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준우승] 최은성 떠올리게 한 '벤치워머' 정성룡의 헌신
입력: 2015.02.02 06:00 / 수정: 2015.02.01 22:51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달 31일 호주와 2015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1-2로 패한 뒤 벤치와 훈련장에서 묵묵히 후배들을 격려한 정성룡(가운데)을 치켜세웠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달 31일 호주와 2015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1-2로 패한 뒤 벤치와 훈련장에서 묵묵히 후배들을 격려한 정성룡(가운데)을 치켜세웠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주연이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주연 못지 않은 조연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시아 축구 축제'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27년 만에 한국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행을 이끈 이가 있다. 바로 '벤치워머' 정성룡(30·수원)의 이야기다.

한국은 지난달 31일 오후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결승 호주와 경기에서 120분 혈투 끝에 1-2로 패했다.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46분에 터진 손흥민(22·레버쿠젠)이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지만, 연장 전반 15분 제임스 트로이시(26·SV 쥘터 바레험)의 결승골을 막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했다.

경기 후 모든 선수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27년 만에 결승에 올라 반세기(55년) 만의 우승을 노렸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울리 슈틸리케(60) 감독은 절대 아쉬워하지 않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김진수(22·호펜하임)를 포함해 대회에 나선 모든 선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정성룡(가운데)이 김진현(왼쪽)-김승규와 함께 훈련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정성룡(가운데)이 김진현(왼쪽)-김승규와 함께 훈련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특히, 대회 내내 벤치를 지킨 정성룡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미래를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며 선수들을 치켜세웠다.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었다. 그는 "3일 전 훈련을 했을 때 4강에서 주전으로 뛴 선수들과 비주전 선수들로 10명, 11명으로 나눴다. 비주전 10명에는 8명의 필드 선수와 2명의 골키퍼가 있었다. 한 명은 이번 대회에서 단 1분도 안 뛴 선수였다"며 "한국 대표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정성룡을 보고 넘버원 골키퍼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모두가 열심히 했다. 준우승이지만 11명이 이룬 것이 아니라 모든 선수가 이뤄낸 것이다. 대표팀의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다"고 밝혔다.

정성룡은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무기력한 플레이로 5000만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찍은 '셀카'를 SNS에 올리며 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리그에서도 잦은 실수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고,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 철옹성 같이 지켰던 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잃었다. 이번 대회 역시 단 한 번도 골키퍼 장갑은 끼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선 최선을 다했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그런 정성룡을 언급하며 진심 어린 마음을 전달했다.

최은성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배들을 격려하며 한국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 최진석 기자
최은성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배들을 격려하며 '한국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 최진석 기자

정성룡의 보이지 않은 활약은 최은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4강 신화'를 일궈냈던 2002 한일 월드컵. 대부분 팬은 맹활약을 펼친 박지성(33)-안정환(39)-설기현(36·인천)-김남일(37·교토상가) 등 에게만 열광했다. 이들이 그라운드의 주연이었다면, 그라운드 밖 주연은 단연 '최은성'이었다.

당시, 최은성은 이운재(41)-김병지(44·전남)와 함께 최종 23인 명단에 이름을 올려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최은성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네임 벨류는 물론 국제 경험 면에서 이운재와 김병지에게 철저히 밀렸기 때문이다. 최은성은 불평불만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주력했다. 선수들의 조력자가 된 것이다.

슈팅 연습을 하는 후배가 있으면 박수와 응원으로 격려했고, 연습 경기에서 수비 선수가 모자라면 필드 플레이어를 자처했다. 단 한 번도 인상을 쓰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 역시 이런 최은성의 성실한 부분을 높게 평가했다.

축구는 한 명이 하는 개인 스포츠가 아니다. 필드 위에서 뛰고 있는 11명의 선수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하는 팀 종목이다. 그라운드에서 11명이 빛나지만, 벤치와 훈련장에선 엔트리에 포함된 23명이 모두 빛나야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축구다. '제2의 최은성'으로 변신했던 정성룡의 헌신이 반가웠던 이유다.

[더팩트ㅣ이성노 기자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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