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더팩트> 사무실에서 열린 한일 축구대담에서 거론된 김신욱. / 스포츠서울 DB
한국과 일본. 세기가 바뀌어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뿌리 깊은 역사의식으로부터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항상 경쟁하고 있다. 특히 스포츠, 그중 축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축구만큼 전 세계 어디서나 즐기는 종목이 드물다. 내셔널리즘이 가장 확고한 종목이다. 한일 축구는 항상 치열하게 대립하는 라이벌 관계이자 동반자로 불린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하다.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마음 말이다.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지 라이벌로서 꼭 이겨야만 하는 상대로 생각하는지. <더팩트>은 한국 축구가 이란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최종전에서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을 확정한 다음 날인 19일 양국을 대표하는 축구기자 간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한일 축구 동반 브라질행에 대한 시각/서로가 존경하는 선수/유럽파 현주소 등을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때론 조언을, 때론 설전이 오가며 그라운드 못지않은 즐거움과 긴장감이 맴돌았다. 무엇보다 양국의 축구가 지금보다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엔 동의했다. 대담은 스포츠서울TV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 대담 날짜 : 2013년 6월 19일 수요일 오전 10시 / 더팩트 사무실 ○ 진행 / 참가자 : 김용일 더팩트 기자 / 심재희 더팩트 축구팀장, 요시자키 에이지 일본 축구전문 기자
10년 넘게 한일 축구 현장을 누빈 베테랑 프리랜서 기자 에이지 요시자키. / 유재영 인턴기자
주제 1. 한국-일본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
-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심재희 기자는 월드컵 최종예선을 취재하면서 어땠나.
심재희, 이하 심)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소기의 성과는 거뒀으나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월드컵 최종 예선 기간 내내 '알고도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복합적인 문제가 많았는데, 무엇보다 '시한부 감독'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월드컵 본선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잡음이 많이 나온 게 아쉬웠다. 이란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했는데, 참 아쉽다.
- 아무래도 비난의 초점이 됐던 건, 이례적으로 최 감독이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만'이라고 못 박으면서 선수들의 융화나 동기부여가 떨어졌다는 점, 김신욱을 축으로 한 롱볼 위주의 전술이 아니었나 싶다. 국내에서 취재한 요시자키 기자의 생각은.
요시자키, 이하 요시자키) 개인적으로 최 감독에 대한 일련의 비난은 잘못됐다고 본다. 계약기간이 (최종예선까지) 정해져 있었지 않은가. 그의 임무는 애초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그걸 이뤄낸 상태에서 비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롱볼 전술은 한국 축구의 장점이라고 본다. 김신욱이라는 선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은 할 수 없다.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게 특성일 뿐이다.
2000년대 이후 가장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으로 불리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 국가대표팀 전술은 그 나라의 축구 철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롱볼 전술이 옵션이 아닌 핵심'이 됐다는 것이 문제였다. 반면 일본은 기존 색깔을 유지하면서 혼다, 가가와를 축으로 발전적인 모습을 보였지 않는가.
심) 지금 한국 팬들은 단순히 월드컵 최종예선만 놓고 평가하는 게 아닐 것이다. 한국 축구 전체적인 문제점이 공론화되고 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데, 일찌감치 브라질행을 확정하고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한 일본을 부러워한다. 세계 톱 클래스 팀과 경기를 성사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아시안컵을 두 차례나 우승하는 등 국제 대회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특유의 아기자기한 패스를 살리면서 다채로운 공격 전술이 거듭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처지에선 참 부럽다.
요시자키) 그건 맞는 말이다. 예를 들어 브라질과 경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0-3으로 졌으나, 난 이 시기에 대패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본다. 그런 만큼 한국 축구가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본선 무대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보라. 최종예선에서 쉽게 가면 본선에 못했다. 반면 최종예선에서 힘들게 가면 본선에서 잘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이 전자, 1994 미국 월드컵이 후자에 해당한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도 히딩크 경질 압력까지 받았으나 본선에서 성공하지 않았나.
- 문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은 과정도 착실해야 한다는 것인데 일본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결과가 확실해야 한다는 것인가.
요시자키) 하하. 한일 사람의 특성 차이는 아닌 것 같다. 아, 앞서 말한 것과 관련해서 한 가지 예외는 있다. 바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이 이끈 한국은 예선과 본선 성적이 모두 좋았다.
심) 그런 의미에서 당시 일본이 월드컵 출정식에서 박지성에게 결승 골을 내주는 등 한국에 0-2로 졌다. 현장 분위기가 어땠나.
요시자키) 아악! 정말 최악!!(웃음) 뭐, 물론 우리가 한국에 져 월드컵에서 잘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수비 중심의 축구로 전환하게 됐다. 월드컵에서 강력한 압박 수비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진 얘기는 그만….(웃음)
아시아 축구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툰 한국과 일본은 후발 세력들의 견제를 받고 있다.
- 월드컵 최종예선을 총평하는 의미에서 한마디씩 해준다면.
심) 일본도 겉으로는 수월한 본선행으로 보이지만, 요르단에 지는 등 쉽지만은 않았다. 호주도 고전하지 않았나. 이제 아시아 축구가 상향 평준화 됐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오만도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과거엔 한국과 일본이 원정을 가도 이기는 경기를 했다. 그러나 최근엔 상대 전술에 말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 일본 사우디 이란이 월드컵 본선 진출 경쟁을 한 시대는 과거가 됐다. 한일 모두 후발 주자들에 대한 견제나 위협에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요시자키) 맞다. 오랜만에 요르단에 져 스릴 넘쳤다.(웃음) 일본 다른 기자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으나 월드컵 최종예선은 아시아 축구의 최고 콘텐츠와 다름없다. 그만큼 참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재미는 더 생겼다고 본다.
심) 스릴을 강조하시는데, 개인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3위로 떨어져 플레이오프에서 만나는 스릴은 없었으면 한다.(웃음) 흔히 단두대 매치라고 한다. 물론 미안한 말씀이나 아직 한국과 일본이 지난해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등 주요 승부처에서 만난다면 한국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경기력이 50대50이면 정신 자세가 다르다.
요시자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난 그 말에 공감한다. 얼마 전에 최성용 코치를 만났다. 최 코치는 J리그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다. 최 코치가 J리그에 있을 때 가장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선수들의 정신 자세였다. 예를 들어 경기에서 졌을 때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어떻게 졌는지를 생각하고 정신력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눈앞에 있는 경기에 집중력이 높은 건 분명 한국의 강점이다.
이날 대담에선 한국엔 '김신욱 활용법'이 일본엔 '이기려는 강한 멘탈'이 보완 과제로 등장했다.
- 어찌됐든 한국과 일본이 브라질에 간다. 각자 보완을 해야 한다. 월드컵 1년을 앞두고 양국에 조언을 해준다면.
심) 일본의 최대 강점은 경기력의 기복이 적다는 것이다. J리그 중계를 2년 넘게 했는데, 솔직히 기술이나 킥 능력은 일본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톱 클래스 선수만 비교할 게 아니라 프로 선수들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다. 반면 기술이 좋으면서도 힘이 부족해 국제무대에서 고전한 일본이다. 그런데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직적이고 힘이 가미된 수비력으로 덴마크 등 유럽 강호들을 꺾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난 일본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올라가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이기고자 하는 의지 등 '멘탈'이 관건이다. 이 부분은 경기력보다 더 쉽게 갖춰지기 어렵다고 본다. 강한 정신만 갖춰지면 기술적인 축구로 세계 무대에 도전할 것이다.
요시자키) 음, 멘탈이 부족해 보이나? 엔도 야스히토 같은 선수들이 얼마나 애국심을 강조하는데. 하하. 농담이고 맞는 말이다. 그 부분 인정한다. 내가 한국 대표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신욱에 대한 활용을 잘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신욱이라는 선수가 운동장에서 얼마나 뛰느냐에 따라 월드컵 성패가 달라진다고 본다. 김신욱은 분명 뛰어나고 괜찮은 능력을 지닌 선수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롱볼 외에도 다양한 공격 옵션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꾸 롱볼에 대해 비난하지 마라. 2010년 클럽월드컵 취재를 갔을 때 성남 신태용 감독에게 물었다. 왜 J리그 클럽이 K리그에 안 되느냐고. 신 감독은 "우리는 J리그처럼 미드필드 플레이만 고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바로 그거다. 한국의 장점이다. <②편에선 한일 서로 존경하는 선수를 주제로 다뤄집니다> ◆ [한일 축구대담①] "김신욱 얼마나 뛰느냐에 韓 월드컵 성패 달려" (http://www.youtube.com/watch?v=mMCpOltWU3U&feature=player_embed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