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러시아월드컵] '졌잘싸' 이란이 신태용호에 전하는 교훈
입력: 2018.06.27 13:00 / 수정: 2018.06.27 13:00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이란, '1승1무1패' B조 3위 조별리그 탈락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란이 보여준 포기를 모르는 투지가 적잖은 울림을 주고 있다. 독일의 '버저비터' 골로 간신히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린 신태용호에 전하는 교훈이 크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월드컵 조추첨 당시 이란의 선전을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세계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무적함대' 스페인과 '축구의 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루투갈, 아프리카의 복병 모로코와 한 조에 속한 탓에 많은 이들은 이란을 이들 국가의 승점 제물로 여겼다.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무난한 16강 진출이 예상된 가운데 개막한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란은 특유의 끈적끈적한 질식 수비와 강력한 한방을 갖춘 빠른 역습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이란 선수들은 객관적 전력에서 한 수 위인 상대를 맞아 온 몸을 던지며 투혼을 불살랐다. 열 번 찍어도 안 넘어지는 나무 같은 이란은 한 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늪 축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B조를 막판까지 죽음의 조로 몰고갔다.

이란 선수들이 2018 러시아 월드컵 1차전 모로코와 대결에서 승리 후 기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란 선수들이 2018 러시아 월드컵 1차전 모로코와 대결에서 승리 후 기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첫 경기에서 모로코를 1-0으로 잡으며 파란을 예고한 이란은 스페인과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인 끝에 0-1로 패했다. 마지막 포르투갈과 일전에서 이란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선제 실점하고 이어 페널티킥까지 내줬지만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밀어붙였다. 결국 후반 추가시간 얻어낸 페널티킥 기회를 살리며 1-1 무승부를 거뒀다. 1승 1무 1패로 승점 4를 확보한 이란은 스페인, 포르투갈에 이어 조 3위로 러시아 월드컵을 마감했다.

'질식수비'에 이은 역습 한방. 이란의 콘셉트는 확실했고, 선수들의 투지는 그라운드 곳곳에 묻어났다. 아쉬운 게 있다면 공격력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2골밖에 내주지 않았지만, 득점도 2번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한 골은 상대 자책골이며 또 다른 한 골은 페널티킥이다. 필드 플레이로 상대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선수 개개인의 결정력과 기술, 세밀한 부분 전술이 아쉬웠지만, 이란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자국민에게 기쁨을 선물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이 2차전 멕시코와 경기에서 패배 후 아쉬워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이 2차전 멕시코와 경기에서 패배 후 아쉬워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반면 한국은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며 2패로 조별리그 탈락 위기다. 한국이 조별리그 첫 두 경기에서 연달아 패한 건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이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란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결정적 차이는 뭘까. FIFA 랭킹 1위 '전차군단' 독일전에서 반드시 승점 3을 확보해야 하는 한국이 반드시 곱씹어 봐야하는 물음이다.

많은 이들은 독일과 최종전에서 한국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다. 답답한 공격력과 불안한 수비조직력, 쉽게 납득되지 않는 용병술과 선수들의 자신감 저하 등이 비관적인 전망의 눈에 보이는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다. 한국에는 없고, 이란에는 있는 결정적 차이는 '투혼'이다. '침대 축구', '재미 없는 축구'라고 비판하면서도 탈락한 이란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도 이란이 보여준 투혼 때문이다.

한국에 아직 독일과 최종전이라는 기회가 있다. 20년 전이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연이어 패했다. 무기력한 패배에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차범근 전 감독은 월드컵 기간 중 경질이라는 전대미문의 불명예를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최악의 분위기에서 한국은 최종전에서 벨기에를 만났다. 선수들은 온몸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했다. 앞선 두 경기와 전혀 다른 팀으로 거듭난 한국은 벨기에와 1-1 무승부를 거뒀다. 1무 2패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였지만 많은 국민들은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1998 프랑스 월드컵과 비교한다면 신태용호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쉬운 건 맞지만 최악은 아닌 셈이다. 한국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을 맞아 설사 패하거나 16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투혼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졌지만 잘 싸운 이란이 주는 교훈이다.

bd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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