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논란의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기본 협약 '불이행'...법인 취소 '직면'
입력: 2023.09.19 10:54 / 수정: 2023.09.19 11:24

국회사무처, 시정 마감 15일까지 기본 협약 '불이행' 한국위 취소 절차
기본 협약 없이 정관에 준수 명시...4년째 모금 활동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한국위)가 기한 내에 유엔해비타트 본부와 기본 협약을 체결하라는 국회사무처의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법인 취소 절차에 직면했다. /한국위 누리집 갈무리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한국위)가 기한 내에 유엔해비타트 본부와 기본 협약을 체결하라는 국회사무처의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법인 취소 절차에 직면했다. /한국위 누리집 갈무리

[더팩트ㅣ이철영·김정수·설상미 기자] 국제기구 유엔(UN) 또는 그 산하 유엔해비타트의 공식 인가 없이 활동하며 기업 등으로부터 44억 원가량을 모금해 논란을 빚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한국위)가 법인 취소 상황에 직면했다. 관리 감독 기구인 국회사무처가 요구한 세 차례의 유엔해비타트와 기본 협약 체결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시정 조치 이행 최종 시한까지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사무처는 한국위에 지난 15일까지 유엔해비타트와 기본 협약을 체결하라며 시정조치를 최종적으로 요구했지만 한국위는 유엔해비타트와 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위의 주무관청인 국회사무처는 지난 2019년 9월 한국위가 법인 등록한 이후 3차례에 걸쳐 유엔해비타트와 기본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4년째 이행되지 않았으며 시정조치 이행 최종 시한인 15일까지 넘기자 법인 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한국위는 국회사무처에 "유엔해비타트 내부 절차 진행에 혼선이 발생해 올해 10월 말 예정됐던 업무협약 체결이 지연되고 있다"며 "유엔해비타트는 한국위에 유엔해비타트 부사무총장이 주재하는 내부 위원회를 구성해 9월 말 회의에서 향후 업무협약 관련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회사무처는 한국위가 시정조치 마감 시한인 15일까지 협약을 맺지 않아 법인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간다. 한국위의 시정조치 요구는 처음이 아니다. /하태경 의원실 제공
국회사무처는 한국위가 시정조치 마감 시한인 15일까지 협약을 맺지 않아 법인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간다. 한국위의 시정조치 요구는 처음이 아니다. /하태경 의원실 제공

하지만 2019년 출범 당시 유엔해비타트와 기본협약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협약을 맺은 것처럼 정관을 만들고, 4년째 국회사무처 등록 법인으로 기부금을 모금하면서 국회사무처의 세 차례 시정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점은 의혹을 더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위에 대한 국회사무처의 협약 관련 시정조치 요구는 올들어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국회사무처는 지난 1~3월 한국위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점검에 나섰고, 기본협약 체결이 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시정 조치를 통보했다. 이어 6~7월엔 한국위의 협약 진행 상황 등을 점검해 시정 조치를 세 번째 요구했다. 이는 곧 한국위가 유엔해비타트와 협약을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의 인가단체처럼 행동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위는 현재도 유엔해비타트 내부에 혼선이 있어 협약 체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위는 지난 2019년 9월 6일 법인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정관에 유엔해비타트와의 관계를 기본 협약으로 맺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위 정관 4조(유엔해비타트의 관계)에 따르면 '한국위는 유엔해비타트 본부와의 기본 협약을 준수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한국위는 법인 등록 후 4년째인 지금까지 유엔해비타트와 기본 협약을 체결하지 않고 유엔을 내세워 기부금 모금활동을 해왔다. 법인 설립의 근거가 되는 정관에 애초 맺지도 않은 협약을 준수하겠다고 기재한 건, 법인 운영의 정당성을 잃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위는 정관을 통해 유엔해비타트 본부와의 기본 협약을 준수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기본 협약은 없었다. /하태경 의원실 제공
한국위는 정관을 통해 유엔해비타트 본부와의 기본 협약을 준수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기본 협약은 없었다. /하태경 의원실 제공

국회사무처는 한국위가 기한 내에 시정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만큼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국회사무처는 한국위의 의견 청취 등을 위한 청문 절차를 다음 달 4일 진행한다. 청문 절차 종료 이후 국회사무처는 한국위에 대한 법인 설립 허가 취소를 검토할 예정이다. 한국위가 법인 취소 결정을 받게 된다면 지정기부금단체라는 지위 역시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법인이 취소되면 해산되는 것으로 없어진다고 보면 된다"며 "남은 기부금의 경우 해당 법인의 정관을 따른다"고 말했다. 한국위 정관 51조(해산)에 따르면 해산 될 경우 잔여 재산은 법령에 따라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유사한 목적을 가진 다른 비영리법인에 귀속된다.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초대 회장을 맡았던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7일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했다면 애초에 국회사무처의 감독 결과에 따른 시정 조치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국위는 국회사무처의 지속적인 시정 조치에 응하지 않아 법인 취소 절차를 밟게 됐다. /더팩트DB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초대 회장을 맡았던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7일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했다면 애초에 국회사무처의 감독 결과에 따른 시정 조치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국위는 국회사무처의 지속적인 시정 조치에 응하지 않아 법인 취소 절차를 밟게 됐다. /더팩트DB

한국위가 주무관청의 관리 감독에 따라 법인 취소 절차를 밟게 되면서 파문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간 한국위 측의 반박 역시 설득력을 잃게 됐다. 한국위 초대 회장을 맡았던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위 설립은 처음부터 유엔해비타트 본부와 긴밀한 협의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수석의 설명과 달리 한국위는 유엔해비타트와 기본 협약조차 체결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번에 드러났다.

또 박 전 수석은 "한국위는 주무관청인 국회사무처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다"며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했다면 애초에 국회사무처의 감독 결과에 따른 시정 조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국위는 국회사무처의 지속적인 시정 조치에도 응하지 않아 법인 취소 상황에 처하게 됐다.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공식 답변서를 공개하며 한국위가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해 44억 원의 기부금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남용희 기자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공식 답변서를 공개하며 한국위가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해 44억 원의 기부금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남용희 기자

한편 <더팩트>는 지난 7월 한국위가 국제기구 UN(유엔) 또는 그 산하 유엔해비타트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은 일반 사단법인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단독] 文 축하 '유엔해비타트 최초 국가위원회 한국 탄생', 알고 보니 '거짓'). 보도 이후 한국위는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한국위 협업 기관 등은 협약을 종료하거나 후원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프로필에 한국위 이력을 삭제하기도 했다([단독 그 후]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지워지는 흔적들).

한국위는 입장문을 통해 '유엔 산하 기구 또는 유엔해비타트 소속 기관으로 행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위는 그간 유엔 엠블럼과 유엔해비타트 로고를 여러 차례 무단 사용하며 마치 유엔 등과 관련있는 단체처럼 활동했다. 박 전 수석은 한국위 초대 회장을 맡았던 당시 한국위를 "유엔의 공식 산하 기구"라며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위에 기부한 기업 등은 한국위를 유엔 관련 단체로 인식했다고 답한 바 있다.

박수현 전 수석(가운데)은 지난해 2월 23일 현직이었을 당시 한국위 관계자, 모 건설회사 계열사 사장 등을 청와대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제보자 제공
박수현 전 수석(가운데)은 지난해 2월 23일 현직이었을 당시 한국위 관계자, 모 건설회사 계열사 사장 등을 청와대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제보자 제공

지난 8월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는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공식 답변서를 공개하며 한국위가 유엔 산하기구를 사칭해 44억 원의 기부금을 거뒀다고 주장했다([단독 그 후] 與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유엔 산하 사칭 44억 모금").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유엔해비타트 본부로부터 받은 답변서에는 '유엔해비타트는 시민사회단체나 비정부단체를 지지하거나 승인하지 않고, (한국위에) 로고 무단 사용을 즉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특위는 지난달 25일 최종 보고회를 열고 한국위의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취소를 국세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더팩트>는 지난 6일 박 전 수석이 현직이었을 당시 한국위 관계자와 모 건설회사 계열사 사장 등을 청와대에서 만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한국위는 해당 기업들에게 협력을 제안했고, 박 수석은 한국위 설립 배경 등을 설명했으며 참석자 가운데 한 기업은 실제로 4억4000만 원을 기부했다([단독] 'UN 비인가 단체' 기업 협찬, 박수현 靑 '부적절 만남' 있었다).

cuba20@tf.co.kr

js8814@tf.co.kr

snow@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