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히딩크와 허정무, 그리고 신태용
입력: 2017.09.08 06:00 / 수정: 2017.09.08 06:00

지난 2013년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선수 오찬 행사에 참석한 거스 히딩크 감독. 더팩트DB
지난 2013년 열린 2002 한일 월드컵 선수 오찬 행사에 참석한 거스 히딩크 감독. 더팩트DB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을 16강으로 이끈 허정무 감독은 그해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거스 히딩크와 후임 외국인 감독들이 한국 축구를 말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히딩크의 성공이 장기적 관점의 전략 없이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해 나온 결과라고 주장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적에만 신경썼을 뿐 그 이후를 내다보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한국 축구를 세계 4강에 올려놓은 '은인'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큰 파문을 불렀다.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허 감독은 "나도 그의 공로는 인정한다"며 자신의 발언 의도에 대해 해명했으나 한동안 논란이 계속됐다.

지난 6월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경질됐다.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중국과 시리아를 상대로 잇따라 졸전을 벌이더니 급기야 카타르에 패하면서 사령탑을 교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유력한 새 감독 후보로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떠올랐다. 그의 경험과 실적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에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에게 대표팀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어떻게든 지금의 위기부터 넘기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당초 대표팀을 맡을 의향을 내비쳤던 허 부총재는 부정적인 여론이 적지 않자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의 새 지휘자로 결정됐다. 7년 전 허 부총재는 "당면한 월드컵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자신이 그런 조급함에 직접 관련됐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을 앞두고 2011년 말 조광래 감독을 물러나게 했을 때처럼 본선에 못 나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리고 새 감독의 조건과 그에게 거는 기대 역시 '본선 진출'에 집중됐다. 언제나 변화의 동기는 '전략'이 아닌 '불안'이었다(물론 조 감독 때는 불안만이 아니라 불화도 있었다). 신 감독 취임 이후 대표팀 조기 소집을 위한 K리그 일정 조정이 거의 아무런 이의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불안에서 비롯됐다.

지난 6일 한국이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직후 한 언론이 "히딩크 감독은 국민이 원하면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을 생각이 있다"는 측근의 말을 보도했다. 그러자 히딩크의 대표팀 감독 복귀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고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신태용 감독이 최종예선 두 경기를 모두 0-0 무승부로 마치면서 본선 경쟁력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히딩크 복귀론' 역시 그에 따른 불안감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 대표팀은 한 국가가 가진 축구 경쟁력의 총화다. 마땅히 기반으로 삼아야 할 프로리그를 제쳐두고, 특정 지도자의 능력에 기대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성공도 실패도 성장의 과정이다. 일시적인 실패조차 두려워 위기를 과장하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발등의 불만 끄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한국축구의 진짜 위기는 월드컵 예선 탈락이나 본선 경쟁력 부족이 아니라 '지금 당장'에만 매달리는 근시안적 사고가 축구계에 고착화하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신태용 감독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성공이 아니라 변화다.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것으로 보이는, 또 당연히 그래야 할 '15년 전 인물의 소환'을 통해 우리가 느껴야 할 점은 이제 고개를 들고 눈길을 좀더 먼 곳으로 향할 때가 됐다는 사실이다. 단, 뒤가 아닌 앞쪽으로.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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