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대표팀 조기소집과 '대승적'이라는 말
입력: 2017.07.26 04:00 / 수정: 2017.07.26 04:00

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과 김남일 코치가 K리그 서울과 포항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과 김남일 코치가 K리그 서울과 포항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조기 소집'이 이뤄지는 분위기다. 신태용 감독이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의 남은 두 경기를 앞두고 다음달 28일 시작돼야 할 대표팀 훈련을 1주일 앞당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자 대한축구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곧바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안기헌 전무는 프로축구단들에 협조를 부탁했다. 28일 열리는 K리그 구단 대표자 회의 때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을 할 예정이다. K리그 구단들과 감독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와 K리그 관계자들이 대표팀 조기 소집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자주 쓰는 표현이 '대승적'이다. 협회 쪽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걸려있다며 대승적 견지에서 협조해달라고 하고, K리그 쪽은 문제는 있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대승적'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사로운 이익이나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또는 그런 것'이다. K리그의 일정을 바꾸는 일이 '작은 일'일 수 없으니 아마도 조기 소집에 따른 각 구단의 서로 다를 수 있는 이해 관계를 '사사로운 이익'으로 보는 듯하다.

조기 소집이 대표팀의 경기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일부 선수들만이 참가하는 훈련이 지난 6월 카타르전 때처럼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사령탑이 바뀌고 손흥민과 기성용 등 대표팀의 주축인 해외파 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는 그 때와 다를 수도 있다. 문제는 훈련의 실효성이 아니라 대표팀과 K리그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다.

K리그에 협조를 구하는 명분은 대표팀의 월드컵 성적이 K리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강한 대표팀을 갖는 유일한 방법은 K리그를 강하는 만드는 것이다. 리그가 발전하고 활기를 띠어야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해외 진출도 활발해져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는 선수들도 늘게 된다. 그 출발점이 리그를 중시하고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한국 축구는 기형적이다. A매치에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특히 월드컵 같은 최고의 경기라면 열광하지만 프로축구 열기는 리그 수준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진다. K리그의 정체는 대표팀의 전력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당장의 대표팀과 월드컵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대한 문제 제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축구협회는 J리그에 프로축구 시즌을 '봄-가을'에서 '가을-봄'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해놓고 조심스러워하는 프로 구단들을 지난 1년 동안 설득하고 있다. 대표팀 소집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다 문제점이 많은 제안이지만 적어도 축구 강국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 장기적으로 바라보며 고민한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에 K리그 선수들을 많이 뽑겠다고 했다. 물론 능력과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 K리그에 많고, 현재의 자원에서 최고의 전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 한 말이겠지만 조기 소집을 요청해 놓은 상황에서는 원칙은 물론 자신감마저 흔들리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란이나 우즈베키스탄이 어떻게 훈련하는지는 신경쓸 일이 아니다. 유럽이나 남미는 우리와 수준과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 원칙대로 대표팀을 운영했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실패에서는 교훈과 재도약을 위한 동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를 맞을 때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조급증에만 빠져 있는다면 대표팀도 K리그도 전진할 수 없다. 결코 '대승적'인 행동일 수 없는 것이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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