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표팀의 핵심 공격형미드필더 메스트 외질(사진)이 23일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뉴시스 |
'신오스만주의' 터키와 독일의 갈등 심화도 한 몫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터키계에 대한 인종차별과 이중잣대, 더이상 참을 수 없다."
독일 축구의 핵심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메수트 외질(30·아스널)이 독일 대표팀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외질은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매우 어려웠지만 더 이상 독일 대표팀에서 뛰지 않기로 했다"면서 "최근 벌어진 일들을 무거운 심정으로 돌아보면서 인종차별과 무례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계가 인종차별의 배경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터키계 독일인인 외질은 2009년 2월 노르웨이와 평가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모두 93경기의 A매치에 출전해 23골을 기록한 세계적인 공격형 미드필드다.
30세로 이른 나이지만 외질은 대표팀 은퇴를 선택했다. 발단은 사진 한 장이다. 외질은 같은 터키계인 대표팀 동료 일카이 귄도간과 함께 5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외질과 귄도간은 독일 언론과 팬들로부터 민족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이 자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자 외질과 귄도간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망쳤다는 언론의 평가까지 받게 됐다. 결국 외질은 그동안 이슬람 문화에 적대적이었던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장과 독일축구협회 그리고 팬과 언론을 향해 분노를 담아 은퇴를 선언했다.
23일 외질이 독일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인종차별'을 이유로 꼽았다. /사진=뉴시스 |
표면적으로 외질의 은퇴는 터키계 독일인에 대한 차별이지만 그 내면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표방하는 '신오스만주의'가 깔려 있다. 2001년 발족한 공정발전당 소속으로 2002년 압도적인 표차로 정권을 교체했다. 이 기간 터키의 국내 총생산(GDP)은 3배로 성장했고,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집권 초기만 해도 유럽연합(EU) 평균 수입의 20%에도 못 미쳤지만 15년여 만에 70%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2030년이면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현재 인구 8000만명인 터키는 2040년이면 인구 1억명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프랑스, 영국보다 큰 나라가 되는 셈이다. 20세기 유럽연합(EU) 가입에 목을 메던 터키는 더 이상 EU 가입에 안달하지 않게 됐다. 대신 '오스만투르크의 후예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신오스만주의'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실제 터키는 서방 국가와 엇박자를 내는 행보를 걸었다.
터키는 미국의 동맹국이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가맹국임에도 미국이 주도하고 유럽이 따르는 외교 행보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슬람주의 세력을 지원했다. 2006년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 정권이 탄생했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테러 조직'으로 낙인찍고,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달랐다. '약자를 돕고 약소국을 돕는 게 무슬림의 의무'라며 하마스 정권을 도왔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같은 행동을 취했다. 서방 세계에 있어 눈엣가시같은 행보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2016년 7월15일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 쿠데타로 모두 265명이 사망하고 1440명이 부상했다. 미수에 그친 쿠데타 이후 터키는 '친'에르도안과 '반'에르도안으로 나뉘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체제 안정을 위해 쿠데타 가담자와 연루자는 물론 의심 인물 등까지 대거 잡아들였다. 서방은 이를 반대파 숙청을 위한 정치탄압이라고 규정하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터키의 분열을 조장하고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2016년 4월16일 에르도안 대통령은 헌법을 고쳐 입법과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대통령 중심제를 출범시켰다. 모두 2515만7025명이 개헌 투표에 참여해(투요율 85.32%) 51.41%의 찬성으로 개헌안은 통과됐다. 하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쿠데타 미수로 연결됐다.
쿠데타 제압 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새 헌법에 따라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두 차례 대통령 임기를 더 맡을 수 있게 돼 2029년까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독일을 비롯한 서방은 즉각 반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누르는 독재자로 본 독일과 EU 국가들은 투자를 줄이고 다방면에 걸쳐 압박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맞불을 놨다. EU 가입 협상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후 EU를 비롯해 EU의 수장인 독일 등과 터키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5월 BBC 등 서방 언론은 외질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만남을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BBC 보도 화면 캡처 |
독일을 필두로 한 서방 세계와 기 싸움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을 터키계 독일인이 외질과 귄도간이 만났다. 그것도 러시아월드컵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외질과 귄도간은 자선행사 차 잉글랜드를 방문한 에르도안 대통령과 14일(현지시간) 런던의 한 고급호텔에서 만났다. 정치 입문 전 이스탄불의 한 세미 프로팀에서 축구 선수로 뛴 경력을 갖고 있는 '열혈 축구팬' 에르도안 대통령을 위해 행사 주최 측이 터키계 축구스타인 외질과 귄도간을 초청했다.
이날 외질과 귄도간은 에드로안 대통령에게 유니폼을 전달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귄도간은 '나의 대통령(My President)'라는 문구를 유니폼에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자 독일 내에서는 외질과 귄도간의 행동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취지의 비난이 쏟아졌다. 독일 축구의 전설이자 현 독일축구협회 이사인 올리버 비어호프는 "외질과 귄도간의 행동은 매우 옳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그로부터 2달여가 지나 외질은 결국 독일 대표팀은 은퇴를 선언했다. '신오스만주의'의 터키와 독일을 비롯한 EU와 서방세계의 기 싸움에 외질이 희생된 건 아닌지 씁쓸한 뒷말을 남긴다. 고래 싸움(터키-독일)에 새우(외질-귄도간) 등 터진 꼴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