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지소연의 꿈, 그리고 3177명의 현실
입력: 2015.04.06 11:03 / 수정: 2015.04.06 11:03
텅 빈 관중석. 한국이 17년 만에 국내 평가전을 치른 5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는 3177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 인천전용축구경기장 = 이현용 기자
'텅 빈 관중석.' 한국이 17년 만에 국내 평가전을 치른 5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는 3177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 인천전용축구경기장 = 이현용 기자

좋은 경기력-만원 관중 꿈꾼 지소연, 절반의 성공

잔뜩 찌푸린 하늘이 한 소녀의 마음을 대신하는 듯합니다. 잠들어 있던 새싹을 깨운 봄 햇살을 가로막은 야속한 비가 한 소녀의 행복한 상상을 방해했습니다. 홈 팬들로 가득찬 경기장의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었던 지소연(23·첼시 레이디스)의 꿈은 잠시 미뤄졌습니다. 실망이 클 만도 하지만 한국 여자 축구 대들보로 성장한 그는 자신을 탓합니다. 그리고 다시 축구화 끈을 질끈 조여 맵니다.

17년 만에 열린 태극낭자들의 안방 평가전이 1-0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러시아와 평가전은 한국 여자 축구에 정말 의미 있는 경기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이 순간을 기다린 이가 있습니다. 바로 지소연입니다. 지소연을 처음 봤을 때, 일본에서 활약하는 대표팀의 주축 선수였습니다. 여고생 티를 채 벗지 못한 앳된 표정으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던 그는 하루가 다르게 실력도 마음도 성장했습니다.

지소연은 '에이스'로서의 숙명을 안고 생활합니다. 태극마크를 가슴 속에 품고 그라운드를 누빕니다. 그와 조금만 얘기를 나누면 한국 여자 축구를 알리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잉글랜드 무대에 한창 적응하던 그가 잠시 한국에 머문 틈을 타 만났습니다. 지소연은 "월드컵 출전을 이뤄 기뻐요. 모든 선수의 꿈이 나라를 대표해서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에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여자 축구 부흥과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일어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소녀가 짊어진 무게를 느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5일 지소연이 러시아전 직후 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5일 지소연이 러시아전 직후 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간은 흘러 지소연은 잉글랜드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팀 성적은 훌쩍 올랐고 자신은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난해 12월, 지소연을 다시 만났습니다. 지소연은 누구보다 국내 A매치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정이 확정된 상황이 아니었지만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소연은 "국가 대표로 뛰면서 국내에서 친선경기를 한 적은 아직 없어요. 주로 대회에서 A매치를 소화해요. 다른 나라는 조금 다릅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남자 A매치 기간일 때 상대를 부르기도 하고 가서 경기를 치르기도 해요"라며 부러운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지소연에게는 딱 마음에 들어온 국내 평가전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빗셀 고베에서 뛸 때 홈 구장에서 일본과 브라질이 맞붙은 적이 있었어요. 만원 관중 앞에서 일본이 브라질을 꺾는 장면을 보면서 '아, 한국에서 나도 많은 팬들을 불러서 좋은 경기력을 한번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소연은 자신의 말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귀국한 지 하루 만에 맞은 자신의 첫 국내 평가전, 후반 29분 그라운드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후반 45분 결승골을 터뜨리며 환호했습니다. 동료들이 만든 좋은 바탕에 자신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길 꿈꾸던 국내 평가전이 현실이 됐습니다.

지소연은 러이아와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지소연은 러이아와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지소연의 걱정도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지소연은 "솔직히 '많은 관중이 찾아올까?'라는 걱정도 있어요. 사전에 많이 알리고 좋은 날짜에 좋은 상대랑 맞붙으면 많은 분이 찾아와 주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는 3177명의 관중만이 객석을 채웠습니다. 야속한 비와 궂은 날씨가 경기장으로 향하는 축구 팬의 발목을 잡았다고 위로합니다. 날씨를 탓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소연은 여자 축구의 현실이기에 받아들였습니다. 결코 날씨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지소연과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먼저 나타낸 지소연은 관중이 적어 아쉽다는 말에 "관중이 좀 적었죠? 더 열심히 해야죠"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른 이유를 찾기보단 오롯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지소연입니다. 3177명의 관중이 3만 1770명이 되길 바라는 지소연과 여자 대표팀의 꿈은 더 커져갑니다.

[더팩트ㅣ인천축구전용경기장 = 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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