 경기가 전반 15분이 지나자 지시를 내렸다. ‘오늘은 정말 뛰게 해줄 모양이군.’ 기자는 신이 나 골대 뒤쪽으로 가 몸을 풀었다. 기자와 함께 항상 벤치를 지키며 이제는 ‘형, 동생’하게 된 김성현 선수도 데뷔전 기회에 신이 난 모양이다. 둘은 패스로 몸을 풀었다. “형, 드디어 우리 꿈이 이뤄지나봐요.” 김진옥 감독은 경기에 집중해 몸 푸는 기자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 열심히 몸을 풀었다.

‘감독님, 몸은 아까 다 풀었어요’
전반전이 끝났고 고양은 선전했지만 두 골이나 실점했다. 하프타임을 이용해 그라운드에서 계속 몸을 풀었다. 축구화를 신고 처음 밟아본 천연 잔디였지만 잔디 상태는 최악이었다. 기자가 학창시절 삼겹살을 구워먹던 파주 ‘통일공원’ 잔디보다도 못한 잔디였다. 페널티지역 안에는 잔디 대신 듬성듬성 모래가 깔려 있었다. 김진옥 감독은 작전지시를 위해 선수들과 라커룸으로 향했지만 기자는 이 동안에도 땀이 흠뻑 날 정도로 공을 차고 달렸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김성현 선수가 말했다. “우리 축구화 끈 묶는 척하고 스트레칭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좀 쉬죠.” 기자는 이 말이 너무 고마웠다. 안 그래도 기자는 데뷔전을 치르기 전에 탈진할 상태였기 때문이다. 회상해 보건데 K-리그 경기 도중 그라운드 옆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스트레칭을 하거나 축구화 끈을 묶고 있었다. 기자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들도 기자만큼은 아니겠지만 힘을 빼기 싫은 상황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후반 중반, 김진옥 감독은 세 번째 골을 허용하자 몸을 푸는 기자 쪽을 가리켜 손짓을 했다. ‘선수 교체를 할 테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대상은 기자가 아닌 김성현 선수였다. 기자와 함께 아이스박스를 나르고 벤치에서 수다를 떨었던 유일한 동지가 그라운드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신이 나 김진옥 감독에게 달려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출장을 준비한 그의 데뷔전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혼자 몸을 풀어야 하는 기자 자신이 불쌍하기도 했다. 이제 기자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골만 더 먹으면 이제 나를 부를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었지만 기자는 잠시 이성을 잃었다. 몸을 풀면서도 내심 삼척의 추가골을 바랐다. 하지만 경기는 3-0으로 이어졌고 후반 종반 양 팀 선수들은 몸싸움을 벌이다 한 명씩 퇴장을 당했다. 퇴장 상황에서 양 팀 지도자는 그라운드로 달려 나가 싸움을 말렸고 모두의 눈이 그라운드로 향한 사이에도 기자는 혼자 덩그러니 경기장 구석 트랙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외로웠다.

트랙에서 풀타임
시계는 90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김진옥 감독은 무심하게도 끝까지 기자를 쳐다보지 않았다. 단 1초라도 뛰고 싶어 대기심의 추가시간 사인이 난 뒤에도 끝까지 몸을 풀었지만 결국 기자는 그라운드를 밟아보지도 못한 채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을 들었다. 오늘도 실패였다. 이렇게 데뷔전은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13명 중 유일하게 경기에 나서지 못한 기자는 쓸쓸히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하프타임을 포함해 95분 동안 몸만 푼 것이다.

라커룸에 들어서자 팀 동료들이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패배도 패배지만 삼척까지 와 유일하게 경기에 나서지 못한 기자를 위로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그들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뒤늦게 라커룸에 들어선 김진옥 감독도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하다. 아까 퇴장 상황 이후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 공격 숫자를 늘일 수 없었다.” 김진옥 감독은 기자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이제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내가 1초를 뛰는 한이 있어도 꼭 그라운드는 밟는다. 될 때까지 한다.’

90minutes@tf.co.kr

<사진 = 이호준기자, 박은지, 김재호, 조성룡 제공>

<5회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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