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강지훈이 후반 종료직전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강지훈이 11일 벌어진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오버헤드킥을 성공했다. 경기 막판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하승운이 크로스한 것을 오버헤드킥 골로 연결, 한국의 2-0 승리를 마무리했다. 한국 각급 대표팀 경기에서 나온 오버헤드킥 골은 2004년 10월 3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19세 선수권 8강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신영록이 기록한 이후 13년 만이다.
시저스킥 또는 바이시클킥으로도 불리는 오버헤드킥은 축구 경기에서 연출되는 멋진 장면 가운데 하나지만 팬들의 눈만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골키퍼를 포함한 상대 수비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시도해 골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드물지 않게 시도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공을 끝까지 주시하면서도 골문의 위치를 파악하는 시야, 점프 전후 팔의 자세와 다리의 움직임, 슛하는 순간 공의 위치와 다리의 높이, 공을 차고난 뒤 땅에 떨어질 때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작이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강지훈도 "공이 발에 잘 맞았지만 들어갈지 확신이 없었다. 땅에서 일어난 뒤에야 들어간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오버헤드킥을 스페인어로 '칠레나(La chilena)'라고 한다. 칠레 출신인 다비드 아레야노가 1927년 유럽 원정 경기 때 골대를 등지고 슈팅을 시도해 관중을 놀라게한데서 유래했다. 그 때만 해도 경이적인 동작이었던 오버헤드킥을 널리 유행시킨 선수는 펠레 이전 브라질의 위대한 공격수였던 '검은 다이아몬드' 레오니다스 다 실바다. 그는 1938년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르면서 오버헤드킥으로 명성을 얻었다.
레오니다스 다 실바 이후 많은 선수들이 새로운 슈팅 기술에 빠져들었는데 대표적인 오버헤드킥의 달인이 1960년대에 활약한 오마르 엔리케 시보리(아르헨티나, 이탈리아)와 우베 젤러(독일)였다. 시보리와 젤러 모두 오버헤드킥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축구는 골을 넣는 것이 최종 목표지만 관중이 열광하는 것은 그저 공이 골문 안에 들어갔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의 신체가 순간적으로 빚어내는 강력함과 우아함에 찬탄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축구 스타 에릭 칸토나는 "축구는 춤이 그렇듯이 우아하고 경이로운 몸짓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1930년 처음으로 열린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우승으로 이끈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탱고 실력이 뛰어나 파리 카바레 무대 출연을 제안받았을 정도의 춤꾼이었다.
단순한 공 굴리기에서 시작한 축구는 펠레의 드리블, 가린샤의 페인트, 요한 크루이프의 발놀림, 미셸 플라티니의 오픈 패스, 프란츠 베켄바워의 태클 등이 더해지면서 예술의 경지로 올라섰다. 오버헤드킥이라는 '우아하고 경이로운 몸짓'을 축구에 유산으로 남긴 레오니다스 역시 그런 거장 중의 한 명이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오버헤드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