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10일 콜롬비아와 평가전이 시작된 직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더팩트 | 최정식기자] 그렇게 봐서 그렇게 느꼈을까. 늘 보던 선수들에게서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경기 직전 애국가를 따라부르는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의 표정에는 비장감마저 흘렀다. 어쩌면 전날 공식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던 신 감독의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그 느낌은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와 평가전에서 2-1로 이겼다. 손흥민이 2년 만의 멀티골을 넣었고, 수비진은 브라질 월드컵 득점왕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앞세운 FIFA 랭킹 13위 콜롬비아의 공세를 잘 막아냈다.
경기내용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첫 승리가 절실했다.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이후 월드컵 최종예선과 평가전에서 2무2패. 대표팀의 부실한 경기력이 도마에 올랐고, 신뢰를 잃은 한국 축구 전체가 흔들렸다. 상대가 강팀이었지만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지난달 모로코와 평가전에서 1-3으로 완패한 지 꼭 한 달 만의 경기. 대표팀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새로 대표팀에 합류한 스페인의 토니 그란데 코치는 "한국 선수들이 너무 순하다"고 지적했었다. 이날 킥오프 직후 고요한이 미드필드에서 공을 잡은 상대를 향해 강한 태클을 감행했다. 당장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상대에게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손흥민은 물론 훌륭한 골잡이였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전반 41분 왼쪽 측면에서 이근호의 원터치 패스가 손흥민을 향했다. 좀 길었다. 골라인 밖으로 벗어나는 공을 향해 손흥민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고 결국 살려냈다. 좋은 기회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아끼지 않았던 선수는 손흥민뿐이 아니었다.
손흥민(7번)이 10일 콜롬비아와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이날 가장 뛰어났던 선수를 꼽는다면 이근호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6일 선수단 미팅에서 "이번 경기는 단순히 팀 전력을 점검하는 차원을 넘어 축구팬들께 신뢰와 믿음을 줘야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 평가전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근호는 당시 "동료들과 얘기해 보니 나뿐 아니라 모두들 이번 경기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적이 걸린 경기처럼 평가전을 치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때 그 말을 그라운드에서 실천했다. 경기 초반부터 상대 진영을 돌파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며 수비를 흔들었고, 좋은 움직임으로 손흥민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결국 손흥민의 선제골은 이근호에서 비롯됐다. 이근호는 가벼운 부상으로 하프타임 때 이정협으로 교체됐지만 한국의 이른 득점이 경기 흐름을 바꿨다는 점에서 손흥민의 두 번째 골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이 2-1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후반 36분 신태용 감독은 고요한과 이재성을 구자철과 염기훈으로 교체했다. 승리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흔히 하는 수비를 강화하는 선수 교체가 아니었다. 경기 후 신 감독은 "그 선수들을 빼면서 수비에 치중하면 상대에게 계속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체력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교체였다. 우리가 1점을 앞선 상황에서 실점해 동점을 허용할 수도 있지만 한 골을 더 넣어 승리를 굳힐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계속된 비판에 시달렸지만 그는 대표팀에서 자신의 색깔을 내겠다는 마음을 여전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신태용호는 첫 승을 올렸고 경기내용도 괜찮았다. 물론 승리의 기쁨에 취해 넘겨버릴 수 없는 문제들도 보였다. 이날 한 번의 승리로 대표팀의 전력을 높게 평가할 수만은 없다. 절실함만으로 계속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좋은 계기는 마련됐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후 공식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9월까지는 본선 진출이 과제였고, 10월에는 완전한 대표팀을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콜롬비아전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오늘 승리가 나 자신에게는 물론이지만 선수들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태용호가 제 색깔을 낼 수 있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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