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인터뷰] '손흥민 父' 손웅정 "지도자 안 변하면 韓 축구 수렁 빠져" ②
입력: 2012.07.27 10:06 / 수정: 2012.07.27 10:06
한국판 축구사관학교 아시아축구아카데미 총감독을 맡은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김용일 기자
한국판 축구사관학교 아시아축구아카데미 총감독을 맡은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 김용일 기자

[춘천 = 김용일 기자] 취재기자는 본격적으로 손웅정 감독(50)의 유소년 축구 지도 철학에 관해 듣고 싶었다. 학원 축구 지도자들과 차별화된 유소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럽 클럽의 주목을 받은 손 감독. 그는 훈련 때마다 선수들과 직접 부딪치며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단순히 훈련이라기보다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최후의 일전인 양 감독, 선수가 모든 것을 바친다. 이 모든 것이 손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 손 감독의 축구 열정과 철학은 축구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졌다. 1편에서 언론과 거리를 뒀던 사연을 공개했지만, 유소년 지도로 큰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축구계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은데.

상당히 비중 있는 질문을 하셨다. 맞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면 다른 지도자들은 '저 자식이 뭔데'라며 돌을 던질 것이다.(웃음) 난 유소년의 기본기를 중요시하지 않느냐? 한 번은 철원에서 열린 풋살대회에 나갔다. 경기를 앞두고 기본기 훈련을 하고 있는데 상대 팀 감독이 "저런 것만 하는 아이들은 공 못차"라고 말을 툭 던지더라. 난 "기다려라. 경기 때 보자"고 했다. 경기 후 그 감독은 사라졌다. 난 한국 지도자의 밥그릇에 재 뿌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내게 그런 발언을 하는 건 잘못됐다. 나도 안다. 한국 축구에서 야인이란 것을. 비주류란 것을. 하지만 지도자라면 내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제자들이 기본기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한다.

- 손 감독께서 평소 생각하는 한국 유소년 축구의 현실은 무엇인가.

한국 유소년 축구 지도자들이 변해야 한다. 자기 밥그릇 싸움에 선수, 학부모를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보내면 안 된다. 진정성 없이 감독 자리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잘났길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계속 말해야 한다. 한국 축구, 이대로 가면 수렁에 빠진다. 현재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유소년 선수에게 체력훈련 안 시킨다. 성인들도 안 한다. 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어린 선수들에게 타이어를 끌게 하고, 운동화 신고 도로를 뛰게 하고, 계단을 뛰게 하느냐. 축구 하는 아이들인데!

- 승부 세계에 노출된 한국의 유소년 축구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인가.

전 형편없는 선수 시절을 보냈다. 제자들은 저와 정반대의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제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훈련 방식부터 모든 것을 반대로 한다. 한국 지도자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 전 지금도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꼬박 밤을 샌다. 오랜 시간 유소년을 지도했지만, 아직도 내 프로그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패스 훈련을 어떻게 했을 때 실전 경기에서 상대 뒷공간을 파고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운동 시간 외엔 서점에 가서 다른 분야의 책을 사서 읽는다. 제 자랑을 풀어놓는 게 아니다. 지도자들이 알량한 자기 밥그릇 싸움에 가면 쓰고 살지 않기를 바란다. 감독은 제자들에게 희생을 하는 것이다.

- 승부 세계에 노출된 유소년들. 많은 부분이 개선됐지만, 과거서부터 구조적인 문제였는데.

맞다.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저와 국가대표팀에 같이 있었다. 그분이 유소년 축구를 7-7, 8-8로 하자고 주장했다. 학원 축구 지도자들이 난리가 났다. 그건 아니라고. 그런데 축구 선진국에 가보라. 유소년 축구 11-11로 안 한다. 일부 지도자들은 선수가 적으면 회비 자체가 줄어드니까 꺼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입에 거품을 물면서 외치는 게 초등학생들의 기본기다. 제가 있는 아시아축구아카데미에 학교 축구부에서 뛰다 온 아이들은 기본기를 시키면 지루해한다. 재미가 없으니까. 전 '기본기가 싫으면 경기 뛰는 학교 축구부로 다시 가라'고 한다. 아이들이 볼을 다룰 수 있게 3~4년을 준비해야 한다.

- 손 감독의 유소년 지도 철학은 무엇인가.

기본기는 실전 경기에서 볼을 자유자재로 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패스, 드리블, 헤딩, 슈팅이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행할 때 경기에서 조합이 된다. 전 볼 리프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볼 컨트롤과 패스, 드리블. 마지막에 가서 슈팅을 한다. 제가 2009년 17세 이하 월드컵을 마치고 말한 것이 '앞으로 2년 뒤 21세 이하 국가대표팀에 17세 이하 선수 3명도 못 들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왜?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승부 세계에 노출돼 혹사를 당했다. 예를 들어 40이 가까운 맨유의 라이언 긱스를 보라. 어려서부터 체력 훈련을 한 것과 기본기부터 과학적으로 배운 것은 차이가 난다. 난 (손)흥민이 슈팅 훈련을 프로가 됐을 때야 했다. 무릎 고장 날까 봐.

손 감독은 훈련 때마다 선수들과 같이 뛰며 땀을 흘린다.
손 감독은 훈련 때마다 선수들과 같이 뛰며 땀을 흘린다.


학교 축구부에서 넘어온 아이들을 보면 무릎 수술 두 번 이상 한 경우가 많다. 슈팅까지 가려면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나. 과정 없이 슛을 때릴 수 있나. 볼 컨트롤을 하고 패스를 하고 돌파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만 18세 넘어 근력 운동과 슈팅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 공지천에서 훈련 모습을 보면 어린 선수들이 손 감독의 진정성을 느끼는 것 같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어린 선수들이 감독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신뢰를 어떻게 얻었나.

엄청나게 예민한 부분을 보셨다. 우리 아이들은 감독 놀이를 하고 있다. 내 약점을 알고 가지고 논다.(웃음) 이 녀석들은 '우리 감독이 나한테 소리 지르고, 구박해도 나쁜 감정이 아니라 정말 축구에 대한 사랑이 있다. 내가 발전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친 것 같다. 엄하게 훈련을 해도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농담을 한다. 학부모들은 저 감독은 나이가 몇인데 아이들과 뒹굴고 어울리느냐고 할 정도다.

- 유소년 선수를 오래 지도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

한 단계 올라섰을 때다.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가르치는 것 같다. 못 버린다. 그 순간의 보람과 희열의 맛을 느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주위에서 손웅정은 아들이 잘되고 돈을 벌면 유소년 지도를 그만둘 것으로 생각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전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빠져들었다. 정이 간다. 돈과 시간 하나도 아깝지 않다. 더 챙겨주고 싶다.

- 아시아축구아카데미는 회비를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규모가 커질수록 운영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전 이사장께 회비를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저 때문에 이사장은 동냥하러 다닌다. 회비를 받지 않는 건 여러 가지 함축된 게 많다. 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돈이 없어 축구를 못할 뻔했다. 그런 친구들도 많이 봤다. 이곳에 있는 제자들에게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듣게 해주고 싶었다. 제 뜻을 이사장께서 잘 받아주셨고, '맞다, 회비 몇 푼 받아봐야 오해만 생길 것이다. 손 감독의 말이 맞다'고 말씀하셨다. 기회를 동등하게 주고 싶다. 돈 있어서 축구를 더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대신 불성실하면 바로 아웃이다.

손 감독의 현역 시절 모습. / 스포츠서울 DB
손 감독의 현역 시절 모습. / 스포츠서울 DB


- 1985년 상무 소속으로 K리그 7경기를 뛰었다. 현대와 일화를 거쳐 통산 37경기 7골을 넣었다. 당시 K리그는 어땠나.

앞서 말했듯이 난 한국에서 프로선수를 했다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였다. K리그는 현재 내셔널리그 정도의 수준이었다. (승부 근성은 강했지 않나) 그렇다.(웃음) 그때도 별명이 숙소귀신이라고 할 정도로 열정은 많았다. 그런데 불의의 부상으로 28살이란 나이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알려졌는데.

일화에 있을 때 대우와 동대문운동장에서 야간 경기를 했다. 후반 40분쯤 측면에서 공을 툭 치고 돌파를 하려다가 운동장 바깥에 패인 곳에 발목이 꺾이면서 피가 났다. 교체 카드를 이미 다 소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2분 뒤 문전에 서 있다가 크로스를 받아 골을 넣었다.(웃음) 그러면서 버티다가 경기를 마쳤는데 밤새 잠을 못 잤다. 고통스러워서. 이후 1년 동안 경기하는 모습이 꿈에 자주 나오더라. 눈물이 나고 허무했다.

- 그 아쉬움이 유소년을 지도하라는 뜻이었나.

그런 것 같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제 자식과 후배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라는 뜻이었다고 느낀다. 실제 도움을 주고 있다. (아들이 더 재능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단, 정신적인 능력은 아직 차이가 난다. 흥민이가 아버지의 근성을 따라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축구가 단 한 번도 싫다고 느끼신 적이 없나.

내 삶이 축구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셨다.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번은 친구 아버지였던 동네 이장께서 부산에 있는 신발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곳이면 이장 아들을 보내세요'라고 건방지게 말했다. 축구를 하고 싶었으니까. 또, 둘째 외삼촌도 당시 양말 사업으로 돈을 꽤 버셨는데 제게 '양말 장사를 하라'고 권유했지만, 크게 화를 낸 적 있어다. 그토록 축구가 좋았고 간절했다. 어렵게 축구를 했다.

- 유소년 지도를 통해 인생의 큰 반전을 이루신 것을 축하한다.

아휴, 별말씀을. 감사하다. 더 책임감을 갖고 해야한다.

- 유소년 선수들과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선수들은 강해야 한다. 공을 한 번 찬 사람보다 열 번 찬 사람이 성공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전 지도할 때 오늘 혼난 것을 집에 가서 느끼고 고민하라고 한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게 돼 있다. 학부모께는 핵가족시대지만 축구 경기를 하는 자식들이 정신적으로 약해지지 않게 도와줬으면 한다. 창피한 말이지만, 난 흥민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면 엄청나게 굴렸다. 제 자식이고 안쓰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가 냉정해야 아이가 강해진다.

- 마지막으로 손 감독의 꿈은 무엇인가.

난 농부의 마음입니다. 365일 파종을 한다.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열매를 거두기가 어렵다. 20~30년 후에 제 아이들이 유럽이든 K리그든 좋은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기를 바라고, 아시아축구아카데미 이사장 이하 모든 분과 여행을 다니면서 제자 경기 보러 다니는 게 소원이다. (월드컵 우승은?) 아, 물론 해야한다. 개인적으로 흥민이가 월드컵 대표팀에 뽑혀서 골도 넣고 목표에 이바지한다면 첫 번째 꿈이 이뤄지는 것이다. 다음에 김병연 등 후발 주자들이 국가대표에 뽑혀 월드컵에서 큰일을 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한국 유소년 축구의 새 장을 연 손 감독의 꿈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 유소년 축구의 새 장을 연 손 감독의 꿈에 박수를 보낸다.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