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vol.1-②] 재외 투표율 역대 최고? 실제는 '100명 중 5명 참여'
입력: 2024.04.07 00:00 / 수정: 2024.04.07 00:00

재외국민 수 대비 실질 투표율로 따지면 4.70% 불과
현행 방문 투표방식·사전신고 홍보 부족 등 원인 꼽혀


국민의 한 표에는 민주주의가 담겨있다. 투표소로 가는 개인의 작은 발걸음은 민주주의를 향한 큰 걸음이다. <더팩트>는 22대 총선 한 표의 의미가 더욱더 특별한 재외국민 투표에 주목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재외국민 투표율은 19대 총선 45.7%, 20대 총선 41.4%에서 21대 총선에서 23.8%로 급락했다가 22대 총선에선 62.8%로 급등했다. 총 재외국민 197만여 명 중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9만2923명의 투표율로 사실 높다고 할 수 없다. 왜 그럴까. <더팩트>는 선거보도 기획 [발걸음 Vol.1]을 통해 재외국민 투표의 현주소와 우편·인터넷 투표 등을 시행하는 해외 사례를 살피고 선거법 개정의 지지부진 이유 및 도입 가능성과 개선 방향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재외투표지는 외교행낭을 통해 국내로 이송된다. 확인과 분류 작업을 거쳐 등기우편으로 관할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에 보내진다. 개표는 오는 10일 국내투표와 함께 이뤄진다. /뉴시스
재외투표지는 외교행낭을 통해 국내로 이송된다. 확인과 분류 작업을 거쳐 등기우편으로 관할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에 보내진다. 개표는 오는 10일 국내투표와 함께 이뤄진다. /뉴시스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왕복 항공편 140유로, 숙소 1박 100유로, 비행 시간 세 시간.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800km 정도 떨어진 마르세유 한 대학에서 근무하는 이 씨(여·30대)는 한 달 전부터 '총선 투표 계획'을 세웠다. 그는 3월 29일(현지시간) 대사관에 가 투표도 할 겸 한인 미용실·치과에도 방문하기로 했다. 최소 240유로(한화 약 34만8000원)에 오가며 든 시간까지 적지 않은 '투표 비용'이다. 그는 "재외선거 사전신고는 인터넷으로 할 수 있어 편했다"며 "프랑스도 한국 교민이 적지 않은 만큼 다른 거점도시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일하는 김 씨(여·40대)는 대사관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편이다. 지하철로는 30분, 투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왕복 대중교통비 2000원 정도다. 그러나 한국보다 번거롭긴 마찬가지. 김 씨는 "이곳 투표소는 3월 29일부터 4월 1일(금~월)까지 나흘만 운영한다"며 "투표일이 여기선 휴일이 아닌 만큼 투표율을 높이려면 운영 기간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재외투표에 재외유권자 14만7989명 중 9만2923명이 참여해 62.8%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외투표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세계 115개국(178개 공관), 220개 재외투표소에서 실시됐다. 투표소는 국가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운영된다. 운영시간은 대부분 6일간, 오전 8시부터 17시 사이지만 짧게는 하루 4시간 안에 투표해야 했던 곳도 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4·10총선 재외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4·10총선 재외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재외투표율은 역대 총선 최고치다. 21대 23.8%, 20대 41.4%, 19대 땐 45.7%였던 데 비하면 60%대로 뛰어올랐으니 고무적인 수치다. 그러나 '선거권이 있는 재외국민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표했느냐'를 따져보면 재외선거 투표율은 여전히 저조하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2023년 기준 재외국민 수는 246만7969명이다. 관계기관은 이들 중 약 80%를 18세 이상 국민, 예상 선거인으로 본다. 예상 선거인 약 197만4000여명 중 재외유권자는 14만7989명. '투표하겠다'고 신청한 인원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셈이다. 재외유권자 아닌 재외국민 수를 기준으로 따지면 '실질 투표율'은 197만4000여명 중 9만2923명, 4.70%에 불과하다. '실질 투표율'이 10.3%,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2017년 5월 치러진 19대 대선 한 번 뿐이었다. 2017년 기준 재외국민 수는 267만2202명, 이 중 18세 이상은 213만7000여명으로 추산한다. 당시 투표율도 75.3%로 가장 높았고 재외유권자 수도 29만4633명으로 가장 많았다.

실질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결국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먼저 방문 투표만 허용하는 현행 투표 방식 때문이다. 미국 중부에서 거주한다고 밝힌 A 씨(여·30대)는 시간과 거리, 비용 때문에 투표를 포기했다. 그는 "사는 곳에서 8,9시간 떨어진 도시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고 아이가 있어 '당일치기'도 불가능하다"며 "2박 3일 일정으로 잡으면 투표 한번에 500~600달러(67만 6000원~81만 1000원)는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유학 중인 신 씨(남·30대)도 "차로 2~3시간 거리 도시에 투표소가 있는데 자동차 외에는 교통수단이 없다"며 "한국에 있을 때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드는데 학기 중이라 부담스럽다"고 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지난달 27일 중국 톈진시 거주 교민들이 버스를 이용해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 도착하고 있다. 톈진시에서 베이징시까지는 약 140km 거리다. /뉴시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재외국민 투표 첫날인 지난달 27일 중국 톈진시 거주 교민들이 버스를 이용해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한국대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 도착하고 있다. 톈진시에서 베이징시까지는 약 140km 거리다. /뉴시스

​재외선거에 참여하는 이들은 유학생, 주재원 등 국외부재자가 대부분으로 사전신고를 해야한다. 국외부재자들이 신고 기간·방법을 잘 모르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신고 기간은 선거일 전 150일에서 60일까지로 이번 총선은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올해 2월10일까지 신청을 받았다. 대사관에 찾아가 직접 신고할 수도 있고 우편·전자우편·인터넷 신고도 가능하다. 신고기간을 놓치면 한국에 들어와 투표해야 하는 '중대 사안'임에도 관련 안내문은 각 재외공관 또는 선관위 홈페이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강 씨(남·50대)도 "저도 가족들도 별도로 안내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중부에 거주한다고 밝힌 A 씨(여·30대)도 "유학생들은 한인 학생회, 주변인들은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개인이 올린 게시글 등을 보며 신고가 필요하단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같다"며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국 동부에 거주한다고 밝힌 이 씨(여·30대)도 "국외부재자 신고 공지가 세부적이지 않아 혼란을 준다"며 "시차가 있다 보니 신청 기간이 지났다고 생각해 부재자 투표 등록을 포기했던 주변 지인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선관위도 투표 편의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안해왔다. 추가투표소 설치 요건을 완화하고 재외유권자들에게 교통편의 제공하는 방식이다. 2022년 1월 법 개정으로 20대 대선부터 재외국민 수가 3만 명을 넘는 지역은 매 3만 명 마다 1개소 씩 추가돼 3개소까지 설치·운영할 수 있게 됐다. 한 지역에서 재외공관 포함 최대 4개의 투표소가 설치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전 기준은 4만 명, 추가 투표소는 2개소까지였다. 이번 총선에선 일본 도쿄·오사카와 미국 뉴욕·로스엔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카고·애틀란타에 4개 투표소가 설치됐다.

투표소로의 이동 편의를 위해 재외국민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왕복 운행 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4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각 공관별 수요조사를 거쳐 교통편 운영 예산을 지원해왔다"며 "이번 총선에선 30개 공관에서 86개 노선을, 지난 대선에서는 31개 공관에서 78개 노선을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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