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정몽준 회장의 축구 열정, 다른 뜻은 없는 거죠?
입력: 2015.06.04 06:00 / 수정: 2015.06.03 22:53

블라터 아웃!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3일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 축구회관 = 남윤호 기자
'블라터 아웃!'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3일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 축구회관 = 남윤호 기자

3일 오후 3시 15분, '긴급공지'라는 머리글로 대한축구협회에서 문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정몽준(64)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의 기자회견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황급히 도착한 축구회관에서 정 회장은 축구인으로서 다시 출발하는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출마 선언은 없었지만 축구계 복귀를 알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날 취재는 오전 2시부터 시작됐습니다. 야간 취재를 마치고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유럽의 한 스포츠 매체에서 보낸 푸시 알람이었습니다. 눈을 반쯤 뜨고 내용을 확인하자 잠이 번쩍 깼습니다.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한번 찬찬히 글을 읽었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달 29일 5선에 성공한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이 사임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오전 내내 블라터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블라터의 인터뷰, 향후 행보는 물론 선거 전 나온 정 회장의 비판까지 기사화됐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치고 오전이 지나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조금은 나른한 시간, 대한축구협회에서 보낸 '긴급공지'가 도착했습니다. 정황을 확인하고 바로 축구회관으로 출발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더위를 느낄 새도 없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정 회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랜만입니다.'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정 회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후 5시, 기자회견을 30분 앞두고 신문로 축구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2층 다목적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미 회견장은 50여 명의 취재진이 내뿜는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취재 차 수도 없이 축구회관을 찾았지만 이렇게 취재진이 많이 몰린 적은 드물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이곳저곳에서 얘기가 들려옵니다. "출마 확정이야?"와 "정 회장 성격에 고민하지 않겠어?"로 나뉘는 반응이었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긴급공지라는 의미에 무게를 실으면서 출마 확정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오후 5시 30분, 약속된 시간에 딱 맞춰 정 회장이 밝은 얼굴로 회견장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등장에 회견장이 일순간 밝아질 정도로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습니다. 정 회장은 자리에 앉아 품에 가져온 용지를 꺼냈습니다. 회견장의 모든 시선이 그의 입에 모였습니다.

정 회장은 "과거보다 회견장이 커졌네요"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회견장 이곳저곳 시선을 옮기며 과거의 추억에 젖는 듯했습니다. 정 회장은 바로 조계사 옆의 견지동 축구협회 시대를 끝내고 신문로 시대를 연 주인공입니다. 감회가 새롭겠지요.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블라터의 행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FIFA의 진정한 개혁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출마 여부에 대해선 확답을 유보했습니다. 국제 축구계 인사들과 대화를 한 뒤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는지 묻는 말에도 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출마는 아직 유보. 정 회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출마는 아직 유보.' 정 회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기자회견 내내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가던 정 회장이 가장 크게 미소 짓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 기자가 "정 회장은 역시 축구계에 오니 달변가가 되는 거 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정 회장은 환하게 웃으며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해요. 축구 행정을 좋아한다기보다 축구를 좋아한다. 요즘도 동네에 나가 축구를 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러면 정치한다고 봐서 안타까워요"라고 털어놨습니다.

기자회견 막바지 정 회장이 축구계를 떠난 뒤 한국의 축구 외교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정 회장도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을 중동에서 치르는 것을 언급하며 일정 부분 인정했습니다. 정 회장은 2002 한일월드컵, 17세 이하(U-17) 월드컵 등을 개최하며 축구계 한국의 힘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축구계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그는 지난 2009년 16년 동안 유지한 축구협회장직을 내려 놓고 다시 정계로 돌아갔습니다. 13대부터 7선을 한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에 전념했고, 지난해에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에는 정치적으로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그가 독설과 함께 축구계 복귀를 알렸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축구계에서의 행보가 새로운 정치 인생을 여는 도구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더팩트ㅣ축구회관 = 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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